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계획에 술렁이는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몇 년 전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는 그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열흘정도 기록을 했다. 이 마을 옆에는 지금은 철수했지만 미군기지가 있었다. 미군기지가 있었다는 것은 돈이 많았던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2~30년전만해도 번성했던 이곳은 낡고 노후해져갔고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 빈집도 많았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마을 안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말소리가 들리면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말을 걸었다. 아들자랑으로 시작해 며느리 흉으로 끝나는 집도 있었고 인터뷰 내내 부부가 툭닥툭닥 싸우는 집도 있었다. 남편에 대한 공경과 질책이, 손주에 대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지난 시절에 대한 연민과 세월에 대한 원망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평생 일만 하다 늙어버린 불쌍한 자신에 대한 아쉬움과 젊음의 댓가처럼 얻어진 자식에 대한 자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물도 안 나오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편안함에 대한 감사 끝에 며느리 험담도 슬쩍 끼어넣는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그곳을 기록하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기억이 말하는 것2016
‘왜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까?’
빈 집에 들어서서 집안을 둘러본다. 아이들이 타던 세발자전거가 벽끝에 쳐박혀 있고 바닥에는 낡은 플라스틱 그릇들이 굴러다닌다. 무너진 벽 뒤로 예전에 아이방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숫자를 배우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 본다. 쿰쿰한 곰팡이냄새처럼 습한 기운이 올라오는 듯했다. 그리고 멀리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와글와글 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학교 늦었다고 신발을 신다 말고 뛰어나가는 교복 입은 여학생 뒤로 아이가 보인다. 떨어진 문짝으로 대충 막아 마당 한켠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변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남자아이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교복입은 여학생과 변소앞 남자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빈집에서 2016
오래된 골목길 사이를 지나다보면 이곳에 대한 변화보다는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걷게 된다.
오래된 벽, 낡은 문고리 , 부러진 슬레이트지붕까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이 곳의 변화의 움직임이 속상했다.
왜 오래된 것을 보면 그대로 지켜지기를 바랄까?
나는 왜 카메라를 들고 이 곳을 찾아왔을까?
인터뷰내내 그 이유가 풀리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말해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이었을까?
삐거덕 오래된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깨진 시멘트 바닥사이사이 이끼가 껴있는 작은 마당 한켠에 수도가 있었고 옆에서 한 할머니가 깻잎을 씻고 있었다. "누구셔?" 할머니, 안녕하세요? 마을이 이뻐서 사진찍으러 왔어요" "이쁘긴, 다 늙었어. 사람도, 동네도" 그렇게 시작한 할머니와 두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마당을 둘러싼 삶의 흔적으로 세월을 추적해본다 벽에 걸려있는 오래된 나무 지팡이는 꼬장꼬장
주인을 대변하는것 같았고 아기자기한 마당의 꽃화분은 지리한 생활의 낭만을 노래하는것같았다 1남4녀를 둔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이 마을에서 40여년을 살아왔다. 근처 캠프페이지가 철수하기전 마을은 돈이 많았고 사람도 많았고 아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 커서 마을을 떠났고 그들의 엄마, 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집도 몇 안된다고 했었다. 이 마을은 곧 재개발 예정인 곳으로 한집 건너 빈집이 더 많았다.
할머니는 대문밖까지 나와 배웅을 하셨고 이후로도 몇번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몇집 인터뷰를 마치고 마을 안 작은 빈집에서 인터뷰 영상 전시를 했었다. 이후로도 2년간 빈집에서 여러가지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내가 만났던 그분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시지 않았다.
공연준비중 2016
결국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실체는 그곳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이었을까? 그 곳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할머니, 그 할머니의 엄마로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비가 오면 문 앞 평상에 자리를 깔고 밀가루에 호박이랑 이것저것 넣어서 전을 부치면 기름냄새에 홀려 이집 저집에서 두부도 가져 나오고 막걸리도 가지고 와서 잔치를 벌였어. 그때는 아주 재미있었어.”
