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첫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채널명과 닉네임을 정하는 것이다. 일단 채널명은 차박 채널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어야 했고, 닉네임은 앞으로 내내 불려야 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했다.
"당신 닉네임 뭘로 할 거야?"
내 말에 남편은 깊은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은바!"
풉. 그 말에 헛웃음이 바로 터졌다. '은바'는 '은영이 바보'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민망하지만 은영이는 내 이름이다. 이런 팔불출 같은 닉네임이라니. 이미 망했다.
내 나이 스물여덟, 남편의 나이 스물아홉에 우리는 한예종에서 처음 만났다. 시작은 내 수업 과제를 남편이 도와주게 되면서부터였다. 전문사 음악극창작과에 재학 중이었던 나는 전공 필수 과목인 '전통음악극연구'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다.
과제는 희곡 <안티고네>의 한 대목을 따서 판소리 대본으로 옮기기. 그리고 전통원 친구에게 부탁하여 그 대본을 녹음한 뒤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학부를 다른 곳에서 나온 탓에 부탁할 만한 전통원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동기 중에 연극원 연출과 출신 언니가 한 명 있었다. 학교에서 여러 작업을 해왔던 터라 알고 있는 전통원 친구들이 많았다. 느닷없는 언니의 부탁에 졸래졸래 끌려 나온 사람이 바로 전통원 졸업생이자, 훗날 내 남편이 되는 민현기이다.
허름한 야상 점퍼를 입고, 각진 백팩을 메고 있는 모습이 뭐랄까. 스물아홉 졸업생이라기보다, 이제 막 첫 번째 OT에 참석한 신입생 같았다. 쑥스럽다는 듯 순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영농후계자의 모습 같기도 했다. 순박한 시골 청년 같달까.
빈 강의실 하나를 잡고 현기 씨와 나는 마주보고 앉았다.
"이게 제가 쓴 대본인데요. 너무 허접하죠?"
프린트를 내밀며 나는 멋쩍게 웃었다. 판소리극은 티브이에서 몇 번 본 게 다였다. 그런 내가 대본까지 쓰고, 그걸 전공자 앞에 내밀자니.... 참으로 민망했다.
"아, 아닙니다. 근데 제가 사실은 말이죠...."
현기 씨 역시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곰곰 들어보니 사정은 이랬다. 저 역시 부탁을 받아서 왔긴 했지만, 판소리 전공이 아니고 장구 전공이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보고 듣긴 했지만, 이걸 녹음까지 해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한다니 실로 부담된다.... 기타 등등.
"부탁하는 마당에 죄송한 말이지만, 뭐 제가 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대충 이런 식으로 설득해 가며 나는 겨우 녹음기를 켰다.
"것이렸다? 것이렸다. 것이렸다!"
현기 씨는 그때부터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녹음 작업에 착수했다. 장구 전공인 사람이 난생처음 허접한 판소리 대본을 앞에 두고, 여러 번 톤을 바꿔가며 부단히도 열심히 읽어댔다. 그러는 사이 4시간이나 흘렀다.
저한테 왜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시나요,라고 툴툴거릴법도 한데....한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너무 감사해서요. 혹시 시간 되시면 제가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싶은데."
현기 씨는 옆에 놓인 가방을 챙기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요. 밥은 다음에 먹어요."
현재 시각 오후 7시.
바로 뒤도 아니고, '내일' 있을 일정 때문에?
이건 또 다른 의미의 거절인가?
곰곰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현기 씨는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아쉬웠다.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는데. 나는 오늘 고마웠다며 상품권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으로 그날의 인연을 마무리 지었다.
어쨌든 며칠 뒤, 현기 씨 덕분에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그를 소개해 준 언니와 수업이 끝난 뒤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현기 씨한테 너무 고마워서 밥 사겠다 했는데 그냥 가버린 거 있지! 좀 아쉽네. 호감상이었는데."
어렵게 말을 잇자니, 눈앞에 현기 씨의 순박한 얼굴이 바로 떠올랐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그때였다.
"야, 이 기지배야! 그 얘기를 왜 이제 해!"
"왜?"
"걔 지금 브라질 가 있는데!"
아아, 중요한 일정이라는 게 브라질 가는 거였어? 들어보니 현기 씨는 한 달 동안 브라질에서 공연을 하고 돌아올 예정이라 했다.
"그럼 지금 문자 해. 잘 있냐고, 한국 오면 얼굴 보자고."
"나는 이미 한 번 까였는 걸?"
"그냥 모른 척하고 보내. 오빠 거기 많이 더울 텐데 잘 지내시나요? 그때 감사했어요. 오면 술 한 잔 해요. 아, 그리고 올 때 선물 사 오세요,라고."
"그런 문자를 상스럽게 어떻게 보내!"
내 말에 언니는 핸드폰을 덥석 뺏었다. 그대로 본인이 뱉은 말을 충실하게 문자로 담아 현기 씨에게 전송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선물 사 오라는 문자를 불쾌하게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그때 띠링, 바로 현기 씨한테 답문이 왔다.
