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 끽해야 쓰는 프로그램은 한글과 워드, 그리고 메일 보내기가 전부다.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영상 편집자가 되었다. 이거야 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아닌가. 나는 잔뜩 울상이 된 표정으로 12인치 노트북 앞에 겨우 앉았다.
물론 예전부터 영상을 만드는 취미가 있긴 했다. 그러니 남편에게 호기롭게 '편집은 내가 하겠다'라고 외쳤겠지. 그래봤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하나로 이어 붙인 '조악한' 영상이라,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유튜브에 올릴만한 수준이 안 됐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채널은 개설했고 닉네임까지 만들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우린 이제 유튜버다'라고 선포까지 했으니. 뭐라도 올리긴 올려야 한다.
그 당시 영상 편집을 위해 내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맥의 imovie였다. (그냥 기본으로 깔려 있는 프로그램) 넣고 싶은 순서대로 넣고 그 아래 배경 음악을 깔면, 그래도 가볍게 볼 수 있을 만한 '영상 같은 것' 정도는 만들어진다.
바바TV의 첫 번째 영상 역시 imovie로 만들었다. 12인치 노트북으로 1시간짜리 영상을 8분 분량으로 줄이는 자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미리 보기 영상이 너무 작게 보여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니터 화면에만 집중해야 한다. 마치 작은 공벌레 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들기며 편집을 하다 보면 시간은 잘도 간다. 나는 5일 만에 겨우 8분짜리 영상 하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차박 영상 <무작정 떠난 차박 여행>이 탄생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영상은 어찌저찌 완성했는데 썸네일은 도무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 흔한 포토샵 한번 다뤄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유튜브는 썸네일이 80%다. 일단 썸네일을 보고 영상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예쁜 포장지가 더 중요하다.
그때 내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한 방법이 바로 PPT였다. 대학 시절에 종종 PPT를 만들어 발표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포토샵보다는 PPT가 편했다. 나는 PPT에 사진을 넣은 다음 그 아래 제목을 썼다. 그리고 그 화면을 캡처했다. 그렇게 영상보다 더 조악한 우리의 첫 번째 영상 썸네일이 만들어졌다.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이젠 영상을 올릴 차례. 우리 부부는 노트북 앞에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한 다음 하나, 둘, 셋!
드디어 바바TV의 첫 번째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만사 제쳐둔 채 우리는 온종일 댓글 창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천천히 조회수가 증가하는 걸 보며 '우와, 완전 신기해!', '우리가 유튜버라니'라며 감격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쓴 대본이 무대에 올랐던 날보다 더 긴장이 됐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공들여 만들긴 했는데..... 과연 사람들이 재밌게 봐줄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의 첫 번째 영상에 달린 댓글을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땐 제법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남편과 나는 악플로 가득한 댓글 창을 보며 연신 깡소주를 들이켰다. 솔직히 영상을 지우고 싶었다. 프로가 제작했을 법한 다른 영상들을 보며 '이 정도 영상도 조회수가 이 지경인데 우린 절대 유튜브 못한다'라며 툴툴대기도 했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건 아니다', '우린 유튜브와 감정적 결이 맞지 않는다'라며 쉽게 포기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오기가 생겼다. 그래봤자 영상인데.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잖아? 어떻게든 노력하다 보면 이것보단 나은 걸 만들 수 있겠지, 뭐 그런.
그때부터 나는 열일 제쳐두고 영상 편집과 썸네일 만들기에 올인했다. 누가 보면 작가에서 영상 편집자로 전직한 줄 알았을 것이다. 괜찮은 차박 영상들을 레퍼런스 삼아 따라 해보기도 하고, 편집 강의 영상도 찾아보고, 좀 더 쉬운 프로그램을 알아보기도 했다.
지금은?
부끄러움 > 부러움 > 좌절 > 자신감 > 절망 > 행복 > 폭풍 눈물 >의 과정을 거친 뒤, 현재 4만 7천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바바TV의 편집자로 꾸준히 일하고 있다. (물론 무보수로)
5년 간 여러 산전수전을 겪으며 편집을 익히는 동안 내가 터득한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그냥 하면 된다."
물론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일단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 어쨌든 조잡한 영상이라도 올리게 되면, 그게 부끄러워서라도 다음 영상은 더 잘 만들고 싶어 진다.
