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길티플레져 그 자체, <소곱창> 편
> 개인적인 이유로 연재가 한 주 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4년 전 대학 졸업 후, 당장 취업준비는 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종의 반항심과 젊을 때 사서 한번 고생해 보자라는 가끔... 나오는 나의 즉흥적인 성격이 겹쳐, 당시 유행하던 바디프로필에 도전했더랬다. 대학 시절을 즐길 만큼 즐겼던 나는 절대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과 잦은 음주에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다이어트 겸 디톡스 겸 개인트레이닝을 받아보자! 했던 것이 이왕 할 거면 결과물을 만들어 보자!로 발전했고, 한다면 진짜 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4개월 간 촬영을 위해 칼식단과 금주를 병행했더랬다.
바디프로필은 경험해 본 것으로 만족했다.
명확한 눈바디 변화와 숫자로 나타나는 나의 노력들은 성취감에 목이 말라 있었던 나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또, 요즘 같은 음식 과공급의 시대에 결코 맛없지 않은, 오히려 맛있다고 할 수 있는 다이어트 식단들 덕분에 생각보다 식단을 하는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욕을 참는 것은 상당히 고역이었는데, 당시에 내가 정말 정말 먹고 싶었던 음식이 뭐였냐 하면, 1) 소주와 라면 2) 달달한 도넛 3) 소주와 곱창이었다.
정말 신기한 건, 나는 평소에 라면러버는 아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라면은 같이 먹을 때와 혼자 먹을 때 맛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신기한 음식이라(내 기준) 혼자 사는 나는 집에서는 거의 라면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도넛을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잘 없다. 곱창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 년에 누가 먹자고 하면 한 두 번 먹는 음식 정도로 크게 애착이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음식들이 '죄악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다른 건 다 돼도 절대 안 되는 음식'이라고 못 박히니까 그렇게 당기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때는 딱히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았던 음식들이었는데 왜 이렇게 당기는지 미칠 노릇이었고 바디프로필 촬영 직후에 줄줄이 도장 깨기 하겠다 다짐했었다. (당시에 나는 저염 저당 식단 위주로만 섭취했고, 순한 음식들만 먹다 보니 본능적으로 내 기억 속 경험했던 가장 자극적인 음식들을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촬영이 끝난 당일, 촬영을 하고 나오자마자 길에 서서 크리스피크림 글레이즈드 도넛 하나를 '순삭'하고, 해운대로 달려가 지글지글 맛있는 곱창에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친구와 2차로 매운 컵라면을 먹고 오래간만에 터질듯한 배를 부여잡고 흡족하게 잠에 들었다.
몇 개월 간 순한 식단에 적응되어 있던 나의 위장은 이 반나절의 폭식으로 인해 모조리 기능이 고장 나버렸고, 이 일탈의 대가는 장염으로 되돌아와 내 인생 최초로 4일간의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때 자극적인 음식을 마음껏 향유하려면 튼튼한 위장은 필수구나... 깨달았고, 촬영 당일 보다 몸무게는 3킬로가 더 빠졌으며, 건강을 회복하기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그날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녁 메뉴로 곱창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그날의 곱창의 맛에는 단 한 줌의 후회도 없었다. (대신 어머니께 등짝을 세게 맞았다)
다소... 아픈 과정이 있긴 했지만, 이 날 이래로 나의 페이보릿 음식 리스트에는 곱창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 칼퇴한 불금, 이보다 맛있을 수 없는 <마포곱창타운 연남점>
15여 명쯤 되는 회사 동기가 있다. 입사 후 온보딩 교육과 신입사원 체육대회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계기로 동기들끼리 곧잘 어울리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맞는 다섯 명이 뭉치게 되었다. 여기서 '마음이 맞다'는 의미는 곧 '퇴근 후 소주 한 잔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와 같은 의미인데, 입사 후 1년쯤 지난 어느 날 퇴근 시간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다섯 명이 마주치게 되었고, 8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단 30초 만에 "회에 소주 한잔할까?"라는 누군가의 제의에 고민 없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곧장 번개로 이어졌던 일화가 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 모임을 '엘리베이터 모임(이하 엘베 모임)'으로 명명하게 되었고, 한 달에 한 번은 퇴근 후 맛있는 안주에 소주를 먹는 일종의 월간 모임이 되었다. 엘베모임이 3회 차쯤 되었을 때였나, 지긋지긋한 회사 근처를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맛집 탐방을 해보자! 했었다. 그날의 메뉴가 곱창에 소주였고, 누군가 연남동에 줄을 서는 곱창 맛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퇴근 후 곧장 연남동으로 2호선을 타고 달렸다.
