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초부터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캠핑' 붐이 일었다. 집합 금지 명령 때문에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 해외 여행길도 막혀버린 상황에서, 사람들은 캠핑으로 시선을 돌렸다. 특히 '차박'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오죽하면 뉴스에 차박 붐이 보도될 정도였다.
을왕리에서의 첫 번째 차박 이후로 우리 부부는 완전 차박에 푹 빠져 버렸다. 게다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공연 업계' 였기에 당시 우리는 거의 반백수 상태였다. 일 년 치 미리 잡혀 있던 공연이 대부분 취소됐다.
일은 없는데 시간은 너무 많았다.
집에서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본격적으로 유튜브나 키워보자!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부지런히 다음 차박을 떠날 준비를 했다.
처음엔 집에 있는 이불만 달랑 들고 무작정 떠났었기 때문에, 이번엔 꼭 필요한 용품들 몇 개도 구입하기로 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코펠 세트와 삼계절 용 침낭.
일단 코스트코로 향했다. 최대한 저렴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휴대용 LED 랜턴 3개를 2만 원 대에 구입했다.
결론은? 한 달 만에 바로 당근 행.
건전지 값이 랜턴 값보다 더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켜 놔도 어둡기만 했다. 랜턴이라면서 전혀 랜턴 구실을 못하는 녀석이었다.
요즘 우리는 '크레모아' 랜턴을 사용한다.
가격은 10만 원 후반 대인데 집에 있는 웬만한 형광등보다 밝다. 게다가 C 타입 충전이 되고, 용량도 넉넉해서 2박 3일 정도는 거뜬하게 쓴다. 물론 이것보다 훨씬 더 좋은 랜턴이 많이 있다. 문제는 가격인데, 차박이나 캠핑을 한 번이라도 해본 분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랜턴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우리처럼 괜한 헛돈을 쓰지 않으려면 랜턴은 처음부터 좀 좋은 것으로 사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테이블. 4만 원 대에 구입한 캠토리 접이식 테이블이다.
처음엔 접이식 테이블을 보고 완전 차박에 찰떡이다, 싶었다. 무엇보다 수납부피가 작아서 어디든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차 안에서도 쓸 수 있고.
그러나 써보니 알게 됐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대식가였다. 맛있는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차박을 다니는 인간들이었다. 당연히 저 정도 사이즈로는 성에도 안 찼다. 두 달 만에 중고나라 행.....
요즘 우리가 쓰는 건 마렉스 롤테이블 1200이다. 말 그대로 가로 사이즈가 1200이나 되는 탓에 편하게 요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롤테이블이라 상판을 돌돌 말아주면 생각보다 수납부피는 그렇게 크지 않다. (물론 무게가 좀 무겁고, 접어도 가로 사이즈는 그대로다)
그 밖에 의자나 소품들 역시 그때그때 우리의 필요성에 맞게 구입하고 처분하는 등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대망의 카 텐트.
처음 우리가 구입한 D4 카 텐트.
2019년 차박을 시작할 당시, 열심히 영상도 찾아보고 블로그 서치를 해가며 겨우 찾아낸 카 텐트였다. 인터넷으로 20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 나름 텐트인데 설치가 말도 안 되게 편했다. 사실 설치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양말 신듯 트렁크에 씌우기만 하면 된다. 안에는 모기장이 있고 우레탄 창도 있다. 천도 나름 짱짱하고 두껍다. 당연히 방수도 다 된다. 다른 소품들을 구입했을 때와는 달리, 텐트를 샀을 땐 '우리 이제 진짜 차박 시작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고작 트렁크에 천 하나 씌웠을 뿐인데 제법 차박 분위기가 잡혔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차박지, '연천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이제 막 차박이란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시점이라, 처음 보는 카 텐트가 신기했던 모양인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구경을 왔다.
무엇보다 카 텐트의 장점은, 트렁크 문을 열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차 안에 누워 바로 앞에 있는 주상절리를 물끄러미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모기장 안으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잠도 잘 왔다. 당연히 촘촘한 모기장 덕분에 벌레도 차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이래서 차박, 차박, 하는구나. 제대로 쐰 바깥바람에 절로 기분이 들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날 때도 좋았는데, 허접한 장비라도 몇 개 챙겨서 떠나니 한층 더 차박하는 느낌이 나서 좋았다.
