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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23. 2021

그래  마치 친구처럼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생각인데 그때는  너무 힘이드니  별의 별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암은 떼어내면 되는데 몸 전체에 퍼져있는 발진과 진물을 보고 있자면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몰라 발만 동동 거렸다.  팔에 드러난 발진이 들어가면   다리에 발진이 생기고 또  얼굴과  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처럼  옮겨 다니는 것을 쫒아 다니다 보면  엄마는 바짝 약이 오른다.  몸 전체에 진물이 나면 아기를 안고 있어도 아플것 같아 심장이 쓰렸다.   알 수 없는 병에 끌려 다니는 것 같아 지쳐 떨어지면 병원약을 바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했었다.  몸이 전반적으로 호전되면 여기저기 퍼져있었던 것이  꾸덕꾸덕 마르고 두껍게 딱정이를 만들고 시간이 흐르면 딱지를 밀어내고 새살이 돋아 오르면서   상황이 정리된다. 그리고  정리 되었는가 싶으면 또 다시 시작되는 발진에  다시 지치게 된다.   


여기저기로 옮겨 다녀 약을 올리던 것은 비단 아토피 하나만의 문제일까?

가족2013

좋지 않은 외부환경에 노출되면 건강한 몸은 면역체를 발동해서 이러한 외부환경에서도 잘 견디는데 약한 몸은 자신의  가장 약한 신체부위부터 그 반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질병이라는 녀석이 몸에  서식할 수있는  몸의  환경이  만들어지면   위가 약한 사람은 위염으로, 간이 약한 사람은 간염으로 염증의 형태를 나타내다가 암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가장 약한  부위로 드러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아토피를 보면서  ‘그래  눈으로 보이는 것이 더 낫다.’ 라고 위로하면서도 암도 치료하는  세상에 이건 왜 못하냐고 원망도 많이 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이 보이지 않는 것, 바로 '불안'이라고 했던가.    언제 어디에서 나타나 나를 놀래킬지 모르는 공포영화처럼   언제 드러날지 모르는 아토피도 불안함은  매한가지였다. 신이 아닌 이상 가늠할 수도, 모르는체 할 수도 없는  그런 미친 존재감 "너"를 아이의 몸에 두고 계속 싸울 것인지 친구처럼 옆에 둘 것인지 마음정리가 필요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것이   엄마가 아토피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어린 아기는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으로 부터, 또  그것을  지켜내려는 엄마로부터


하루 이틀, 한달 두달이면 나을 줄 알았던 아토피가 한해 두해 가다보니 아기보다 병이 먼저 보였다.

웃는 아기의 얼굴을 보며 눈을 마주쳐야 했었는데 피부를 살피기 바뻤다.  지금도  엄마의 표정에 예민한 큰아이를 보면 아기때 불안한 엄마의 표정을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 늘 마음한구석 빚으로 남아 있다.


 

자연은 내친구2014

 

아이는 아이다

사춘기가 되면서  친구들과 떡볶이도 사먹고 싶고 급식도 해야 하고 영화 보면서 팝콘도 먹어야 했었다. 그럴 때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은 어른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생활에서  허용되는 것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아기때 처럼  모든 것을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 되는 시기였다.   결국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이 것 저 것 먹어도 이겨낼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야  했었다.  깨끗한 음식은 깨끗한 음식대로 먹이고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음식은 그런대로 할 수 있어야 했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날도 있지만 의견이 안 맞아 싸우기도 하고 화 해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처럼 몸도 이런 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잘 지내기도 하고 갈등도 겪으면서   아이는 자신의 몸을 알아가게 되었다 .  시간이 흐를수록 무한 반복하는 아토피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 들이지 않으면  단 하루도 견뎌내지 못할 것같았다,  큰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아이만을 오롯 이 봐야하는 데 피부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많이 웃어주지 못했다. 더 미안하게도 세 아이 중에 가장 나의 기분을 살펴주는 아이로 컸다.


아장 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를 산책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친정엄마께 아이를 맡기러 가는 길에 유모차에 태워  덮개를 덮어 가렸던 아이.  화실을 했던 나는 길에서 학부형이라도 마주칠까 사람들이 안다니는 길로 다니고 있었다. 그럴때 마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유모차 덮개를 벗기고 또  벗겼다.  밖을 보려는 아기에게 미안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유모차덮개를 늘 씌우고 다녔다.   아이를 밖에 한 번 데리고 나가려면 이리저리 싸매고 여러  벌의 옷을 준비하고 먹일 것,  몸에 바를 것을 바리바리 준비해야 하는 대공사 를 벌여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밖으로 나가면   아이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놀란마음을 애써 감추며   아이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시선조차 싫어서   사람들을  피했다. 섣부른 충고나 위로도 그 슬픔의  토네이도  중심에 서있을 때는 진공상태처럼 고요해서  아무것도 들리지않는다.   그리고 주변부로 발을 내딛어도 거센 비바람이 몰아 칠  때는 그  어떤 우산으로도 비를 피할 수 없었다.    용기를 내거나 시간이 흘러  조금 더 바깥으로 나와야  젖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디로 급 히 비를 피할 것인지,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둘러 도착해서 샤워를 할 건 지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보슬거리는 비에 우산을 쓰는 것처럼 슬픔이  조금 빗겨나고 있을 때 위로가 위로로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남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거나 나의 생각을 쉽 게 이야기 하지 않게 변한 것도 아마 그때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 다. 진심이 오해와 거짓말이 될 수도,  어쩌면    가만히 옆에서  있어주는  것이 정답이 될 수 도 있는 수 많은 변수들을 당해 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밤새 안녕’이라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일들이 많아서 밤새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였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피부가 좋아지면 천국,  발진이 나면 지옥이었다.   매일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하루하루를  지내며  괴로운 마음을 달래는 요령이 생겼다.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중얼중얼   입밖으로 내뱉는  주문은 마음속에 위로와 겸손을 배우게 하는 말이기도 했었다.


‘일희일비 하지 마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여느 어미처럼 세상 행복하고  귀하게 키우려던 계획은  생후 한 달 만에 여지없이  무너졌고  이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이십여년의 시간을 보내며  아이와  같이 크고 있다.  “일희 일비 하지 마라”는 말은    좋은 날이 있으면 힘들었던 날을 기억하고 힘든 날은 앞으로 좋아질 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말이었다.  이 말은 살아가는 데 꽤 효과가 있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토피는 결국  아이의 몸과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병은  싸워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성장하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다.  


마치 친구처럼


마치 친구처럼2015


 친구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고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아토피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아토피가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먹지않으면 아이의 몸은 점점더 건강해지고   표정은 밝아졌다     그리고  점점   면역력이 강해져  언제 나았나 싶게 아토피는 서서히 아이의  몸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친구관계가 미숙하면 대립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다시 화해하고 이해하며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것처럼  병도 그랬다.   병을 이해하고 몸에 대해 알아가면서  갈등을  대처하는 기술도  유연해지고 편안해져가고 있었다. 싫고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시선, 그 걱정 어린 시선으로 아기를 쳐다보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얼굴이었다.


 그것이 지금 아이에게 가장 미안하다는 것을 나는 한 참 후에나 알았다.


어느 날, 덮개를 걷어내고 활짝 웃는 아이의 빨갛고 두껍게 앉혀 진 딱지 사이로 투명한 두 눈과 하얗게 드러낸 두 개의 앞니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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