이 집은 길을 가다가도 '저 가게 뭐지?'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에서 연기를 뿜으며 곱창을 초벌하고 계신데, 응당 곱창 러버라면 콧구멍에 그대로 꽂히는 곱창 향기를 결코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든다.
식당 내부는 꽤 넓은 편이지만, 평일에도 6시 이후에는 웨이팅이 필수이다.
이 집의 특이점은 곱창 메뉴가 곱이 많이 든 곱창과 기본곱창구이로 나뉘어 있다. 곱이 가득 차 터질 것 같은 곱창을 좋아한다면 단 1천 원의 차이로 업그레이드 버전을 느낄 수 있으니 전자를 주문하길 추천한다.
기본 찬은 선지가 들어 있는 시래깃국, 간과 천엽, 양파장, 파가 듬뿍 들어있는 소스로 구성된다. 찐 아저씨 입맛 보유자인 나도 유일하게 못 먹는 음식이 있다면 생간과 천엽인데, 나보다 더 아저씨 입맛을 가지고 있는 동기는 생간을 먹어보고는 회전율이 좋은 탓인지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난다며 신선함을 인정했다.
곱창구이를 시키면 염통이 서비스로 같이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곱창이나 염통 같은 내장류 음식은 신선도나 양념의 감칠맛이 물론 맛을 좌지우지하지만, 굽는 스킬에 의해 맛있는 곱창이 되냐 안되냐로 크게 갈린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리 양념이 잘 되어있는 곱창이라도 너무 오버쿡 되거나 고루 익지 않으면 금방 질겨지고 맛이 쉽게 떨어질 수 있어서 신선도, 양념, 굽는 스킬 삼박자 모두가 갖춰져야 하는데, 이 집은 종업원분들께서 매우 강불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곱창을 구워주시기 때문에 실패의 여지가 없다.
구워지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기름에 절여진 부추와 곱이 가득 찬 곱창을 한 입 먹어보면 기름 특유의 고소함과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서 소주 한 잔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이 집 곱창은 특별한 소스나 메뉴의 특이점으로 승부한다기보다는, 곱창 맛집으로 판별 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1) 느끼하지 않음 2) 질기지 않음 3) 곱이 꽉 차있음의 3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감히 맛집으로 추천할 수 있다 (생각보다 세 가지 요소 모두를 가진 식당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양도 많다.
기름진 음식과 소주의 조화는 말해 뭐 하겠느냐만은, 우리 엘베모임의 주종은 보통 소맥인데 이 날 만큼은 5명 모두 통일되게 소주를 마셨음을 고려할 때, 소주를 단독으로 먹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 집 곱창은 소주도둑임이 틀림없다. 또, 우리는 알곱창을 먹진 않았지만, 옆 테이블에서 야채곱창이나 알곱창 같은 볶음 곱창류를 많이들 주문해 먹는 것으로 보았을 때, 볶음 곱창류도 상당히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넓은 홀에, 지글지글 곱창소리와, 끊임없는 추가 주문 소리 등으로 다소 분위기가 시끄러워 데이트 장소로는 그렇게 적합하진 않을 수 있지만, 하루의 업무를 다 마친 지친 몸을 이끌고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수다를 떨며(주로 회사욕이 되겠다.) 곱쏘를 즐기기는 제격인 장소이다.
2. 찐 로컬 맛집 인생 곱창 영등포 <대성한우곱창>
영등포에 거주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사람들은 영등포를 어떤 이미지로 인식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상경 후 정착했던 첫 동네이고 지금까지 불편함이 없고 만족스러운 동네인데, 영등포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오래전부터 서울의 중심지였던 덕분에 꽤나 숨은 노포강자가 많다는 점이 있다.
그중 이 집은 정말, 정말로 숨어있는 강자이다.
사실 이 집이 알려지는 것이 싫어 나만의 비밀장소로 남겨두고 소개를 하지 말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이 집이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도 들어서 이렇게 소개를 하는 심정이 들 만큼의 미친 맛집이다.
