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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바 Sep 28. 2024

장구 20년 쳤으니 말 다 했지

유튜브를 해보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유튜브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영상을 업로드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물론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모든 걸 둘이서 다 한다.


<은바의 일>

- 캠핑장 예약 

- 장 보기 

- 짐 싸기 및 정리 

- 촬영과 출연


<민바의 일>

- 영상 편집 

- 썸네일 제작

- 업로드 (제목, 본문 글, 태그)


이 일을 자그마치 5년 동안 매주 꾸준하게 해 왔다.


더욱이 우리의 콘텐츠는 '차박'이다. 그 말인즉슨, 영상을 찍으려면 일단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소리다. 어쨌든 일주일에 한 번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차박을 갈 수밖에 없다. 


처음엔 마냥 좋았던 것도 일이 되어버리니 재미가 반감됐다. 온종일 카메라가 돌아가는 차박 현장을 본 적이 있는가. 쉴 때는 오직 카메라가 꺼져 있을 때뿐이다.


게다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박이라는 한 콘텐츠로 밀고 나갔으니, 이젠 더 찍을 만한 아이템도 없다. 이미 300개나 찍었다. 여하튼 이번주도 뭐라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머리를 쥐어 싸매고 '찍을까' 고민한다. 그래봤자 뾰족한 수는 없다. 


나한테 제일 힘든 일은 그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마감이 있는 것 같아."


데드라인이 일주일마다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생각보다 더 미치게 만든다. 일주일 내내 목에 가시가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업로드 시간인 일요일 저녁 8시가 되기 전까지는 늘 이런 상태다. 영상 편집이 끝나지 않았다? > 밥을 먹어도 찝찝함.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도 찝찝함. 운동을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찝찝함. 그냥 24시간이 다 찝찝함.


게다가 유튜브 일은 물론 본업까지 해야 하니 숨이 다 가쁠 지경이었다. 당연히 영상 편집 일은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글을 쓰는 시간까지 쪼개 편집에 할애하고 있었다.


새삼 모든 게 다 억울해졌다. 내가 글을 못 쓰는 것도 유튜브 때문인 것만 같고, 내가 놀지 못하는 이유도 유튜브 때문인 것만 같고, 하고 싶은 일에 쉽게 도전을 하지 못하는 것도 유튜브 때문인 것만 같았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반발심부터 일었다.


"내 본업은 작가야. 유튜버가 아니라고."


은바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또 시작됐구나,라는 의미겠지. 매주 반복되는 푸념이었지만 은바는 묵묵히 내 말을 듣겠다는 의미로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지금 이게 뭐야? 편집 때문에 아무것도 못 쓰고 있잖아. 다음 달 초까지 대본 주기로 했는데, 한 자도 못 썼어."


사실 반은 핑계고 반은 사실이다. 내가 글을 못 쓰는 이유가 비단 유튜브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정신없이 편집을 끝내고 워드 창을 켜면 대뜸 한숨부터 나왔다. 


텅.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어떻게 대사를 고쳐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편집에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이미 에너지는 다 고갈 됐다. 레퍼런스 삼으려고 사놓았던 책들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이번엔 꼭 봐야지, 하고 적어놨던 공연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급기야 나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파업을 선언했다.


"이번 주는 영상 못 올려. 혼자서 라이브를 켜든, 편집자를 구하든 알아서 해."


내 말에 은바는 그제야 천천히 입을 뗐다. 


"일주일에 영상 하나 올리는 건 처음부터 했던 약속이잖아. 그리고 갑자기 업로드 전날에 이러면 어떡하니."


차분하게 설득을 시도해 봤자 소용없다. 업로드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아직 컷편집도 마치지 못했으니 밤을 새워서 하더라도 제시간에 올릴 수 없다. 그리고 이미 나는 편집 프로그램을 껐다.


"몰라. 됐고. 여하튼 난 못해."


"대충이라도 해서 올리자. 한 만큼만."


은바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 구독자들과의 약속이다. 바바TV의 영상 업로드는 무조건 일요일 8시니, 죽었다 깨나도 영상이 엉망진창이어도 그 시간까지 뭔가를 꼭 올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퀄리티 구린 걸 대체 왜 올려야 하는데? 그걸 누가 본다고.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 누가 시킨 일도 아니잖아."


나는 속도 모르고 자꾸 약속 운운하는 남편이 야속하고, 은바는 책임감 없이 기분에 따라 휘둘리는 내가 못 마땅하다. 이렇게 몇 번 언성이 높아지다 보면 결국 싸움이 된다. 


