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TV를 시작하고 1년 뒤, 개인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개미 똥구멍만큼의 수익이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금 징수의 의무는 다 해야 한다.
상호명은 바바팩토리. 앞으로도 열심히 바바TV 공장을 돌려보겠다는 의지였다.
고작 간판 하나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사업자 등록증을 받고 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이제 유튜브는 우리에게 취미가 아니라 일이다. 업태 – 정보통신업, 종목 – 미디어 콘텐츠 창작업의 어엿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된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사업자를 내고 나니 그때부터 협찬 메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캠핑업체도 있었고,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곳도 있었다.
그래도 1년 8개월 동안 회사 생활 좀 해봤다고 나름 비즈니스 메일 양식도 만들었다. 미팅을 위한 전화 통화도 퍽 수월하게 해냈다. 업체를 방문하여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광고 영상을 촬영했다. 업로드하기 전 담당자에게 미리 영상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최종 업로드. 이후 세금 영수증을 발행하면 끝.
문장으로 정리하니 제법 간단한 일 같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는 그동안 3.3%를 뗀 원천징수 영수증을 받는 프리랜서였다. 당연히 계약서를 쓴 공연제작사에서 돈도 알아서 줬고, 세금도 알아서 냈다. 우리는 5월에 있는 종합소득세 신고만 신경 써서 하면 됐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쪽에서 세금 영수증을 발행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된 것이다. 복잡한 세무 용어에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이번에도 역시 유튜버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리 같은 초보 자영업자를 위해 A부터 Z까지 정리해 놓은 영상들을 참고하며 하나씩 배워 나갔다. (이 자리를 빌려 ‘텍스 튜브’ 님께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어쨌든 시간이 약이다. 3년이 지나니 처음엔 마냥 외계어 같던 회계 용어도 꽤 익숙해졌다. 남은 건 이제 하나뿐. 열심히 돈을 벌자! 부지런히 공장을 돌려보자!
이번에 들어온 협찬은 SUV 3열 빈 공간에 장착하는 가방이었다. 미팅을 가기 전, 스마트스토어에 올려져 있는 제품 설명부터 살펴봤다. 일반적으로 꺼냈다 넣었다 하는 가방이 아니라, 아예 브래킷으로 차체에 설치하는 가방이었다.
핵심은 이거였다. 마치 처음 출시된 차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Fit 된 느낌으로 장착된 가방"이라는 것.
발상이 기발했다. 어차피 쓰지 않을 빈 공간이다. 최대한 각을 맞춰 튀지 않게 만들었다. 어찌나 예리하게 틈을 메웠는지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생각보다 가방 안은 또 깊고 넓어서, 물건도 많이 들어갔다. 보통 차박하는 사람들이 자주 까먹는 필수품 (팩이나 카라비너 혹은 일회용품)을 항상 이곳에 넣어두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았다.
사장님은 직접 차체에 설치하는 과정까지 영상에 담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미팅 약속을 잡고 네비에 업체 주소를 찍었다. 000 대학교 안에 있는 창업 센터였다.
“오늘은 더 열심히 찍자. 빨리 에너지 끌어올려!”
“힘!”
은바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전의를 다졌다.
가끔 협찬을 위한 미팅을 갈 때 대학교 안에 있는 창업 센터나 00 청년 입주 기업 같은 곳을 가게 되는데, 대체로 이런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을 방문할 때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초보 사장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아서.
우리 역시 사업자 등록증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초보 자영업자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작 단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게 다 어렵다. 방법을 몰라 힘들고,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결과가 서럽다. 초보 자영업자의 마음은 우리가 제일 잘 안다. 우리 역시 생 초보이므로.
도착하니 사장님은 센터 건물 지하 주차장에 계셨다. 사무실은 한 층 위였지만 설치는 주로 여기서 이뤄졌다. 이미 앞에 가방 설치를 받으러 온 차가 몇 대 서 있었다. 사장님은 차 안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브래킷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사장님의 얼굴을 보니 우리보다 겨우 몇 학번 위의 선배 정도로 보였다.
"저도 사실 이 제품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취미로 차박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이런 제품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도 출시 안 하니까 제가 대신 만들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요."
이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을까.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인 노고의 시간을 안 봐도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사장님은 고작 가방 하나일 뿐인데도 설치할 때부터 자기 자식 대하는 심정으로 제품을 대했다.
우리 역시 이런 제품을 소개할 기회가 생기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촬영에 임한다. 무엇보다 젊은 사장님의 인생이 담긴 이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어 진다. 우리 역시 초창기 몇 명의 구독자들에게 큰 힘을 얻었듯이.
차박 채널이기에 캠핑용품만 의뢰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타민, 돼지고기, 핸드폰 업체 등....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올 때도 있다. 특히 우리 같은 경우엔 대식가에다 요리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다양한 밀키트 업체에서 연락이 오는 편이다.
이 닭볶음탕 밀키트도 그중 하나였다.