[하하^^;;; 네네. 그럴게요.]
문자만 보는데도 그때처럼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그 이후로 현기 씨는 브라질에서, 나는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며 가끔 이런저런 문자를 주고받았다.
늦은 봄에 떠났던 현기 씨는 초여름이 되어서야 한국에 돌아왔다.
드디어 현기 씨와 밥을 먹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내가 사겠다고 호기롭게 말을 꺼냈던 터라, 나름 열심히 평점도 살피고 블로그 후기도 읽으며 겨우 찾은 맛집 주소를 보냈다.
회기역 쪽에 있는 한 유명 고깃집에서 현기 씨와 한 달 만에 다시 만났다.
"현기 씨. 혹시 막걸리 드세요?"
그동안 내가 봐 왔던 탈춤 동아리 친구들은 죄다 막거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당연히 장구잽이 현기 씨도 막걸리를 좋아할 줄 알았다.
"아아, 저는 와인 좋아합니다."
"......"
"농담이에요. 다들 전통하는 친구들이 막걸리만 마신다고 오해하더라고요. 그건 아닌데. 여튼 저는 다 잘 마십니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우리는 막걸리 말고 와인 말고 소주를 마셨다.
대학가라 그런지, 유명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이 제법 많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대화 좀 나눠보고 싶었는데....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앞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서버의 현란한 손짓도 한몫했다. 그냥 굽기만 해도 맛있을 삼겹살을 놓고 토치로 지지고 불쇼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혹시 식사 다 하셨으면 2차는 조용한 데로 갈까요? 제가 잘 아는 곳이 하나 있는데."
내내 기다렸던 현기 씨의 말이었다. 나는 바로 지갑을 들고 계산부터 했다.
현기 씨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작은 이자카야였다. 옹기종기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귀여운 소품들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테라스 자리도 딱 하나 남아 있다.
"왠지 이런 곳을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센스 있게 자리를 옮겨 준 그에게 단박에 호감이 생겼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술이 한 잔, 두 잔, 잘도 들어갔다. 안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와의 대화였다. 상대의 말을 내내 경청하다, 나직한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던지기도 하고, 또 느긋하게 화제를 바꾸기도 하는 편안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결국 우리는 그곳에서 여섯 시간이나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도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 친구가 얼마 전에 <엣지 오브 투모로우>라는 영화를 봤는데, 세상에, 그게 그렇게 재밌었대요!"
"아, 그래요? 근데 저 화장실 좀...."
나름 던져 본 수였는데. 현기 씨는 무심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다시는 내가 먼저 뭘 하자는 말은 안 꺼낸다. 어느새 다시 이쪽으로 걸어오는 현기 씨를 보며 나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그때였다.
"마침 강변 CGV에 좋은 자리가 딱 두 개 남았네요. 괜찮으면 내일 보러 가실래요?"
센스 있게 화장실 가는 척하며 예매를 마치고 돌아온 현기 씨의 모습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도 한 번 거절을 당한 터라, 나는 부러 무심한 척 대꾸했다.
"뭐 그럴까요? 그럼?"
우리는 다음 날에도 만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고, 돌아가는 길에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만날 때도 사람이 참 착하고 진국이라 생각했다. 만난 지 3개월 정도 됐을 무렵. 현기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이라면 결혼까지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도 하나 생겼다.
현기는 나름대로 전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장구를 치기 시작한 현기는 곧 예고에 입학했고, 한 해에 10명 남짓 뽑는 한예종 전통원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나 한예종에 입학하는 순간 쭉쭉 앞으로만 뻗어갔던 전통 인생의 그래프가 꺾이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장구와 재담과 탈춤과 악기와 연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이 바로 전통원 연희과였다. 게다가 현기가 그동안 해왔던 설장구는 주류에서 인정하는 장단 장구와 거리가 멀었다.
물론 연희자이긴 했으나, 현기는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했다. 솔직히 앞으로 연희자로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고 한다. 졸업을 한 뒤, 현기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연극 조연출도 하고, 레스토랑 주방에서도 일하고, 콜센터에서도 일했다.
그러나 '곧 죽어도 예술'이라는 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기의 모습은 뭐랄까. 좀 이단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을 터였다. 어느 순간부터 현기는 주류에서 슬슬 밀려나기 시작했고, 그 즈음에는 함께 하자는 연희자도, 불러주는 팀도 없었다.
그런데도 현기는 끝까지 연희자로 남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차분하게 다음을 도모했다. 언젠가 자신을 다시 불러줄 날만 기다리며, 계속 학교 언저리에서 머물렀다.
어쨌든 혼자 자취를 하는 상황에서 돈은 벌어야 했기에 또다시 일을 알아보고 있던 중, 현기를 좋게 본 학교 관계자 분이 일을 하나 맡겼다. 한예종 극장 안에 있는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학교 안에 있는 자판기를 관리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솔직히 말해 나 같았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활발하게 연희자로 활동 중인 동기들이 연습하는 건물의 자판기 관리인이라. 어떤 선생님은 극장동에서 앞치마를 입고 있는 현기를 발견하고 대놓고 이렇게 묻기도 했다.
