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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베기

by 자유

“중간놀이 시간에 벼 베기 하겠습니다. 가위 필요해요~”


교담 선생님이 단톡방에 남긴 메시지였다.


6월에 선생님이 ‘벼의 한 살이’ 체험을 시작했었다.

큰 빨간 다라통 네 개에 흙을 담고 그 속에 모를 심었다.

1·2학년 용, 3·4학년 용, 5학년 용, 6학년 용으로 나누어 심은 모였다.


그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 마침내 오늘,

모두가 함께하는 간이 벼 베기 체험의 날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벼이삭을 훑어내며 낟알을 털어냈다.


아이들의 작은 손이 의외로 능숙했다.

반면 나는 손이 커서 그런지

작은 낟알들을 골라내는 데 애를 먹었다.


“선생님, 저 이거 집에서도 해봤어요.”

현웅이가 가위로 벼 가장 아랫부분을 자르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정말 능숙하게 잘하는구나. 선생님 좀 가르쳐주라."


현웅이는 집에서 농사일을 거든다며 능숙하게 알은체를 하면서 내 서툰 동작을 교정해주기까지 했다. 나 역시 현웅이를 따라 하면서 뭔지 모를 따뜻함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또 한 지훈이는 쭈뼛쭈뼛 다가오지 못했다. 이유를 묻자, 잠시 망설이던 지훈이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아빠 도와드리려고 논에 갔었는데요… 그때 시커먼 벌레가 다리에 붙어서 너무 놀랐어요. 그 이후로는 논에 가는 게 무서워요.”


"그래, 그렇구나."


나도 그 마음이 이해됐다. 고등학교 시절, 태풍이 지나간 뒤 벼 세우기 활동을 하러 갔다가 종아리에 달라붙은 미끈한 검정벌레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논 밖으로 뛰쳐나온 기억이 있다. 아마 그것은 거머리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오싹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지훈이에게 말했다.

“그럼 벼 베기는 하지 말고, 대신 낟알 고르기만 같이 하자.”


잠시 후, 삼삼오오 둘러앉은 아이들 사이를 둘러보니 아까 지훈이 가장 열심히 낟알을 고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저하며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옆 친구와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이거 재밌어요!” 하며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재미있다고 시작한 낟알 고르기는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만큼 열기가 더해졌다. 그러면서 아이들 입에서 이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작은 낟알들이 모여서 밥이 된다니 신기해요.”

“이걸 언제 다 까요?”

“우리가 먹는 밥이 이렇게 많은 손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거라니, 농사짓는 분들 정말 힘드시겠어요.”

“이제 밥 남기면 안 되겠어요.”


어느새 제법 어른스러운 말들을 하며 아이들은 일을 거의 다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3교시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이제 일에서 해방이다!” 하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교실로 향했다. 나와 교담 선생님은 바닥에 흩어진 볏짚을 한쪽으로 모아두며 웃었다.


“선생님, 저기 모아놓은 짚들은 다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궁금해서 묻자, 교담 선생님이 웃으며 답했다.


“이건 나중에 새끼꼬기 할 때 쓸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이 설렜다. 짚으로 새끼를 꼬다니,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한다니—나도 어느새 학생이 된 듯, 다음 체험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아이들도 나처럼 즐거워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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