보통 비즈니스 메일은 광고 단가와 영상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포인트 등 딱딱한 내용만 오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닭볶음탕 사장님의 경우, 스크롤이 계속 내려갈 정도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셔서 더 인상 깊게 봤다.
제품에 대한 소개는 물론,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 왜 하고 많은 유튜버들 중에 바바TV를 선택했는지 자세하게 적어주셨다. 당연히 우리도 사람인지라 이런 메일을 받으면 일단 감동부터 받는다. 최대한 정성스럽게 답메일을 드렸더니 며칠 뒤 작은 쪽지와 함께 제품이 도착했다. 촬영에 앞서 먼저 먹어보고 제품의 장단점에 대해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사장님의 부탁 때문이었다.
보자마자 딱 알았다. 이 제품은 확실히 다르구나. 특히 정성 면에서.
들어보니 강원도 오대산 근처에서 30년 동안 유명 산채 전문점을 운영 중인 사장님이었다. 밀키트는 단골들의 요청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언제 어디서든 사장님의 닭볶음탕을 먹고 싶다는.
포장부터 어찌나 꼼꼼하던지. 야채가 왜 이렇게 싱싱하나 했더니 직접 재배한 것들이었고, 닭도 3단계로 꼼꼼하게 손질되어 있어 씻을 필요 없이 그냥 냄비에 넣기만 하면 됐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게 냄새부터 달랐다. 매운탕처럼 칼칼하면서도 오래 끓인 육수의 깊은 맛 또한 느껴졌는데, 이건 뭐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그날 과음함)
이 제품의 킥 포인트는 산나물이었는데 (당연히 직접 재배하신 것), 남은 국물에 밥을 볶을 때 나물을 함께 넣으면 좋다고 하셨다. 직접 먹어보니 나물이 어찌나 부드럽고 향긋하던지.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볶음밥은 또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판매를 할까 말까 고민 중이긴 한데 일단 보내겠다'며 동봉해 주신 5년 숙성 고추 장아찌. 한입 먹자마자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안다니까요. 맛있는 거 알았다니까요. 도대체 어디까지 맛있을 건데요? 뭐 이런 느낌이랄까.
야채 하나, 나물 하나, 국물 양념 하나하나마다 정성이 잔뜩 묻어 있으니 그 맛은 말해 뭐 할까. 집에서 시식할 겸 먹어봤을 때도 놀라웠는데, 캠핑장에서 가을바람 쐬면서 먹으니 이건 거의 뭐 극락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 촬영하는 것도 잊고 미친 듯이 닭볶음탕 국물을 흡입했다. 남은 국물에 산나물 팍팍 넣어 볶은밥을 바닥이 보일 정도로 싹싹 긁어먹으니 하루가 다 갔다. 그날 영상은 닭볶음탕으로 시작해 닭볶음탕으로 끝났다.
광고 영상이라고 너무 대놓고 먹기만 하냐!
먹방 아님? 도대체 차박은 어디로 갔음?
뭐 이런 댓글만 달려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악플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 산채전문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구독자들도 있었다. 우리의 영상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판매량이 증가했다 들었다. 사장님은, 처음 밀키트를 만들고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찾아줘서 놀랐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감사의 의미로 케이크 기프티콘도 보내주셨다. 물론 협찬으로 맺게 된 인연이었지만, 이런 따뜻한 마무리 인사에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캠핑용품점 촬영을 갔을 때도 생각난다. 20대 후반의 남자 사장님 넷이서 하는 캠핑샵이었는데, 어찌나 부지런하고 싹싹하게 일을 하던지. 알고 보니 네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찐친들이었고,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모은 돈으로 창업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매장 곳곳마다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눈에 다 보였다. 상품의 배치도, 인테리어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먼저 다가가 차분하게 설명도 하고, 제품 추천도 했다. 네 명이 곳곳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매장 전체가 활기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영상 마지막엔 네 명이 맞춤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들어갔다. 그들을 보며 20대 후반의 내 모습을 반추해 봤다. (그때 난 술만 먹고 세상 불평만 했는데... 쩝.)
온종일 바쁘게 일하면서도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미래를 착실하게 가꾸어나가는 모습이 뭐랄까. 대단해 보이면서도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나 역시 진심으로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오늘도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영업자 분들을 볼 때마다 많은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 단순 돈 버는 일이라 치부하지 않고, 애정과 열정을 담아 자신의 일을 숭고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역시 수익을 내기 위해 바바TV를 운영하는 건 아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투잡이지만, 어느 단계가 넘어가면서부터 알게 됐다. 수익보다는 우리의 콘텐츠와 이걸 꾸준히 봐주는 구독자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구나. 어쩌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구나, 뭐 이런 생각.
전보다 더 유용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 지난주 올린 영상보다 조금만 더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심. 우리 역시 그 일념 하나로 오늘도 열심히 바바팩토리 공장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