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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바 Oct 05. 2024

남들과 조금 다른 퇴근박

요즘 차박러들 사이에서 '퇴근박'이 유행이다. 퇴근박은 말 그대로 집이 아니라 캠핑장으로 퇴근하는 것을 뜻한다. 


유튜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퇴근박 영상은 주로 이런 느낌이다. 


각 잡힌 정장을 입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K 씨. 온종일 밀려드는 업무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느새 퇴근 시간. 집이 아닌 캠핑장으로 차를 몬다. 도착하자마자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포장해 온 음식을 먹으며 잠시 잊고 있던 여유를 흠뻑 만끽한다. 영상 끝. 


우리도 퇴근박을 종종 한다. 내 말에 혹자들은 이렇게 반응할 듯하다. '아니! 직장도 다니지 않는 프리랜서인 너희가 무슨 퇴근박?'


그러나 우리 같은 프리랜서에게도 퇴근은 있다. 작가인 나에게는 '마감'이 퇴근이요, 연희자인 은바에게는 '연습이 끝나는 시간'이 바로 퇴근이다. 물론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우리 역시 직장인의 하루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낸다.


퇴근박을 워낙 자주 가다 보니 우리만의 소소한 팁도 생겼다. 오늘은 퇴근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쓸 만한 팁을 공유해볼까 한다. 



1. 무조건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아무래도 퇴근박이니만큼 거리에서 쏟는 조금의 시간도 아깝다. 그런 이유로 우리 역시 무조건 직장과 가까운 캠핑장을 찾았다. 


은바의 연습실이 있는 곳은 중화동. 거기서 제일 가까운 서울 외곽 지역은 '남양주'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남양주에 있는 캠핑장으로 예약했다. 네비로 찍어 보면 대부분 30분 이내로 나온다. 


대성학원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곳을 지나면 주르륵 캠핑장이다. 주말에는 예약하기 힘들다지만, 평일엔 대부분 자리가 텅텅 비어 있다. 게다가 요금까지 저렴하다. 


우리가 자주 찾는 곳은 남양주에 있는 '짱아캠핑장'이다. 은바의 연습실에서 정확히 17분 걸린다. 남양주도 워낙 방대한 곳이기 때문에 작정하고 안쪽까지 들어가면 시간이 꽤 오래 소요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남양주 쪽에서도 서울과 최대한 가까운 외곽 쪽에 있는 캠핑장을 골랐다. 



2. 최소한의 세팅


우리는 간단한 캠핑용품을 트렁크에 항상 넣고 다니는 편이다. 햇볕을 가려주는 타프, 경량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접이식 매트와 랜턴, 작은 버너와 그리들 정도. 


요즘엔 작고 가벼운 경량 용품이 많이 나와 있어 그렇게 많은 수납 부피를 차지하지도 않는다. 특히 타프의 경우, 차에 브래킷으로 연결해서 쓸 수 있는 간편한 것으로 사용한다. 타프 천은 접어 놓으면 돗자리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폴대의 경우 여러 번 접을 수 있는 가변형 제품을 쓴다. 


이렇게 차에 장착한 다음
가변 폴대에 꽂으면 아주 간단하게 타프가 완성된다. 


그러나 타프도 해가 늦게 지는 여름에나 치지, 봄이나 가을 같은 경우에는 이마저도 생략한다. 그냥 차에 매트 하나만 깔아놓고, 바로 밖으로 나와 테이블과 의자를 가볍게 설치한 뒤 거기서 논다. 



3. 간편 음식


편의를 위해서라면 아이스박스 하나 정도는 챙기는 것이 좋다. 요즘엔 맥주 사은품으로 작고 예쁜 아이스박스도 주는데,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캠핑장 가는 길에 잠깐 마트에 들러 장을 봐도 좋지만, 이 마저도 아깝다면 그냥 캠핑장 매점이나 편의점을 이용한다.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요즘엔 편의점에서 고기도 판다. 물론 냉동 고기이긴 하지만, 값도 저렴하고 생각보다 정말 맛있다. 빠르게 구워 먹을 수 있는 대패삼겹살이나 차돌박이 정도 있겠지 싶었는데 의외로 퀄리티 좋은 스테이크도 있었다.


게다가 요즘엔 캠핑장 매점에서도 고기를 판다. 종류가 많진 않지만 이게 어딘가. 술이나 마실 것들 역시 넘치게 구비되어 있으니 굳이 장을 보기 위한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 



tip. 우리는 버너에 올릴 수 있는 작은 그리들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딱 두 사람 먹기 적당한 크기다. 가격도 2만 원 정도로 저렴한 편. 열 전도도 빠른데 무게 역시 가볍다. 파우치도 있고 세척하기에도 편하다.


