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말 내내 PC방에서 경기에 몰입 중인 큰아이는 게임대회에서 상금을 탔다고 한다. 물론 아이가 PC방에 가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PC방에 가게 되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지만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먹거리였다. 과자와 음료수는 물론 사발면까지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에서 거지 같은 음식을 파는 이런 곳이 청소년 출입 가능한 곳이라는 것도 문제이지만 주인을 거치지 않고 기계에서 돈을 내고 자리를 배정받아 누가 누구인지 언제 나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도통 알 수 이런 시스템이 더 문제처럼 보였다. 모두 기계에서 기계로 이어지는 곳이다. 말이 필요 없는 장소에서 아이도 여느 아이들처럼 기계를 통해 자리를 배정받고 기계에서 나오는 사발면을 먹고 음료수를 먹을 것이다. 지금이야 비대면이 일상화되어있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공존한다고 하지만 오래전 만화방에서 주인아저씨와 만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누는 그런 감정의 교감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이런 나를 꼰대나 호랑이 담배 먹는 시절 이야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가게 주인이 아는 척하면 다시 가지 않는 젊은 세대를 반영하듯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편의점이 더 인기라고 하니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입을 막는 것이 중간이라도 가게 하는 슬기로운 방법일 듯하다.
오아시스 너에게 2014
큰 아이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반응을 하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게 먹는 것을 신경 쓰면서 키웠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먹는 음식에 따라서 아이는 긁거나 진물이 나오곤 했기 때문에 음식을 먹여보고 아이의 피부반응을 살폈다. 알레르기 검사를 해마다 해봐도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고 검사 결과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반응하는 몸도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의 몸은 늘 변화한다고 한다. 사람의 몸은 7년 주기로 바뀐다고 하며 매일매일 변화하는 몸은 7년 전 나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먹는 음식에 따라서 몸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레르기 검사보다는 아이가 살짝 입에 대어 보는 것으로 음식에 대한 반응을 측정한다. 어릴 때 아이는 식품첨가물이 많이 들어있는 인스터트 음식은 물론 유기농 우유와 유정란, 무항생제 소고기에도 모두 다 반응했다.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왜 나 는 못 먹는 음식이 왜 많아?”라고 물었었다. 아이의 질문에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시 잠깐 입의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네 몸이 너무 깨끗해서 그래. 깨끗한 물에 흙탕물이 튀기면 뿌옇게 변하는 것이 보이지? 흙탕물에 흙탕물이 튀기면 잘 안 보이는 것처럼 네 몸이 깨끗해서 그래.” 말도 안 되는 엄마의 말은 무식했지만 아이에게는 어느 시간까지는 위로가 되었다. “엄마도 단식하고 깨끗해진 몸에 고기와 콜라를 먹었더니 이마에 오돌 도돌 뭐가 나왔어”
빨리 낫게 하고 싶었던 아토피를 어느 순간 친구처럼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가벼워진 것처럼 우리에게는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믿음이 약이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아이는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에서 임신과 출산 시간에 아토피에 대해 들었다고 한다. 지나가는 말로 “아토피는 엄마의 임신 중 먹거리의 문제라고 배웠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 나는 괜찮아”
아이가 괜찮지 않아 엄마 왜 그랬어 라고 말했으면 마음이 좀 덜 아팠을까?
지리산 자락 산아래 마을에서 단식을 하고 현미밥에 된장국과 김치를 잘 먹으면서 아토피도 잡혀가던 아이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유치원에 가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시골집에서 뛰어놀며 자라던 아이에게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아토피는 잡혀갔지만 알레르기가 심해 급식을 먹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결국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놀게 했었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가장 큰 즐거움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이기에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마음껏 유년기에 놀았던 아이는 여기까지 무사히 외부 먹거리 가 차단되었는데 학교는 문제가 달랐다. 결국 경계에 섰다. 아이들과 함께 먹일 수 있는 학교에 가야 하는데 급식은 자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채식하는 사립학교로 진학했다. 채식하는 곳이기 때문에 아이가 반응을 하는 계란과 우유 소고기가 나오지 않아 급식을 먹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기름 빠진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니 아이는 음식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며 바깥세상에 대해 알고 본인이 통제와 제한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던 아이는 더 많은 밖의 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오아시스 너에게 2, 2015
제한을 많이 했던 아이기 때문에 더 많은 갈증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먹는 것은 자유롭게 풀어주었고 이 방법은 일정 정도 효과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는 스스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구별하는 나이가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알레르기라는 이름으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는데 알레르기는 귀찮고 해로운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지키는 몸의 가장 최전선에 배치된 정예부대 같은 것이라고 이해시켰다. 알레르기가 발동하지 않으면 특정한 음식을 먹고 죽을 수 도 있는 것이다. 아이는 아직도 사람들이 최고등급 마블링 소고기를 먹으면 호흡곤란이 온다. 발효된 요구르트를 먹으면 괜찮은데 생 우유를 먹으면 안 되고 날계란은 먹지 못한다. 마블링된 소고기는 최고가이지만 소고기 중에 가장 몸에 좋지 않은 부위라는 것도 위안삼아 이야기해주었지만 무엇을 할 때 그것을 선택하는 것과 강제에 의한 것은 차이가 큰 것이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엄마가 공부해 소리를 듣는 순간 공부가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사람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데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있다는 건 엄마로서 미안한 일인 것이다.
"엄마 페레로 *쉐 초콜릿이 40억 개가 팔렸대요"
"헉 맛없고 비싼 초콜릿을 누가 그렇게 먹었대"
" 맛이 없으면 그렇게 팔렸겠어요?"
".............."
"초콜릿 먹고 싶어?"
유기농 다크 초콜릿은 이제 그다지 먹고 싶지 않다고 하는 아이에게 피자를 만들어주었다.
채소 잔뜩 들어가고 피자치즈 듬성듬성 흩뿌려져도 맛있게 먹어주는 고마운 아이다.
몸에 좋은 것이라고 먹이면 거부하는 날도 있지만 먹거리에 예민한 엄마를 어느 정도 이해하며 지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들아, 세상에는 먹을 것이 정말 넘쳐난단다.
선택은 너에게 있어
낮잠 2013
모두 다 처음이라서 설레고 처음이라 서투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아직도 '이것이 끝이겠지' 하면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지만 어디 그리 만만한 인생이 있겠는가 세상에는 어떤 일도 어떤 그 누구에게도 만만한 것은 없고 그것이 그 어떤 첨예한 문제라도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