빈집에서 공연중 2016
산업의 발달로 도시의 생활은 편리해졌고 새로운 도로가 나고 주거형태가 변화하면서 마을은 사라지고 공간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삶의 형태도 변화되고 있다. 그 곳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들을 지키려는 노력들도 있지만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시대이다. 빠른 시대변화에서 알 수 없는 질병들이 생겨나고 약으로 치료하고 또 다른 질병들로 모습이 바뀌어 가고 있다. 심지어 미지의 바이러스를 대처하기 위해 1년 넘는 시간을 미증유의 사태에 대처하기 바쁘다. 지금은 환경에 의한 병증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 가고 있지만 20년전만해도 아토피 아이를 키우면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았고 엄마스스스로도 죄책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도대체 임신하고 무엇을 먹은거야?"
집세가싼동네2015
알 수 없는 새로운 증상들로 아이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상한 병은 지구 어디 에서 온 것이냐고 원망해도 소용없었다. 감당은 오롯이 내가 견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파전으로 기억하는 아름다운 추억이 몇 십년뒤에는 표백제로 뒤범벅된 밀가루와 GMO의 오명을 쓰는 콩기름으로 뒤바뀔 수있다는 사실에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일이다. 70년대 생인 나와 함께 태어난 식용유와 라면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발명품인데 이것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낳은 아이들에게 "아토피" 라는 새로운 병이 생겼다는 글을 읽은 적 이 있다. 먹는 것으로 인해 병이 생긴다는 점을 비추어보면 틀린 말도 아닌데
아이에게 물려준다는 의미에서 정말 슬픈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부모의 탓인가?사회의 탓인가? 70년대 태어났다고 다 그러냐고 그건 네 탓이라고 세상이 손가락질 한다면 ‘그래, 모든 건 내 탓이야’ 라고 고개를 푹 숙이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발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정도는 차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왜 70년대 생 나에게 어릴 때 피자를 먹이면서 키웠냐고, 왜 카스테라를 만들어 먹이고 매일 빵과 우유가 나오는 급식을 먹였냐고 원망했냐고? 아니 아니, 아토피아이를 키우면 하루에 해야 하는 일이 정말 많아서 원망할 시간이 없이 몸을 굴려야했고 누구를 원망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 가장 뒷 끝이 없었다고생각하는 것이 편했다. 그리고, 막내가 5살이 되 어린이 집을 가게 되었고 그만 두었던 그림을 그리면서 다 잊어버려서 괜찮다고.
붉거나 빛나거나 2017
내 그림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정말 행복해보여요” "아이들과 시골에서 정말 좋았을 것같아요" 라고 이야기한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그때가 나에게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최면을 걸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인지 ,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그 시절이 행복하게 느끼게 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은 지친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사실이다. 손목이 나가게 손빨래를 했던 순간은 바람에 날리는 아름다움 빨래그림으로 효소를 만들어 먹이려고 캐온 민들레 뿌리를 씻다가 손톱밑이 까맣게 물들어도 그림속에서는 시골생활의 아름다움으로 그려졌다.
빈집2017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잘 못 듣는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으로 하느님을 원망 했었다. 하지만 원망은 아무 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빠르게 다음 스텝을 밟아가야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어느 하나의 감각이 약하면 다른 감각은 강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막내아이의 장애는 아무런 문제도, 어떤 걸림돌도 아니라고 부모가 먼저 인식하기로 했다. 걱정어린 시선으로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귀에 걸린 무거운 보청기를 코에 걸린 가벼운 안경이라고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큰아이에게 많이 웃어주지 못했던 지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했기에 의식속에 장애를 걷어내기로 했다. 쳥력은 약한데 반해서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신기했고 음악성이 좋은 것이 마음 한켠으로 아프기도 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그 고난의 게이지만큼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지기만을 바랄 수 밖에
아이*과 연동이 되면서 사용자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신제품보청기가 나와서 바꿔주었다. 이제는 전화통화음 소리도 잘 들리고 음악소리도 이어폰 끼고 듣는 것처럼 들을 수 있어 출시된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사주었다. 이제 출력이 좋은 보청기가 귓속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기술이 점점 발전되면 아이가 듣는 소리도 더 자연스러워지겠지. 기술이 발전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는 처음이다.
산업화과정에서 모든것이 자본화되면서 옛것이 사라진다고 아쉽고 어쩌구 했던 것도 "모두 다 구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