brunch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스티븐 레비츠키

야광봉과 민주주의

by 박소형

빛은 어둠이 있어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환한 낯에는 빛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당연하게 여기며 생활하다 깜깜한 밤이 되면 빛의 소중함을 느낀다. 어디 빛뿐인가. 우리가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기도, 매일 마시고 씻어 내는 데 필요한 물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 역시 우리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숨은 주역들이다. 당연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동안은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결핍이 있을 때는 불편하고 불안하고 심지어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게 된다.


만 20세가 넘어 투표권이 생겨 처음으로 제15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았다. 이렇게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행위가 민주 공화국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인 줄 알았다. 간접 선거로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던 역사를 알기 전까지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2024년 12월 3일.

이렇게 일상에 스며든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목격한 날이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총을 든 군인들이 난입하고, 하늘에는 군 헬기가 떠 있고, 도로에는 장갑차가 다니는 광경을 실시간 영상으로 보았다. 그 영상을 보고 국회로 모인 시민들과 국회의원들 덕분에 6시간 만에 계엄령이 해제되었지만 나의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언제든지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새로운 대통령을 다시 뽑는 2025년 6월 3일까지 지속됐다.


KakaoTalk_20250801_133411759.jpg 2024.12.14 국회 앞



계엄령은 금방 해제되었지만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더디기만 했다. 그런 과정을 초조하게 지켜보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내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에 12월 14일 국회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아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수많은 인파를 보며 든든함을 느꼈다. 전국 네모연합회, 전국 거북목 연합,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등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단체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깃발들과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나타내는 야광봉을 광장에서 만났다.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나서 광장에 울려 퍼지던 소녀 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의 제목처럼 다시 만날 세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 손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다시 뽑았지만 민주주의가 권력자에 의해 무너질 뻔한 아찔한 경험을 해서일까. 이번 주 독서 모임 리더 선배님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선택하였다. 미국의 민주주의 권위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이 책의 공동 저자로 세계 여러 독재자들이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경고 신호를 네 가지로 나누어 소개한다. 저자는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정치인을 유심히 지켜보라고 말한다.



책표지-썸네일-011.png



이와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두 가지 규범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정치적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 그들도 헌법을 존중하는 정당한 경쟁자이자 통치할 권리가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태도인 상호 관용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권력과 권한을 법이 허용하는 한계까지 최대한 활용하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는 태도인 제도적 자제라 부르는 개념이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밀접하게 얽혀 있어 서로를 강화한다. 정치인이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자제의 규범도 기꺼이 실천하려 든다.


저자는 트럼프를 예로 들면서, 독재적 성향을 가진 정치인이 권력을 잡게 되면, 기존의 정당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그와 손을 잡으면서 민주주의 규범이 파괴되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 관용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이 무너지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어 결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의 미래는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어떤 정당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끝낼 수 없고 어떤 지도자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유 시스템이기에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고 조언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6개월 만에 민주주의를 회복한 우리 국민이 훨씬 더 자랑스럽게, 진심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12월 계엄에서 6월 대선까지 6개월을 돌아보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민주주의 붕괴 직전까지 갔었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지켜가면서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켰다. 약자들이 모여 야광봉으로 빛을 만들어 서로 연대하면서 민주주의에 드리워진 어둠을 몰아냈다. 광장의 야광봉은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빛이었다.

keyword
이전 23화부모의 내면이 아이의 세상이 된다 – 대니얼 J. 시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