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한창 일을 하면서 아침 일찍 출근하고, 퇴근 후 밤이를 만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밤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키도 자라고 머리카락도 자라고 몸무게도 늘어났다. 매일 매일 봤을 때는 잘 못느끼는데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면 아이는 훌쩍 커 있었다. 단풍잎 같은 손바닥을 펴서 기던 아이가 눈깜짝 할 사이에 두 발을 딛고 서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그런 밤이를 보면서 짜릿했던 순간들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자그마한 발달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밤이가 20개월을 좀 넘겼을 무렵이었다. 돌이 지난 이후, 세세한 발달사항은 눈으로 확인해가며 막연히 넘겨가던 때였다. 나는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밤이가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좀 늦나? 하는 정도였다. 아니었다. 밤이는 나와 눈을 잘 맞추려고 하질 않았다. 조금씩 걱정 되던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발달센터에 들렀다.
밤이는 생각보다 훨씬 언어발달이 지연되어 있었다. 빠름, 일반, 조금느림, 느림 네 개로 나눈다면 우리 밤이는 느림에서도 더 느린축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아니, 대체 왜? 돌 무렵쯤 종합 발달검사를 했을땐 오히려 빠른 축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이른둥이에게 발달지연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그 말도 맞겠지만, 나는 내가 뭔갈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이 번쩍 들어 내 생활을 점검해 보았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생각보다 훨씬 밤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있었다. 물리적으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밤이와 눈을 맞추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온 마음을 다해 같이 놀아주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일하는 엄마’란 타이틀을 내세워 아무렇지 않게 내몸의 피곤함을 정당화 시켰다. 잠깐이니 괜찮지 않을까 하고 tv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밤이는 뽀로로를 무척 좋아했다. 틀어주고 제지하지 않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주구장창 봤다. 세상에, 3살도 되지 않은 아이한테 대체 나는 무슨 일을 한 걸까. 깨닫고 나자 나는 죄책감에 크게 괴로워 했다.
그래서 나는 TV를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직접 놀아주기로 마음 먹었다. 초반에 밤이는 보여달라고 졸랐지만 그것이 1주일을 넘어가진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르는 일이 거의 없어진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책과 장난감을 사 주었다. 아주 쉬운, 그림과 사진이 많은 보드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열심히 읽어주었다. 처음에 밤이는 시큰둥 하더니, 지금은 책 읽는 걸 아주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밤이는 발달 지연인 만큼 놀이수준도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기보단 잠시 탐색하고 던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선천적으로 진득함이 없는 아이라, 조금만 실증나면 금방 자리를 떠나거나 다른 짓을 하기 일쑤였다. (이 점은 지금도, 앞으로도 꾸준히 고쳐나가야 할 점이다.) 그런 밤이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표 놀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곡물과 수정토를 가지고 촉감놀이를 하게 했고. 블록으로 쌓기놀이도 시도했다.
시간이 지나자, 밤이는 차근차근 변해갔다. 내 눈을 피하던 밤이는 이제 곧잘 나와 눈을 맞추며 웃고, 조금씩 말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남아있는 발달 지연 문제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안심하고 지내고 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지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늘 다짐한다. 밤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까.
나는 이 무렵, 근본적으로 절실히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정성어린 손길, 적절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적극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분명히 자랄 수는 있다. 그런데, 훗날 어느 지점에서 결핍되어있는 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드러난다. 나도 겪어보고 깨달은 것이었다.
난 아직 많이 부족한 엄마다. 그래도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지금은 무던히 노력중이다. 때론 밤이의 보챔과 투정에 힘든 날도 있지만, 아이의 해맑은 웃음 하나로 어느 새 따라 웃게 된다. 눈을 마주하고 상호 작용을 하는 것. 그것이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