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를 위하여
우리는 우주 속 작은 우주이다. 별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듯, 우리 삶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슬퍼할 이유는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소멸을 슬퍼하고 싶다. 소멸 이전의 시간 속에, 기억된 모든 이들과 함께한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 내 영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내가 존재했던 그 장소들조차, 내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소중해진다.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는 이유는 잊고 있었던 나를 기억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 이유도 그러하다. 가끔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소위 관종이라는 언어로 단정 짓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생각도 든다.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언젠가 세월이 흘러 지나간 시절의 모습을 바라보며 젊었던 시절을 바라보며 또 다른 기쁨을 갖게 되는 건 아닐는지.
때가 되면 피고 지는 저 꽃처럼 다시 돌아오는 시절이 없기에, 우리는 유한한 존재임을 알기에 더더욱 매 순간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남기고 싶어 하는 이유를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의 뇌는 늘 부정적인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습성을 태초로 물려받았기에 어쩔 수 없다.
물려받은 습성을 우리는 어떻게 적절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까. 결국 습성이란, 꾸준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습성을 ‘습관’이라는 말로 바꿔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습관이 결국 내 개성이 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스갯말로 아재 개그 중 하나에, 개성은 ‘개 같은 성질’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개’는 솔직히, 개 입장에서 아주 억울한 비유로 쓰인 셈이다. 인간의 못된 성질을 개에게 투사시킨 말장난을 보면, 가끔 인간이 얼마나 비겁한 존재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결국 인간은 무엇을 타고났느냐보다, 무엇을 반복하며 살아왔느냐로 기억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내가 되고 싶은 방향으로 나를 조금씩 연습한다. 기계가 아닌 이상, 나를 시계처럼 매일 같은 모습으로 반복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채움이다. 나의 우주를,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