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기

인생은 후진이 없다

by 서재

한겨울 아침 일곱 시는 아직도 어둡다. 시퍼런 새벽 공기는 그 어둠만큼이나 사람의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방학이 시작되자 내게 새로운 일이 생겼다. 밤새 일하고 아침에 귀가하는 남편을 데리러 가고, 집에서 잠시 쉰 뒤 다시 그를 일터까지 데려다주는 일이다.


내가 출근하던 날에는 큰아들이 잠시 남편 차를 빌려가는 바람에 남편이 택시를 탔다. 택배 회사와 집 사이 거리는 만만치 않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한 시간 넘게 흔들려야 간신히 집에 닿는다.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득이한 날엔 남편은 택시를 이용한 것이다.


그동안 나 역시 출퇴근으로 쌓인 피로가 누적됐던 걸까. 평소보다 일찍 차를 몰고 나왔는데 눈앞이 잠시 침침해져 당황스러웠다. 남편 차도 나이가 들어 성한 곳이 없다. 유지비보다 수리비가 더 드는 형편이지만, 그렇다고 새 차를 살 여유도 없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지는 현실 속에서, 그저 더 이상의 잔고장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무슨 고철덩이를 힘겹게 끌고 가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남편은 이 차에 애착이 있다. 명색이 자동차 이름값 때문인지, 그동안 쏟아부은 정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20년이 된 이 차는 핸들을 돌릴 때마다 꾸륵꾸륵 토해내는 기계음이 거슬려 괜히 더 긴장됐다. 게다가 내 차가 아니라 손에 익지 않은 탓에 액셀을 밟는 발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칙칙한 사위를 뚫고 달리다 보니 약속 시간은 얼추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다 출근 시간마다 정체되는 구간이 떠올라 우회로를 택했다. 신호등이 많아 조금 더디긴 했지만, 병목 구간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핸들을 꺾어 우회전을 하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도로가 나타난 것이다. 그제야 알아챘다. 고속도로 진입로였다. 후진할 수 없는 상황. 그대로 가면 광주까지 갈 판이었다. 당황한 나는 티맵을 켜 가장 가까운 IC를 검색했다. 17분 소요. 그게 최선처럼 보였다.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되돌아가기’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나는 망설임 없이 좌회전을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반대편 톨게이트였다. 안내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다행히 다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혼자서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운전대를 내려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남편에게는 조금 늦는다고 전화를 했다. 방향감각을 잃은 것이 단순한 해프닝인지, 아니면 앞으로의 시간을 예고하는 신호인지 알 수 없어 괜히 두려워졌다. 뉴스에서 들었던 ‘노령 운전자 면허 반납’이라는 말까지 스쳤다. 아직 중년인 나에게 너무 앞서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남편을 만나 운전대를 넘기고 조수석에 앉았다. 좀 전에 일어났던 일을 숨길까 하다 결국 다 말해버렸다.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고속도로에는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느냐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되돌아갈 수 있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도 이런 ‘되돌아가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속도로에는 ‘되돌아가기’가 있지만 인생에는 그런 표지판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품고 산다.


삶에서 후회가 되는 상황이나 아쉬움이 남았던 순간, 보고 싶은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런 ‘되돌아가기’는 과연 없는 것인지. 되돌아갈 수 없기에 그 순간들은 영원한 기억이 되고, 기억은 우리 삶에 치유라는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아쉬운 인생길 위에서 삶의 의미를 꽃피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