그 외 다이소에서 구입한 프라이팬도 종종 사용한다. 가격은 5천 원 정도로 매우 저렴한 편인데, 이거 생각보다 괜찮다. 밀키트 전골 요리 같은 주로 프라이팬에 조리해 먹었다. 


요즘엔 물가가 비싸 웬만한 고깃집에서 두 사람이 먹을 경우, 술까지 포함하면 넉넉히 10만 원은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집에서 구워 먹기에는 치우기도 벅차고 연기도 너무 많이 나서 엄두가 안 난다.


웃기긴 하지만, 우리는 가끔 고기를 구워 먹고 싶을 때도 캠핑장을 이용했다. 평일 기준 사이트 비 5만 원 + 고기 3만 원 + 술 2만 원 = 10만 원.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생각보다 괜찮다. 게다가 밖으로 나왔다는 기분까지 낼 수 있으니 그만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캠핑장에서는 뭘 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퇴근박이 자연스레 출근박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요즘 웬만한 캠핑장에는 샤워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아침에 새소리 들으면서 일어나 가볍게 샤워를 한 뒤, 해장라면 하나 때린 다음 출근하는 기분! 경험해 보면 꽤나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4. 남들과 조금 다른 우리의 퇴근박


연희자로 활동하는 은바의 경우 지방 투어가 많은 편이다. 


전날 도착 > 다음 날 리허설 > 마지막 공연. 대충 이런 느낌의 2박 3일 스케줄로 진행된다. 


지방 투어를 할 땐 주로 인근에 있는 모텔에 묵었다. 그러나 한적한 지방에 있는 모텔의 경우, 의외로 청결 상태도 별로고 시설도 낙후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그런 곳을 몇 번 겪다 보니, 차라리 모텔에서 묵을 바에야 차박을 하는 게 낫지 않냐는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우리는 유튜브 촬영까지 해야 하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최대한 극장 근처에 있는 캠핑장을 찾아 예약한다. 아무래도 차를 계속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차에 연결하는 타프나 텐트는 치지 않는다. 차에서는 딱 잠만 자고, 밖에 테이블을 깔아 여유롭게 밥도 먹고 휴식도 취한다. 다음 날, 캠핑장에 있는 샤워실에서 씻고 다시 극장으로 출근한다.


그러나 캠핑장이 주변에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노지를 검색해 그곳에서 차박 했다. 물론 노지긴 하지만, 답답한 모텔보다는 차라리 바닷가 앞에 있는 차박지가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일하러 왔다'는 느낌보다 '차박 하러 왔다'는 느낌이 들어 더 좋았다. 


노지에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스텔스 차박으로.


음식이야 사 먹으면 되고 잠은 차에서 자면 된다지만, 씻는 건 어떻게 해? 이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방법은 있다. 


바로 목욕탕. 


웬만하면 근처에 목욕탕 하나쯤은 다 있기에 우리 역시 다음 날 종종 이용하곤 했다. 그러나 퇴근박을 하다 보니 좋은 곳을 알게 됐다. 


바로 수영장. 


우리는 주로 '씻수'라고 부르는데 (씻기 위한 수영) 검색해 보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이 꽤 있다. 물론 수영복과 모자를 챙겨가야 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것을 충분히 상쇄시킬 만큼의 장점도 있다. 


일단 목욕탕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통 4천 원 정도면 자유수영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샤워는 물론 운동까지 할 수 있다. 아침에 수영을 하고 난 다음 먹는 해장국의 맛! 말해 뭐 해. 무엇보다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고, 보다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퇴근박을 자주 하게 되면서 어느새 나는 퇴근박 예찬론자가 됐다. 장점이 너무 많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퇴근박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홀가분함'이다. 


쏟아지는 업무로 지친 와중에도, 퇴근하고 바로 캠핑장으로 떠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들뜬다. 드디어 모든 일에서 해방되고 캠핑장에 딱 도착했을 때! 그리들에 고기 올리고 불 냄새 맡아가며 시원한 맥주 한잔 들이켜다 보면 하루의 노곤했던 피로가 싹 풀린다.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 한숨 몰아쉰 뒤, 밤하늘에 총총 떠 있는 별들도 실컷 구경한다. 아침이 되면 새소리에 스르륵 잠에서 깬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껏 기지개도 켜 본다. 


차박의 매력이 뭔가. 이처럼 숨 가쁘게 바쁜 일상을 탈피하여 자연 속에서 소소한 여유를 찾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퇴근박은, 이와 같은 차박의 매력을 한껏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차박을 떠나봤지만, 이 정도의 감정적 개운함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퇴근박 예찬론자의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이 차박을 하는 이유에 대한 모든 답이 바로 퇴근박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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