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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7) 그리고 지금. 닫는 말

3장

많이 쌀쌀해진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지금의 내 모습을 반추해 본다.


요즘 빠져있는 취미가 하나 있다. 작은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는 여러 가지 식물들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다. 스킨답서스, 아이비, 테이블야자, 파키라, 커피나무, 올리브나무... 제각각의 모양으로 식물들은 열심히 자기 몸을 키워나간다. 나는 커가는 초록 잎사귀들에게 물을 주기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하고 햇빛을 쬐어주기도 한다. 소중하게 대하면 그들도 보답하듯 몸을 키워 아름다운 초록 빛깔을 뽐낸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나는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일상에 치여 바쁜 나날 가운데, 식물과 함께하는 잠시간의 하루 일과가 나에게는 제법 활력을 주고 있다. 


난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몸으로 부딪쳐 가며 사람을 만나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옮긴다.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지만 그럭저럭 쪼개어서 필요한 때에 쓰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이 건조하고 버거웠던 과거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밤이의 엄마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밤이는 이제 제법 컸다. 네 살의 아이는 이제 말도 그럭저럭 할 줄 알고 좋아하는 노래를 통으로 부르기도 한다. 엄마 아빠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건네주기도 하며, 어린이 집에 등원하기 전에는 나를 보며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공손히 인사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사소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일일 수 있지만 나에겐 이 모든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밤이를 만나면서 너무도 아찔했던 적이 많아서였을까. 이렇게 일상적으로 지내는 평범한 생활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다.


아직 밤이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발달과정을 세심히 체크해야 하고, 언어 쪽도 조금 더 신경 써서 공부해야 한다. 발음이 아직 많이 뭉개져서 나나 신랑이 아니면 타인은 알아듣기 힘든 편이지만 차차 나아지게 노력할 것이다. 밤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해해주고 스스로 재미 붙여 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도와주고 싶다. 밤이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 의무감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 아이가 예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얼마 전에는 신랑의 생일이었다. 나는 생일 상을 차려주었고 우리 가족은 맛있게 식사를 했다. 다음엔 직접 만든 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렸고 초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밤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의
생일 축하합니다.



아직은 정확하지 않은 발음임에도 밤이는 분명하게 생일 축하 노래를 완전히 다 불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다가 눈물이 나려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오래전, 밤이를 낳고 매일매일 NICU로 출근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당시 난 바쁘게 걸으면서 미래를 상상했다. 밤이가 엄마, 아빠하고 부르는 날이 올까. 내 손을 잡고 걸으면서 웃기도 하고, 예쁜 입으로 사랑해요 말하기도 하는 날이 과연 올까. 그런 날이 있기는 할까.


그저 불투명하기만 했던 미래의 날들을, 아마도 그 좋은 날들은 올 것이라며 혼자서 다독였던 날들을 전부 보내고 나자 바로 오늘이 왔다.


나와 신랑 둘이서 보냈던 조용한 날들은 모두 지나갔지만.

이젠 밤이와 신랑 셋이서 보내는 시끌벅적한 하루하루가 내겐 너무도 소중하다. 


난 지금도 완벽한 엄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하는 엄마이고 싶다. 나의 엄마가 내게 해주었던 최선만큼. 그만큼을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밤이의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이건 나에게 하는 고백이자 평생의 다짐이다. 







닫는 말.



'엄마'란 이름엔 참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수많은 세월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어른인 나 자신이 쓰게 되는 또 하나의 이름. 나처럼 생긴... 또 다른 나의 분신을 옆에 두고 키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난 엄마란 이름을 어깨에 메고 앞으로의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이젠 '엄마'란 이름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 했다. 밤이야. 나는 네 엄마야 하고.


나 자신이 엄마로 살아가면서, 내 엄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모든 엄마로부터 생긴다. 엄마는 고귀하고 위대하며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이름이다. 나는 자신이 엄마가 되면서 나의 엄마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한 사람을 사람으로 키워내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으므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은, '되기 싫었다'가 아니다. 엄마란 직함을 내가 온전히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너무 대단하다. 존경스럽고 감동적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수없이 많은 아이와 엄마들을 보게 된다. 이제는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다. 꼭 한번 눈도장을 찍고,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면 설핏 웃어준다. 그 자그마한 아이들이 너무나 소중한 존재임을 이젠 나도 잘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예쁜이들을 소중하게 길러내는 엄마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안아드리고 싶고,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다. 너무나 잘하고 계신다고. 그러니 부디 힘 내시라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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