"야, 너 거기서 뭐 하냐?"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동기들이 모두 현기를 쳐다봤다. 멀찍이 앉아 있던 내 얼굴이 다 붉어졌다. 그런데도 현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선생님. 저 여기서 커피 내립니다. 드립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실제로 몇몇 선배들은 커피를 내리는 현기의 모습을 보며 '이제 장구잽이가 아니라 커피 돼지'가 됐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현기는 그 말에 무던한 표정을 지으며 씩 웃을 뿐이었지만, 나는 속이 타다 못해 아릴 지경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전통원 건물 안에서 자판기 순회를 하고 있을 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현기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마지막 자판기 하나 남았다. 차분하게 열쇠로 자판기 문을 잠그고 있을 무렵, 막 연습실에서 나온 후배들이 현기를 발견했다.
"엇, 현기 형 아니세요?"
속말은 이랬을 것이다. 형이 왜 학교 자판기를 관리하고 있나요?
장구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고 있는 후배들을 보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현기가 민망해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현기는 아무렇지 않게 음료수 몇 개를 꺼내 후배들에게 건넸다.
"요즘 연습하느라 많이 힘들지? 그거 내 돈으로 뽑은 거다. 마시고 들 해."
어버버, 하며 음료수를 받아 드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현기는 활짝 웃으며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 왔다. 나는 현기의 그런 위트와 어른스러움이 좋았다. 매사에 당당한 모습이 좋았다.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만약 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저런 사람이랑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는 현기의 자취방에서 늦은 저녁과 함께 술을 마셨다. 현기는 그렇게 피곤한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제육볶음과 두부김치를 뚝딱 만들어 내왔다. 이미 그의 자취방은 우리의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선반에는 둘이서 함께 고른 화분들이 쭉 놓여 있었다. 그의 작은 공간엔 온통 우리, 그리고 나뿐이었다.
입 안에 두부 하나를 넣으며 괜히 농담처럼 그에게 물었다.
"오빠는 내가 그렇게 좋아요?"
"그럼. 오빠는 은영이 바보야."
은영이 바보,라는 말은 살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바보 같은 말이었다. 그만큼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말이 어디 있는가. 바보라니. 그것도 은영이 바보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유치한 말이 내 심장을 후벼 팠다.
사실 나 역시 늦은 나이에 한예종에 들어오면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나름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뮤지컬 작가가 되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 들어왔는데, 한 학기만에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이건 대본이 아니다, 문장에 힘이 없다, 너는 진지하게 다른 일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기타 등등의 말만 들었다.
도대체 나는 여기 왜 온 걸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말 하나에 온통 휘둘리는 내가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잘하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그깟 대사 한 줄도 제대로 못 쓰는데.
그런데 현기는 고작 10분짜리 뮤지컬 하나 만드는데 한 학기를 다 바치는 내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몰래 연습실에 들러 음료수와 간식을 놓고 갔고, 작은 리딩 공연 하나 마쳤을 뿐인데도 마치 내가 대극장 뮤지컬 입봉 작가라도 된 듯 자랑스러워했다.
"난 은영이 네가 정말 좋아. 네가 쓰는 글도 좋고, 네가 뭐든 열심히 하는 것도 좋고, 내 친구들한테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고. 정말 다 좋아. 그래서 나는 너 바보야."
"유치해 죽겠네. 진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불쑥 눈물이 터졌다. 아마 나도 심적으로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은영이 바보'도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왜 내 작품을 몰라줄까. 온종일 글만 쓰는데 왜 자꾸 혼만 나냐고. 왜 맨날 욕만 먹냐고.
며칠 뒤. 현기가 불쑥 사진 하나를 보냈다. 하얀 꽃 사진이었다.
[은영아, 너 치자 알아?]
[이거 꽃 피우기 정말 힘든 건데, 봐봐. 이렇게 꽃을 피웠잖아.]
[정 작가가 꽃길만 걷길 응원합니다^^ - 은바(은영이 바보)]
수업을 마치고 당장 남편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치자 꽃에서는 달달한 바닐라 향이 났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다정한 응원을 받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게도 치자는 나의 입봉작 뮤지컬 <판>이 처음 공연 했던 날에도 꽃을 피웠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2017년 초연으로 시작했던 작품은 2024년이 된 지금까지 꾸준하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이건 모두 치자와, 열심히 꽃을 피워준 현기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는 3년 동안 서로의 바보를 자처하다, 마침내 평생의 바보가 되어주기로 결심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당연하지만 전통 혼례로.
그렇게 현기의 닉네임은 '은영이 바보'의 줄임말, '은바'로 정해졌다. 나도 나름 구색을 맞추기 위해 '민바'로 닉네임을 지었다. '민현기 바보'의 줄임말이다. 채널명은 닉네임의 끝 자를 따서 '바바TV'로 정했다. 어쩐지 좀 촌스럽고 유치한 이름이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바보 같은 우리와 딱 어울리는 느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