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새벽안개가 짙게 깔린 청량리 골목, 허름한 순댓국집 안. 우리는 식은 수육을 앞에 두고 묵묵히 소주만 마시고 있었다. 정적을 깨듯, 우리 중 제일 연장자인 공룡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야, 이번 겨울에 다들 뭐할 거냐?”
“글쎄. 뭐 단기 알바 같은 거라도 있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너구리가 무심한 어투로 대꾸했다.
“있으면 말했지.”
“하긴.”
모두 앞에 놓인 술잔만 기울일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때 나는 머릿속으로 이번 겨울엔 또 어디서 대출을 땡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결혼할 때 받았던 예물은 이미 작년 겨울에 팔아버렸다. 더는 팔 것도 없다.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나를 포함하여 총 여덟 명. 우리는 ‘석관부락민’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모임의 멤버들이었다. ‘석관부락민’은 말 그대로 석관동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석관동에 있는 한예종을 졸업했고, 자연스럽게 모두 석관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와 남편은 멤버들 중 처음으로 결혼을 했는데, 당연하게도 신혼집 역시 석관동에 마련했다.
잠시 석관부락민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우리 중 제일 연장자이자 단톡방에 가장 자주 글을 올리는 공룡 – 전통원 연희과 졸업. (장구 전공)
2. 공룡과 4년째 연애 중. 공룡과 띠동갑에서 딱 1살을 뺀 나이 차이의 토끼 – 전통원 연희과 졸업. (무속 전공)
3. 스스로 장구의 신이라고 생각하며 부업으로 장구채를 깎아 팔기도 하는 너구리 – 전통원 연희과 졸업. (장구 전공)
4. 너구리와 3년째 연애 중. 지금은 전문사(대학원) 과정에 재학 중이면서 조교 활동까지 병행 중인 소니 – 전통원 무용과 졸업. (한국무용 전공)
5. 한 달에 두 번 정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는 깔끔한 성격의 조조 – 전통원 연희과 졸업. (소고 전공)
6. 3수 끝에 연희과에 입학한, 조조와 6년째 연애 중인 이 모임의 막내 돌고래 – 전통원 연희과 졸업. (장구 전공)
7. 졸업 후에 바리스타, 콜센터 직원, 노가다 등 여러 일을 전전하다 얼마 전 다시 장구채를 잡은 나의 남편 현기 – 전통원 연희과 졸업. (장구 전공)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석관부락민 대부분은 연희과를 졸업했다. 잠시 ‘연희’에 대해 설명하자면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총체적 예술을 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사물놀이, 탈춤, 인형극 등등.
8.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예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문학특기생으로 서울에 있는 한 여대의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1학년 말, 1지망부터 7지망까지 원하는 과를 적어서 내야 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관계로 7지망으로 썼던 철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 내내 술만 마시고, 책만 읽고, 연애만 했다. 6년 만에 간신히 졸업해서 겨우 판교에 있는 한 IT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 취직했다.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철학자들의 책을 읽다가,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세계 속에 편입되다 보니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즉흥적인 성격인데다 뭐든 하나에 꽂히면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로 과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봤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내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다. 두 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1년 8개월 동안 다녔던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고 한예종 음악극창작과 극작 전공에 원서를 넣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 다행히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글은 쓰지 않고 연애만 했다. 이번엔 수업 과제 때문에 우연히 만난 연희과 졸업생이 내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다. 3년 동안 신나게 연애만 하고,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부터 했다.
2019년 1월 당시 나는 결혼 2년 차의 주부이자, 대학원 학생이자, 뮤지컬 <판>이라는 작품으로 이제 막 입봉한 꼬꼬마 작가였다.
“대충 다 먹었는데 3차는 등대에서 마실까?”
너구리가 빈 소주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등대’라는 단어가 들리자, 나는 곧장 눈을 흘기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안 돼.”
“야, 이 시간에 문 연 데가 거기밖에 없잖아.”
