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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한강

국가 폭력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by 박소형

<소년이 온다>를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7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으로 인한 슬픔으로 읽는 내내 눈물바람이었다. 그 이후로 책 읽으며 느끼는 고통의 감정이 힘들어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외면하고 피해 다녔다.



작년 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독서 모임 회장님이 2025년에 함께 한강 작가의 책을 한 권씩 정해서 리더를 맡아보자고 제안하셨다. 고통의 기억으로 바로 대답할 수 없었지만 한강 작가의 작품을 깊게 읽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7년 전 다짐을 버리기로 했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소년이 온다>는 여전히 고통이고 슬픔이었다. 리더를 준비하며 5.18 관련 도서와 영상을 찾아보면서 진실을 알게 될수록 더 큰 슬픔이 다가왔고 이번 주 독서 모임에서 새벽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6년 동안 결석 없이 지속해 온 독서모임 기간 중에 가장 힘들었던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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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 <소년이 온다>는 각 장마다 화자와 시점이 다르지만 각 장의 주인공은 모두 고통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즉 고통은 각 장의 인물들을 이어주는 감정이다. 1,2장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다. 1장에서 동호는 거리에서 죽어간 친구 정대를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2장에서 혼이 되어 나오는 정대는 동호의 죽음을 느끼며 고통을 느낀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P.45



나머지 3,4,5,6 장은 살아남았지만 어쩌면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3장에서 은숙은 동호의 죽음으로 장례식같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고 4장에서 화자인 교대 복학생과 진수는 수용소에서 끌려가 영혼까지 깨트린 끔찍한 고문의 기억을 공유하며 항복하고 나오는 동호가 군인의 총에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한 진수는 결국 고통스러운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 여성 노동자의 삶을 살아온 5장의 선주는 상무관을 지키던 동호를 살리지 못한 책임감에 고통을 느끼지만 그 고통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되찾는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P.135



동호 어머니의 말들로 채워진 6장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창자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라 표현한 것처럼 독자들이 가장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이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화자인 작가가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더운 여름을 건너오지 못한 자와 죽은 자를 애도하며 살아오거나 살아남은 자의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P.189



고통의 기억에는 어떤 힘 있는 걸까?

한강 작가 역시 고통스럽게 이 책을 써나갔다고 고백한다. 세 문장 쓰고 한 시간 울고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 동안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하고 광주뿐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들과 세계사적으로 반복해 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아래 두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는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지만 5월 광주에서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했던 야학 교사 박용준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문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강은 말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소년이 온다 영문표지.jpg <소년이 온다> 영문 표지



글쓰기는 원래 고통스러운 일인데 고통스러운 내용으로 글을 써 나간다는 건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 일인가. 고통스럽게 이 책을 완성한 한강은 이 책 속의 일곱 개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5.18이라는 고통의 기억을 소환하였다. 그 고통은 나와 같은 독자에게 연결되어 압도적인 슬픔과 고통을 주었다. 왜 이런 고통의 감정이 공유되는 걸까?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것이니 고통은 어쩌면 사랑의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한강 작가가 고통의 과정을 겪고 난 후 얻은 두 질문은 12.3 비상계엄 시기에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5.18 당시 광주에 살고 있었지만 도망가서 부채 의식 속에 살아왔던 한 남자의 아들은 12.3 비상계엄 때 국회로 달려가서 총 든 군인들과 맞서고 5.18을 기억하던 많은 이들이 장갑차를 몸으로 막아 세우고 상부의 지시로 계엄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소극적으로 가담하거나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이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P.213



한강 작가와 그 글을 읽은 독자들의 고통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1980년 5월 광주를 지킨 그분들은 - 진실을 훼손시키려는 의도로 혹은 무책임한 익명의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 폭도가 아니다. 국가 폭력에 힘없이 굴복한 희생자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신하고 현재를 도와주고 산 자를 구해주는 위대한 항쟁의 주체였다.



이번 주 일요일은 45번째 맞이하는 5월 18일이다. 살아남은 누군가에게 고통의 기억을 되살리는 5월은 차라리 없었으면 싶겠지만 그 고통의 기억으로 민주주의를 누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기억해야 할 책무가 있는 날이다. 대한민국을 빛으로 이끌고 간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기 위해 내일 빛고을 광주를 다녀올 예정이다. 이 책 <소년이 온다>와 함께.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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