우선 테이블이 두 개뿐이다. 어떻게 곱창 집에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지? 하는 의문과 테이블 두 개로 회전율과 수지타산을 어떻게 맞춘담?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럼에도 이 근처를 지나다닐 때마다 가게에는 항상 손님이 없었던 적이 없어서 이렇게 작은 가게에 어떻게 항상 저렇게 사람이 차있을까... 하는 나의 의문과 호기심으로 부산에서 놀러 온 친한 언니와 함께 어느 날 늦은 저녁, 도전하는 취지로 방문하게 되었다.
메뉴 소개를 보면, 마장동에서 직접 도축한 한우 곱창을 직접 삶아 만든다고 되어있다. 우리는 곱창, 막창, 대창, 염통이 함께 나오는 곱창 모둠을 주문했는데, 내장들만 나와 하나씩 구워 먹는 일반적인 모둠이 아니라 콩나물무침과 양파, 그리고 떡이 함께 버무려져 미리 구워져 나온다.
곱창이 나오기 전, 입가심으로 콩나물국이 나오는데 일단 국물을 한 입 먹어본다면 이 집 범상치 않겠구나 단박에 알 수 있다. 나는 8년 차 자취생으로 웬만한 음식은 요리할 수 있고 자칭 타칭 요리실력이 꽤 나쁘지 않은데, 요리를 하면 할수록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 감칠맛 나는 음식보다는 심심한 음식, 예를 들면 콩나물 국, 무나물, 호박나물 이런 음식들이 맛있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집은 별거 없어 보이는 투명한 콩나물 국의 국물이 엄청난 칼칼함과 시원함을 가지고 있고, 같이 갔던 언니는 "이 것만으로 소주 두 명 먹겠네"라고 했다.
대창을 그렇게 까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대창은 높은 확률로 처음 한 입은 맛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소주로도 잡히지 않는 고도의 느끼함 때문에 속이 니글거리기 일쑤고 위가 썩 좋지 않은 나는 소화불량으로 다음날까지 속이 안 좋았던 적이 태반이었다.
이 집의 대창은 새하얀 곱이 통통하게 들어차 있는 대창임에도 불구하고 느끼하다기보다는 고소함에 가까웠다. 염통도 질기거나 비리지 않고 오히려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고, 곱창은 단 1의 질깃함도 없이 부드러우면서 곱이 입안에서 터진다. 푹 삶은 탓인지 네 가지 종류 모두 식감이 눈에 띄게 부드러운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여타 곱창집에 비해 소화에 전혀 어려움이 따르지 않은 것은 이 집의 엄청난 장점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부속 음식을 매콤하게 무쳐진 구운 콩나물과 함께 먹다 보면 '곱창은 많이 못 먹는 음식'이라는 편견을 깨부술 수 있다.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가게 사장님으로 추측되는 할아버지가 상주하고 계신데 테이블 두 개를 번갈아 보시면서 곱창이 오버쿡 되진 않은지, 콩나물국이 모자라지는 않는지, 밑반찬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계속 확인해주신다.
우리가 이 집을 방문하던 날은 눈이 왔는데, 부산에서 상경한 언니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들뜨고 좋아하자, 사장님께서는 휴대용 LED 조명을 가져오셔서 틀어주시고는 "이렇게 하면 분위기가 더 좋죠?" 하셨다. (실례일 수도 있지만) 너무 귀엽고... 스윗하고 따뜻한 마음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고 함박웃음을 지어주시며 보여주시는 친절함에 뭉클하기까지 했었다. 거기다가 직접 담근 담금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오셔서는 블루베리, 계피등이 들어가 여성에게 좋다며 잔에 한잔씩 따라주셨고, 주당의 가슴을 울리는 정성이 담긴 담금주 서비스는 이 집 또 와야겠다는 다짐으로 발전했더랬다. (옆테이블을 참고하니 남자와 여자에게 서비스로 주시는 담금주의 종류가 다른 것 같았다. 다음엔 남자인 친구와 동행해 남자 전용 담금주도 맛볼 예정.)
담금주 서비스로 기울어버린 마음과는 별개로, 같이 방문한 언니는 내로라하는 부산의 곱창집들과 비교해 봐도 맛 자체에서 이 집 곱창은 인생 곱창이다! 말했고, 훌륭한 맛과 프라이빗한 공간, 거기다가 따뜻한 서비스까지 더해진 이 집은 나의 또또간집이므로 영등포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방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