편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일단 주변 사람들을 좀 괴롭혔다. 요즘엔 유튜브가 워낙 대세라 주위에 영상 편집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 두 명쯤은 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편집 강의 하시는 선생님들 포함)
나 같은 경우에는 대학 시절 알고 지냈던 동아리 선배가 한 방송사의 조연출이었다. 다른 차박 브이로그 영상처럼 재밌는 자막도 달고 효과음도 넣고 싶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오빠를 만나게 되어 여러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선배가 추천해 준 프로그램이 바로 '뱁션'이었다. 한 달에 몇 만 원쯤 지불하면 우리가 티브이에서 흔히 보는 자막을 탬플릿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어떤 포인트에 자막을 넣고 효과음을 넣는지는 본인 센스에 달린 일이겠지만, 어쨌든 쉽고 편하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능 영상 하나쯤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뱁션을 쓰다 보니 여러모로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사람마다 느낌은 다를 수 있으니 참고 바람) 일단 요즘 차박이나 캠핑 영상의 트렌드가 화려한 자막을 넣는 것보다, 순간의 상황이나 주변 풍경들을 포착해 '대리 체험' 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 가장 컸다. 그러다 보니 뱁션의 장점이 그다지 와닿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친한 언니가 '프리미어 프로'라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옆에서 따라 배우며 일단 단축키부터 익혔다. Q- 커서 앞에 있는 영상을 싹 지운다. W - 커서 뒤에 영상을 싹 지운다.
이거야 말로 완전 신세계였다. 덕분에 6시간 걸렸던 컷편집이 2시간으로 줄게 되었다. 요즘 나는 '프리미어 프로'에 정착해서 이걸로 편집을 한다.
그 밖에 아이패드 앱인 '루마 퓨전'을 쓰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요즘 워낙 다양한 편집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 있으니,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써보다가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걸 하나 선택해 정착하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주변에 영상 편집에 대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유튜버 선생님들을 괴롭히면 된다. 나는 주로 '편집하는 여자' 채널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무엇보다 편집을 속성으로 빠르게 배우고 싶다면, 일단 내가 편집을 시작해야 한다. 관련된 책을 하나 펴 놓고 'A부터 Z까지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겠다!'하며 정독해봤자다. 힘들기만 하고 별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내가 뭘 알고 싶은지, 뭐가 부족한지는 일단 편집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검색의 질도 좋아진다. '자연스럽게 영상 전환하는 법', '모자이크 넣는 법', '효과음 다운' 기타 등등. 구체적으로 내가 필요한 것만 딱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그걸 바로 내 영상에 적용시킬 수도 있고. 이렇게 하다 보면 편집에 걸리는 시간도 훨씬 단축된다.
카메라의 경우?
처음엔 우리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 화려한 영상미를 뽐내는 다른 영상들이 부러워졌다. 대충 몇몇 차박 유튜버들이 본문 글에 적어 놓은 카메라 이름을 보고 우리 역시 따라서 샀다.
첫 번째는 미러리스 카메라였고, 그다음엔 브이로그용 전용 카메라였다. (백종원 아저씨가 예능에서 자주 들고 다니는 것)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핸드폰 카메라로 돌아왔다. 요즘엔 워낙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다 보니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영상을 찍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핸드폰 카메라가 좋은 이유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점에 있다. 어쨌든 카메라를 쓰다 보면 장비 세팅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촬영하다 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순간을 포착하는 게 중요한데, 세팅에 신경 쓰다 보니 재밌는 순간들을 제법 많이 놓쳤다.
백번 양보해 계속 카메라를 켜 놓고 찍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러다 보면 영상의 분량이 너무 길어진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편집에 걸리는 시간은 배로 늘어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튜브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콘텐츠의 영역이다. 현란한 드론 영상이나 웬만한 방송사 뺨치는 카메라로 영상미를 뽐내는 채널들도 많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기발한 상황을 잘 포착하느냐, 재미있는 캐릭터를 그려내느냐, 에 있다.
심지어 우리 같은 경우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망한 차박 영상이 조회수가 꽤 좋았다. 좌충우돌, 어설픈 캠핑 영상도 사람들이 좋아한다. 결국엔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재밌게 펼치느냐, 그걸 영상에 잘 담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썸네일의 경우?
아무리 해도 포토샵은 어려웠다. 대신 내가 선택한 방법은 탬플릿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요즘 나는 '망고보드'라는 곳을 이용한다.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유튜브 썸네일 탬플릿이 많다. 물론 거기서 좀 더 예쁜 폰트, 좀 더 화려한 배경을 쓰고 싶다면 유료로 전환하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탬플릿을 만들어 놓고, 사진과 제목만 바꿔서 사용하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채널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좀 더 명확하게 바바TV 채널의 영상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식으로 제목은 하얀색 한 줄과 노란색 한 줄, 가독성이 좋은 볼드체로 쓴다. 그 아래에 넣는 사진은 최대한 전체 풍경이 잘 보이는 것으로 선택한다. 차박이나 캠핑의 경우, 서사보다는 자연 풍경을 대리 체험하고 싶어서, 혹은 노지나 캠핑장의 정보를 알고 싶어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꼭 야매 요리 전문가라도 된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영상에 있어 아직도 미슐랭 셰프가 되지 못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가장 쉽고 편하게 요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신기하기는 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첫 번째로 업로드한 영상을 봤는데,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 몸을 배배 꼬았다. 그래도 부끄러운 걸 아는 걸 보니 5년 동안 발전이라는 걸 하긴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