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로 차박을 다닐 때는 주변 분들과 가볍게 인사도 하고, 저녁에는 음식도 나눠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는 캠핑장 사이트에서 조용히 지내다 오는 편이다 보니, 그런 반가운 일도 옛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차박 유튜버 생활을 하다 보니 알게 된 신기한 인연도 몇 명 있긴 하다.
1. 바리술타 형님
바리술타 형님은 내가 유일하게 '형님'으로 부르는 남자 어른이다. 나와는 두 바퀴 띠동갑이지만, 이 분은 어쩐지 '선배님'이라는 호칭보다 형님이 더 잘 어울린다.
시작은 이랬다. 어느 날, 은바의 후배이자 나와 친구이기도 한 연희자 K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오늘 캠핑장에서 공연하는데 바바TV 구독자 만났잖아."
야외무대를 갖추고 있는 한 캠핑장에서 국악 공연이 펼쳐졌던 모양이었다. 팀원 중 한 명이 캠핑장 사장님과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초대를 받았다고. 캠핑을 좋아하는 팀원들이 야무지게 텐트까지 챙겨 공연 겸 휴가를 왔다고 했다.
"진짜 너무 재밌는 분이셔. 전화 통화 한 번 할래?"
그렇게 바리술타 형님과 첫 번째 통화가 이뤄졌다. 분명 처음 대화를 나누는 것일 텐데 '캠핑'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그런가? 시작부터 너무 말이 잘 통했다.
슬슬 얘기를 나눠보니 우리의 초창기 영상부터 꾸준히 봐 온 '찐 구독자' 분이셨다. 술타 형님은 원래 '캠알못'이었단다. 휴가 때면 호캉스나 해외여행을 주로 하셨고, 캠핑은 어쩐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생각되어 관심도 두지 않으셨다고.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우연히 바바TV 영상을 보게 되었고,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나갔던 첫 차박에서 신세계를 맛보고 돌아왔다 했다. 그 이후 차박의 세계에 푹 빠져 차도 SUV로 바꾸고, 우리 영상에 나온 텐트와 장비를 따라서 샀고, 이제는 매주 캠핑을 떠나는 '열혈 캠퍼'가 되었다고.
"그래서 바바님들. 같이 캠핑 한번 가시죠."
"네, 좋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우리는 바리술타 형님 부부와 캠핑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먼저 형님네 텐트부터 구경을 갔다. 보자마자 나는 입을 헤, 벌리고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아래 사진은 형님의 별명이 바리술타인 이유다.
업장이 아니다. 텐트 안이다.
솔직히 말해, 집 앞에 있는 이자카야 하나를 통째로 갖다 놓은 줄 알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저렇게 많은 술의 종류가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보드카, 와인, 위스키, 청주, 맥주, 소주 등.....
놀란 것도 잠시. 형님은 정말 '바리스타'처럼 정확한 양의 술을 추출한 뒤, 본인만의 레시피로 정교하게 블랜딩 한 칵테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철판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굴찜. 그 옆에서 존재감을 뽐내기라도 하듯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는 닭도리탕. 마지막으로 예쁘게 DP 되어 있는 제철 해산물까지!
세상에, 이런 호사가 다 있나! 두 술쟁이의 마음이 두둥실 부풀어 올랐다. 맨 땅에서 축구하다 잔디밭에서 처음 공을 차본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손흥민이 되리라. 나는 앞에 놓인 칵테일 잔을 호기롭게 들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마시겠습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단 한 잔도 똑같지 않은 칵테일을 연거푸 마시다 보니, 어느새 공격력이 흐려졌다. 눈앞에 보이는 게 굴찜인지 축구공인지 정신이 다 몽롱했다. 어느새 내 반응을 눈치챈 형님이 토치를 집어 들었다.
"자자,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이쯤에서 브릿지 한 잔 합시다."
브릿지 - bridge. 다음과 다음을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뜻하는 말.
'브릿지'는 바리술타 형님의 전매특허다. 다음 칵테일로 넘어가기 전, 가볍게 기분 전환하는 느낌으로 독한 술을 한 잔씩 마신다는 뜻에서 '브릿지'.
그리고.....
나처럼 맛있다고 덥석 들이키다 보면 '뒤진다'.
그래서 내가 붙인 다른 이름. 브릿지 아니죠, '뒤졌지'죠.
목이 타 들어갈 것만 같았다. 형님이 준비해 주신 안주를 입에 넣자마자 내내 궁금했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형님 한 번에 몇 잔까지 타보셨어요?"
"글쎄."
곰곰 생각에 잠겨 있던 형님이 나직이 내뱉은 말.
"한 170잔?"
"네에에에에?"
"그렇게 타다가 어깨에 담 왔잖아."
얼마 전, 한 스포츠 브랜드에서 진행한 이벤트성 캠핑에 40팀이 모였단다. 난다 긴다 하는 캠퍼들 사이에서도 단연 술타 형님의 텐트는 인기였다. 구경 온 사람들에게 한두 잔씩 말아주다 보니 그게 170잔이나 되었단다.
"세상에. 안 힘드세요?"
"힘들지. 근데 재밌지."
술타 형님이 핸드폰 캘린더를 앞으로 쓱 내밀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벌써 3개월 치 약속이 다 잡혀 있잖아."
촘촘하게 정리된 스케줄 표가 보였다. 전국 팔도로 공연을 다니는 장윤정의 스케줄 표도 이렇게 빡빡하진 않을 거다.
제철 음식에 맛있는 칵테일까지 쉼 없이 먹다 보니 그새 넉다운이 됐다. 분명 너무 재밌고 좋은데 입에서는 '살려주세요' 소리가 나왔다. 그런 나를 힐끔 넘겨보던 술타 형님이 시계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부상자가 있는 것 같네. 잠시 쉬는 시간. 7시까지 각자 텐트에서 좀 쉬다가 다시 헤쳐 모엿!"