이런 일이 일 년에 두 번은 꼭 있다. 


사람마다 미치는 계절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봄에 한 번 미치고, 가을에 한 번 미친다. 하늘이 맑아지고 날씨가 쾌청해지면 마음이 선덕선덕 해진다. 보통 사람들은 이럴 때 차박을 가고 싶어 하던데, 나는 차박 이외에 모든 걸 다 하고 싶다. 


이번 주만 업로드를 미룰 수 있다면. 적어도 일주일은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할 텐데. 내가 편집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은바는 알까? 구독자와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내의 행복 아닌가. 


부부가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쓸데없는 감정까지 개입되어 문제다. 나는 바바TV 은바가 아니라 내 남편 민현기에게 서운했다. 내가 힘들어 죽겠다는데 고작 한 주 미루는 것도 안 된다고 해?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몇 시간 동안 나의 푸념을 듣고 있던 은바가 드디어 항복을 선언했다. 


"일단 내가 커뮤니티에 내일은 영상 업로드 못한다고 글 올릴게. 너도 며칠은 편집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기분 좀 풀어."


그제야 나는 코를 흥, 하고 풀었다. 눈이 퉁퉁 부었지만 입꼬리는 씩 올라갔다. 마음속 먹구름이 싹 거둬졌다. 


결국 남편은 구구절절 사유서를 쓰듯 커뮤니티에 공지글을 올렸다. 아니, 일 년 내내 영상을 올렸는데 한 주쯤은 편하게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닌가. 고작 유튜브 영상일 뿐인데. 이게 대체 뭐라고 죄송하다, 미안하다, 운운하는 글을 보고 있자니 또 속이 상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 나는 거칠게 핸드폰을 덮어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하던 친구에게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곰곰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현기랑 네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현기는 공연을 하는 사람이잖아. 공연자가 펑크를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걔는 무엇보다 약속이 중요하고, 남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게 중요한 사람이야."


그럼 나는?


"은영이 너는 무엇보다 완성도를 따지는 사람이지. 작가라는 직업이 그렇잖아. 네 마음에 들지 않는데 시간에 좇겨 계속 태작만 찍어내야 된다고 생각해 봐. 견딜 수가 없잖아. 그런 너한테는 차라리 한 주 미루고서라도 그다음 주에 더 재밌는 걸 올리는 게 맞는 거지."


그래, 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긴. 장구 20년 동안 쳤던 사람인데 말 다 했지."


친구의 말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느긋해지니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은바가 아니었다면 나는 유튜브를 한 달도 못 돼서 관뒀을 것 같다. 처음엔 신나게 시작했겠지. 그러다 점점 일정이 빡빡해지기 시작하면 바로 마음이 느슨해졌을 거다. 내가 이렇게 바쁜데 한 주쯤은 미뤄도 괜찮겠지. 어차피 나 좋다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할 이유 있어?


그리고 그깟 바바TV 영상이 뭐라고. 올라와도 그만, 안 올라와도 그만 아닌가? 세상엔 볼 것이 넘쳐 나고, 우리보다 훨씬 퀄리티 좋은 영상들이 쌓여 있는데. 무의미한 영상을 계속 올리는 것보다 괜찮은 콘텐츠 하나라도 제대로 올리는 게 맞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정성적 평가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량적 평가다. 콘텐츠를 대하는 시각의 차이이기에 어느 쪽이 더 맞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지난한 부부싸움 끝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바TV 라는 채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은바의 정량적 시선 때문이라는 것을. 


어떤 날은 만든 영상이 너무 재밌어서 기분 좋게 올린다. 어떤 날은 너무 별로인데도 어쩔 수 없이 올린다. 매번 좋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올릴 수는 없다. 그래도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한다는 데 있다. 


그게 쌓이고 쌓여 바바TV라는 채널이 만들어졌다. 허접해서 봐줄 지경이더라도 부끄러움을 참고 꾸역꾸역 했더니 4만 7천 명의 구독자가 모였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우리 차박 유튜버다,라고 있을 만큼의 콘텐츠가 쌓였다. 최소한 정성적 평가라도 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는 생겼다는 뜻이다. 


은바가 장구채 잡듯이 내 머리채를 잡고 '무조건 해야 해. 약속은 꼭 지켜야 돼.'라고 이끌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어쨌든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의 내면은 힘이 세다. 지난주와 똑같은 모습으로 짐을 싸는 은바를 보며 나는 묵묵히 속말을 삼켰다. 


하긴, 장구 20년 쳤는데 말 다 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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