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일인가!
겨울방학 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온 지 거의 2주가 지났다. 문제는 빌린 책이 세 권인데, 이제 겨우 한 권만 완독 했다는 것이다. 방학이 온전히 내 시간으로 채워질 줄 알았던 착각이 불러온 결과였다.
집안일이 금방 끝날 것 같지만, 하루 세끼를 차리고 치우는 일, 가족들 옷을 세탁하는 일, 남편 픽업(하루 두 번) 같은 일들로 금세 하루가 물 흐르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럼에도 틈틈이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 내는 내가 참 기특하다 생각했지만 그렇게 훌쩍 가버린 시간이 2주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혼자 씁쓸히 웃다 보니, 작년에 브릿 G 정기 리뷰한 소설 「도서 연체의 말로(유우주)」가 떠오른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도서 연체자가 납치당해서 형벌을 받는데, 그 형벌이 ‘연체자가 한 번도 읽지 않는 장르’를 실컷 읽어야 하는 것. 실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비유하자면, 내가 편식하다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을 내 입에 억지로 넣는 것인데, 웃기지만 섬뜩하다. 그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연체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내가 이제 도서를 연체한다고?
솔직히 말하면, 내 양심은 그런 배포를 싹둑 잘라버렸다. 배포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반납일이 다가올수록 또 다른 ‘대안’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책을 사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깊이 읽고 사유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책 속에 내 흔적을 남길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든지, 형광펜으로 마음에 드는 단어에 옮겨 적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더 나아가 내 맘대로 해석을 주렁주렁 달아놓기도 어렵다. 가끔 빌린 책에서 이런 흔적들을 발견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특히 중요한 장이 뜯겨 있거나, 낙서로 훼손된 문장들을 마주할 때면 화가 치민다.
이야기는 삼천포로 갔다. 요지는 반납을 앞두고 책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도서 연체라는 딱지는 부차적인 이유다. 이 책들을 읽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서가 가장 중요하다. 나 역시 예전에 읽고 싶었던 책이 대출 중이라 예약을 걸었던 적이 있다. 당연히 반납일에 책이 들어올 줄 알고 기대감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그 대출자는 무려 일주일을 연체했다. 그때 나는 아마도 그 연체자에게 저주의 주문을 날렸을 것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나는 아주 신봉한다. 특히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더욱 확실하다.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는가만, 적어도 내가 그중 한 사람인 것은 자명하다. 책은 세 권을 빌렸는데, 주문한 책은 여덟 권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