시계는 벌써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의 신혼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석관동 등대’로 불렸다. 어두운 바다처럼 보이는 골목에 항상 불이 켜져 있는 집 하나. 주변을 지나다 술이 고픈 친구들은 언제나 우리 집의 문을 두드렸다.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은 언제나 거실에 있는 소파를 밀어둔 채, 커다란 상을 깔았다. 이게 웬 21세기 주막이냐, 싶은데 정말 그랬다. 심지어 열일곱 평인 작은 집에서, 열다섯 명이 공연 뒤풀이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다들 열심히 돈을 벌고 있을 때의 낭만이다. 이렇게 한가하게 놀고만 있는 사람들의 술까지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정말 다들 생계 걱정은 안 하는 건가?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자.”
내 눈치를 살피던 현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겨우 안도했다. 슬슬 이 자리가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다.
“이렇게 술 마시고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노는 것도 지겹다.”
현기는 마지막 술잔을 헛헛하게 넘기며 말을 이었다. 본인 말대로 요즘 그는 집에서 언제 나갈까 싶을 정도로 내내 집에만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할까 봐 일부러 선수치는 건가? 그런 것치고는 너무 잘 놀던데....
“그리고 이젠 술도 맛없어. 언제까지 이렇게 술쟁이로 살 것도 아니고.”
얼마 전 연희자에서 술쟁이로 전직한 남편의 능청스런 말에 나는 입을 헤, 벌리고 기함했다. 역시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어쨌든 지금 현기를 비롯한 석관부락민 모두는 잠정적으로 백수 상태니까.
여기서 잠시 연희자들의 1년 루틴에 대해 말해보면 좋을 것 같다.
1~3월: 거의 백수로 지낸다. 겨울에는 대부분 축제나 공연이 없기 때문에. 물론 투잡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단기 알바를 하는 사람도 있고, 레슨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겨울잠을 잔다.
4~6월: 슬슬 동굴 밖을 벗어나 일을 시작하는 시기다. ‘놀기 딱 좋은 날씨다’라고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이들의 일상 역시 바빠진다. 야외 행사가 많아지는 시즌이므로 주로 바깥에서 공연한다.
7~12월: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온갖 축제와 행사에 참여하는 시기. 하루에 공연 2개와 연습 1개는 기본이다. 남편에게 제일 극강의 스케줄이 뭐였냐고 물었더니 해남 땅끝마을 ‘당일치기’ 공연이라고 했다. 나 역시 이즈음에는 남편의 얼굴을 일주일에 한번 볼까말까다.
그리고 다시 1월이 찾아온다.
얼굴만 봐도 애틋한 마음이 생겼던 게 언제였나 싶을 만큼 이젠 등짝만 봐도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그동안 빡세게 달렸으니 이렇게 집에서 쉴 수도 있는 거지, 라고 속으로 생각해도 그 시간이 너무 오래일까 두렵다. 대출 이자는 연희자들의 휴식기를 봐주지 않는다. 돈을 벌어도 못 벌어도 매달 이자는 내야 한다.
이럴 땐 나라도 나서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얼마 전 마감을 친 작품 하나가 유독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게 했던 탓인지, 나 역시 겨우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수습하고 있던 중이었다. 워드 창이 꼴도 보기 싫었다. 생계형 작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진짜 겨울에 뭘로 돈 버냐고.”
반쯤 채워진 소주잔을 들어 헛헛하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오늘따라 술맛이 유독 썼다.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식은 수육 하나를 집을 무렵, 사람 속도 모르고 옆에서 깔깔거리고 있는 조조와 눈이 마주쳤다.
“넌 뭘 그렇게 보고 있냐?”
내 말에 조조는 자신의 핸드폰을 쓱 앞으로 내밀었다.
“유튜브.”
영상 속에서는 한 먹방 유튜버가 허겁지겁 매운 실비 김치를 입에 밀어넣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이 매우 낯이 익었다.
“헐, 저 사람 H 오빠 아냐?”
“어, 맞아.”
화면은 어느새 전환돼, 지금은 휴지로 눈물 콧물 닦고 있는 그 먹방 유튜버는 조조와 같은 팀에서 활동 중인 장구잽이 H였다.
제목 : [실비김치 먹방 ASMR] 조회수 18.
양념 가득한 김치를 입 안에 넣은 채,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이 고통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먹방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속 김치만 먹고 있는 행동이 어이없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모두 잔을 내려놓고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야, 너도 유튜브 해.”
멍하니 영상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내게 조조가 말을 건넨 건 그때였다.
“내가?”
“응. 너 가끔 영상도 만들잖아.”