텐트도 쳤겠다,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은바가 야심 차게 준비한 '유명 카페 st 브런치 세트'.
일단 코펠에 계란을 터뜨린 뒤, 프라이를 하기로 했다.
젠장. 싸구려 코펠이어서 그런지 기름을 넉넉하게 둘러도 계란이 바로 눌어붙었다.
"원래 브런치에는 프라이 말고 스크램블 놓는 거 알지?"
은바의 말 한 마디에 메뉴가 바로 변경되었다.
그래, 프라이면 어떻고 스크램블이면 어떠랴. 다 같은 계란인데. 어차피 브런치는 베이컨 맛이잖아? 어느새 갈색으로 변한 코펠 위에 베이컨을 올릴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베이컨이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우유는 쏟아지고, 바나나는 옆 텐트까지 굴러가 있고. 이런 난리 부르스가 없었다. 흙이 잔뜩 묻은 빵을 겨우 입에 밀어 넣으며 겨우 식사 비스무리한 것을 마쳤다. 먹는데 1분, 치우는데 30분이었다.
"이러니까 도킹텐트를 사야 한다고."
은바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베이컨을 주우며 툴툴댔다.
"알지? 차박은 원래 장비발이야."
"......."
그놈의 장비발 세우다 통장 거덜 나겠네. 아니, 언제는 차박이 쉽고 간편해서 좋다며.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났다.
"도킹텐트? 너 지난주에 카 텐트 사지 않았니?"
내 말에 이미 셀렉해 놓은 텐트 사진을 보여주며 은바가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
"자기야. 도킹텐트랑 카 텐트는 엄연히 다르다고."
그래봤자 텐트인 건 똑같은데. 게다가..... 차박은 번잡하게 텐트를 안 칠 수 있어서 좋다고 했었잖아?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은바의 모습을 보며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 사진 속 도킹텐트의 모습에 시선이 갔다.
도킹텐트는 말 그대로 docking을 한 것처럼 트렁크에 텐트를 결합시킨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차에서는 잠만 자고, 도킹텐트 안은 쾌적한 리빙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안에서 밥도 해 먹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차박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바람 조금 분다고 베이컨으로 싸대기를 안 맞아도 된다는 뜻.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아주 추운 겨울날에도 차박을 떠날 수 있다는 것. 도킹텐트 안에 난로를 놓고 써큘레이터까지 틀어놓으면 은은하게 감도는 온기가 차 안까지 퍼진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폴대가 이미 텐트 안에 다 포함되어 있어, 별다른 노력 없이 폴대를 쭉쭉 피기만 하면 뚝딱 완성된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 세상에 좋은 건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돈이 없어서 그렇지.
"원래 처음 유튜브 시작할 땐 투자를 좀 해야 돼."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은바는 바로 전략을 바꿨다.
투자 좋지. 그런데 대체 수익은 언제 날까? 이러다 평생 투자만 하게 되는 거 아냐? 막말로 우리가 좋아서 시작한 차박이었지만, 사실 나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만약 우리 채널이 떡상하기만 한다면! 알고리즘의 수혜를 입는다면! 그래서 유튜브가 대박이 난다면!
코로나로 공연 업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우리는 '유튜버'로 바로 전직을 할 수 있다. 투잡을 넘어서 이게 우리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즐겁게 차박을 하면서 영상도 찍고 돈도 벌 수 있다.
그 생각을 하자, 은바의 말도 일견 일리는 있어 보였다.
"다른 차박 영상들 보다가 우리 꺼보면 너무 허접해서...."
"......"
"좀 부끄러워."
은바가 마지막으로 수를 던졌다. 어쩐지 잔뜩 기가 죽어 있는 유튜버 꿈나무를 보자 속이 조금 쓰렸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래, 그 '투자'라는 거 한번 해보자.
그제야 나는 도킹텐트 구입을 허락했다. 입만 삐죽 내밀고 있던 은바가 드디어 활짝 웃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차박은 장비발이야'라는 은바의 말이 가져오게 될 여파를.
차박은 장비발 (2) 미리 보기
우리가 호기롭게 구입했던 도킹텐트의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