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간만의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이다. 남편과 막내는 아직 꿈속에 있고, 집안에 흐르는 고요가 유난히 마음에 든다. 커피를 내리고, 반숙 달걀프라이를 올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얼마 전 동료가 집에서 땄다며 건네준 감 한 개를 깎아 작은 접시에 담았다. 그렇게 꽤 근사한 아침 식탁이 완성되었다.
식탁에 앉아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다시 꺼내 읽으며 아침 식사를 했다. 이 작가는 첫째가 아기였을 무렵, 교회 집사님이 권해 사게 된 그림책 중 하나인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저자이기도 하다. 독특한 그림체와 따뜻한 이야기가 인상 깊어 그녀가 쓴 다른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세월이 지나 다시 펼친 그녀의 산문집은, 마치 장독대에 익혀둔 된장과 간장처럼 푹 발효된 삶으로 다가온다.
사노 요코의 글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래, 맞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상의 소소한 단면 속에서도 삶의 진실을 꺼내는 그녀의 문장들은, 어쩐지 오랜 친구의 편지처럼 다정하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니 지난여름 다녀온 오사카 여행이 떠올랐다. 남편이 막내를 위해 한 번쯤 다녀오자며 슬쩍 꺼낸 이야기가, 결국 어렵게 연차를 낸 딸이 주도하게 된 가족 여행으로 이어졌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고, 도톤보리를 중심으로 하루는 도시 맛집, 하루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또 하루는 어디였더라... 그렇게 3박 4일을 꼼꼼하게 다녔다.
여름 여행지로서 오사카는 비추다. 너무 더워서 돌아다니는 내내 그늘만 찾아다녔다. 딸이 추천한 돈키호테를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나와 남편은 구경보다 앉을자리 찾기에 더 열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묘한 연대감이 생겨났다. ‘앞으로는 자유여행 말고 패키지로만 다니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마음이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생겼다.
그리고 하나 더. 오사카에서 먹은 음식은 대부분 너무 짰다. 매체에서 봤던 음식평이 무색할 정도였다. 물가가 비싼 곳이라는 것도 몸소 체험했는데, 특히 음식값은 상상 이상이었다. 유명한 야시장에서 먹은 튀김은 개당 4~5천 원, 생맥주 한 컵도 7천 원쯤 했던 것 같다. 여행을 다녀본 지가 4~5년은 되었으니, 물가가 오른 것도 당연하겠지만, 자유여행이 패키지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그래도 가족여행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힘들고 더웠지만, 아이들의 만족한 얼굴에서 위안을 얻었다. 특히 막내는 여행 내내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2학년이 되면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이에게는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던 걸까.
책을 읽다 문득 생각이 멈췄다. 다음 여행은 아이들이 아닌, 우리를 위한 여행을 가야겠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면 괜찮다. 쉬엄쉬엄이라도, 천천히 그 나라의 공기와 풍경을 음미해 봐야지. 자식들은 젊은 취향대로, 자기들끼리 다녀오라고 하자. 여행도 결국 체력이 큰 몫을 하니까.
그리고 인생도, 아마 그럴 것이다.
사노 요코 씨의 책처럼, ‘사는 게 뭐라고’
내 취향대로 즐겁고 상쾌하게 유쾌한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