가끔 나는 여행 사진이나 공연 사진을 여러 개 이어붙인 뒤, 나름 신나는 배경 음악을 깔아서 만든 ‘조악한 영상’을 공유하곤 했다. 뭐랄까, 사진이 움직인다는 면에서는 영상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엄연히 말해 유튜브에 올릴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는 못 됐다.
“그리고 유튜브가 수입이 꽤 된다 그러던데?”
요즘은 연예인들도 유튜브를 하는 시대지만, 2019년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유행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주로 일이 들어오지 않아 생계 걱정을 하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야, 너도 유튜브 해’라는 말이 밈처럼 떠돌았다.
그러나 말은 쉽지. 정작 그 말을 꺼낸 사람부터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 어쨌든 콘텐츠를 제작해서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 시도는 해볼 수 있겠으나, 그걸 매주 꾸준히 한다는 건 다른 영역의 일이다.
“너도 하면 잘할 거 같은데? 너 작가니까 네가 컨셉 잡고, 현기 형이 영상 찍어주고.”
"참 나. 내가 무슨 유튜브를...."
그렇게 웅얼대긴 했지만, 솔직히 그 허접한 실비 김치 영상이 내게 이상한 안도감을 줬다.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 하는 안일한 자신감마저 생겼다. 근데 도대체 뭘 찍을 건데? 당연히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 그때였다.
“만약 유튜브 한다면 나는 이걸 해보고 싶은데.”
내내 조용히 앉아 있던 현기가 자신의 핸드폰을 앞으로 쓱 내민 것은.
“이게 뭐야?”
“차박.”
영상 속에서 한 커플이 SUV 안을 예쁜 알전구로 꾸며 놓고 그 안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있었다. 다음 날, 트렁크 문을 쓱 열자 바로 앞에 바다가 보였다. 그 풍경이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번잡하게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됐고, 값비싼 캠핑 장비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간편하게. 나는 차박의 모토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거 노숙이랑 비슷한데?”
너구리의 빈정거리는 말투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상을 보는 순간, 이미 ‘차박’이라는 것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렸으니까. 벌써 과몰입이 시작됐다. 머릿속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것도 모자라, 현기와 내가 앞으로 쓸 닉네임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차박? 완전 괜찮은 아이템인데?”
주변 사람들이 호응해주자 그제서야 현기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근데 정말 유튜브로 돈 벌 수 있어?”
이미 머릿속으로는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리고 있었으면서 나는 부러 무심한 척 대꾸했다.
“해보면 알겠지, 뭐.”
우리 부부는 이럴 때 쿵짝이 제법 잘 맞는다. 세세한 문제들에는 겁을 내지만 정작 큰일에는 대범한 편인 남편과 나는 무엇보다 실행력이 좋다. 게다가 섬세한 성격인 남편을 보건대, 이미 ‘차박’이란 아이템을 던지기 전부터 무수히 많은 영상을 보며 ‘만약 유튜브를 한다면 차박으로 하리라’ 생각을 해둔 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옳다. 머리 싸매고 생계 걱정만 해봤자 돈도 나오지 않고 밥도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이 순간 뭘 할 수 있는지, 뭘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러나 우리 앞에 여러 문제도 있었다.
첫 번째. 차박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아직 차가 출고되지 않았다.
두 번째. 유튜브가 뭔지 잘 모른다.
세 번째. 차박 전문가가 아닌데도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장비가 하나도 없는데? 돈을 벌 생각으로 차박 유튜브를 개설했다 돈만 더 쓰는 거 아니야?
내가 몇 가지 문제를 제시했더니 역시 섬세한 성격의 남편은 차분하게 하나씩 예시를 들며 나를 설득했다.
한 달 뒤에 차가 나올 예정이니, 그동안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어떻게 편집하고 찍을지 감을 잡는다. 차박 장비는 처음부터 무턱대고 다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해본 다음 하나씩 천천히 늘려간다.
“일단 해본 다음.”
무엇보다 나는 남편의 그 말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못 먹어도 고. 일단 시작이 반이다. 역시 실행력 대마왕인 남편은 그 자리에서 계정부터 만들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몰랐다. 우리가 5년 넘게 차박 유튜버로 활동하게 될 줄은. 그리고 차박이 우리 부부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