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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5) 엄마와 나

3장

친정엄마는 늘 일을 했다. 항상 바쁘게 생활하셨는데 그 천성은 외할머니를 꼭 닮았다. 집보다 밖에서 활동하기 좋아하는 외할머니의 천성을 내가 그대로 물려받은 것인지도.


어쨌든 그런 친정엄마는 밤이가 6개월쯤 되었을 무렵부터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 우리 집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 부부가 부탁드렸다. 원래 아이를 많이 돌봐오신 엄마였던지라, 나와 엄마 둘이서 같이 돌보면 좀더 육아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해 밤이를 돌봐주셨다. 나는 옆에서 엄마가 어떻게 밤이를 돌보는지 눈여겨 보았다. 덕분에 난 엄마에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엄마와 함께있는 시간들이 늘어갈수록 싸우는 횟수가 늘어났다. 자잘하고 단순한 의견차이인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유식에 들어가는 고기가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에 대해 싸웠고, 밥을 먹이는 양이 많고 적은 것에 서로의 의견을 내세웠다. 나는 정해둔 밥 양을 다 먹이면 거기서 끝이었는데, 엄마는 아이가 완전히 싫다고 할 때까지, 아주 끝까지 먹이는 스타일이었다. 잘먹고 잘 커야 한다면서. 


엄마는 처음 생긴 손녀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너무 큰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최고급을 먹여야 했고, 뭐가 되었든 일순위는 밤이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계셨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엄마와 나는 정말로 많이 충돌했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치관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엄마와 의견이 다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엄마는 굉장히 젊을때 결혼했다. 그리고 스물 네 살에 나를 낳았다. 엄마는 혼자서 나와 남동생을 꿋꿋이 키우셨다. 자신의 모든것을 다 포기하고,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오신 거였다. 희생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분이었다. 자식들에게 올인하였으며. 자식이 잘되면 거기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런데 엄마 세대에는 그런 분들이 아주 많았고 보편적이었다. 그런 시대라고 엄마는 늘 말했다.

그래서 엄마도 머리로는 날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밤이만큼 나 자신도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물론 내새끼 눈에 넣어도 아플 내 딸, 목숨과 같이 소중한거 당연히 맞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밤이에게 올인한다면 그야말로 나는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난 묶여있으면 묶여있을수록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좀비가 되어간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갔는데, 이때부터 엄마의 의견은 달랐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야. 일도 일인데, 밤이한테 좀 더 신경을 쓰는게 어떨까?”


이 말은 즉, 일보단 밤이를 우선적으로 해야 하니 그냥 집에서 밤이를 같이 돌보자는 의미였다. 나는 깊이 고민했다. 엄마의 말도 너무나 맞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출근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힘들었던 이 시기보다 훨씬 건강해졌고 밝아졌다. 좀더 건전한 생각을 할수있는 힘이 생겼다. 다행이지, 나는 내가 지금 주저앉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일을 하면서 나는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깊이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앞으로 오래도록, 내가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일이었다. 글쓰기란 언제봐도 참 매력적인 일이었다.


난 내 결정을 엄마에게 말했다. 마음 잡고 글을 쓰겠다는 내 얘기를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던 엄마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지금 네가 글을 쓴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하게 돈을 버는 것도 아닐텐데...


그 때 엄마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나는 아주 많이 생각했었다.


복합적인 문제였다. 글을 쓰다보면 밤이를 볼 시간이 줄어드니까, 그점이 가장 염려되었을 거다.  두 번째로, 미래가 불투명한 일을 왜 또 시작하는지 그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엄마는 안정 추구형 인간이었다. 왜냐하면 평생을 아빠 사업 뒷바라지를 했던 사람이니까. 불안정한 미래를 상당히 경계하고, 원치 않아하는 그런 분이다. 나는 엄마와 반대 성향이었다. 뭐든 일단은 저질러보는 성향이라 입시때도 그 문제로 엄마와 많이 부딪쳤었다. 엄마가 말리는 이유는 내가 제대로 된 성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결국 내 편을 들어주었다. 밤이를 돌봐 주었고 내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엄마가 감사하면서도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렸다. 결국 엄마는 나를 위해 또 한번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은 접어두어야지. 꾸준히 하다보면 나에게도 빛들 날이 꼭 있으리라 믿고 싶다.




어쨌든 내가 낸 결론; 똑같은 비용이 지출된다면 친정 부모님 혹은 시부모님 대신 시터 이모님을 구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난 주저없이 이모님을 찾을 것이다. 엄마와 얼굴 맞대는 시간이 줄어드니 마찰도 줄어들고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지금은 주 2회정도 우리 집에 방문하시는데 난 이정도가 딱 좋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더 많이 힘들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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