다행이었다.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 달렸으니 나의 소중한 간에게도 잠시 쉴 틈을 줘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님 부부가 음식과 술을 다 준비해 주신 탓에 계속 얻어먹고 있는 것도 좀 미안했다.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은바와 나는 열심히 저녁에 먹을 고기를 삶았다.
7시가 되었다.
접시에 따뜻한 고기와 미리 싸가지고 간 겉절이까지 야무지게 챙겨 술타 형님의 텐트로 향했다.
그리고.... 2시간 만에 이자카야에서 '디저트 바'로 바뀌어 있는 내부 모습에 또다시 입을 헤, 벌리고 기함했다.
"민바야. 이거 완전 유튜브 각이지?"
네네, 뭐 그렇긴 하죠. 근데 이걸 언제 또 준비하신 거죠?
세상에. 캠핑 와서 초콜릿 분수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합시다."
술타 형님이 16번째 칵테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장담은 못한다) 31번째 칵테일까지 마시고 나는 뻗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역시 예상대로 31종의 칵테일과 5종의 '뒤졌지'에 당했다. 절로 곡소리가 나왔다. 겨우 몸을 일으키는데 멀찍이 있던 형님 쪽 텐트에서 이쪽을 향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바님들, 아침 먹읍시다!"
간신히 텐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또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걸 언제 또...."
캠핑장에서 솥은 또 처음 봤다. 형님 부부는 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침부터 일어나 김치 어묵 전골을 끓이고 솥밥을 앉혔다.
"아니 두 분..... 어제 저랑 같은 속도로 마시지 않았나요?"
"그랬지."
근데 왜 두 분은 멀쩡한 거죠....? 나는 속말을 묵묵히 삼키며 숟가락으로 크게 솥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윤기가 나는 고시히카리 밥을 먹으니 불편했던 속도 어느새 쓱 가라앉았다. 참 신기방기한 일이었다.
이제 정리만이 남았다.
저 많은 걸 언제 다 정리할까 싶은데, 두 분은 그마저도 캠핑의 일부라는 듯 느긋하게 짐을 옮겼다.
"역시 짬바가 다르다."
우리도 나름 5년 동안 차박을 하면서 '고수 다 됐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았는데, 이 분들 앞에선 일개 졸병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포스타 장군님들의 여유로움에 할 말을 잃었다.
세팅하는데만 한 나절 넘게 걸렸던 짐이다. 당연히 정리하는 데도 똑같은 시간이 소요될 터.
술타 형님 부부는 주로 '접대캠'을 즐긴다. 오로지 둘을 위한 캠핑이었으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함께 한 이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캠핑을 하시는 분들이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캠핑까지 와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나 역시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안 그래도 유튜브 촬영까지 해야 했던 탓에 불편하셨을 텐데도 싫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다. 게다가 영상에 들어가면 좋을만한 아이템이라고 초콜릿 분수까지 준비해 오신 분들이다.
무엇보다 더 대단한 건, 두 분의 기가막힌 호흡에 있다. 세팅해야 할 것도, 정리해야 할 것도 한 가득인데 두 분이 언성 높여 말다툼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항상 군소리 없이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뒤에서 여유롭게 품어주고 도와준다. 몇 년 동안 매주 해온 일이기에 손발도 척척 잘 맞는다. 두 분은 이런 환상 호흡으로 자식들도 잘 길러냈고, 사업 일도 척척 잘 해내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은바에게 넌지시 물었다.
"당신도 나중에 술타 형님처럼 캠핑할 수 있겠어?"
"아니. 절대 못하지."
하긴. 이건 술타 형님 부부만이 할 수 있는 캠핑이다. 그저 인정할 수밖에.
2. 캠핑 700 사장님
"드디어 예약 성공했다!"
은바가 웬일로 아침 10시에 알람을 맞춰놨다 싶었는데, 다 캠핑장 예약을 위해서였다. 한 달치 예약을 미리 받는 캠핑장이라고 했다. 딱 한 자리 남아 있던 걸 운 좋게 발견했다고.
아니, 도대체 어떤 캠핑장이길래....
한 달 뒤. 우리는 평창으로 떠났고 도착하자마자 은바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예약하려 했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평창에 있는 <흥정계곡 캠핑 700>은 매년 여름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름에 700이 붙은 이유는 캠핑장이 해발 700m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캠핑장 근처로 진입하자마자 기온이 뚝뚝 떨어졌다. 분명 뉴스에서는 폭염특보라 했는데, 온도계 어플을 켜보니 이곳은 자그마치 21도였다.
8월인데도 마치 늦가을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느긋하게 안쪽으로 차를 몰자, 어느새 멀찍이 서 있는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귀 밑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캡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느낌이 뭐랄까. 통기타가 잘 어울리는 포크 가수 같았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초입부터 차들로 북적댔다.
"네네, 그렇게 하셔요."
사장님은 역시 인상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운 말투로 안내를 시작했다.
"아니요. 그건 안 됩니다."
그런가 하면 또 거절할 때는 단호한 말투로 천천히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보통 사람들보다 느린 말투여서 그런 탓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사장님이 뭔가를 설명하실 때는 특유의 여유로움이 말투에서부터 흘러넘친다. 기품이랄까? 정제된 인격에서 나오는 고상한 품격마저 느껴진다.
그런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캠핑장이라 그런지 이곳 역시 정갈하고 깔끔하다. 나는 사람처럼 캠핑장도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곳은 보자마자 합격이었다. 어쩐지 매년 여름마다 이곳을 찾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4년째 휴가철마다 이곳을 찾는다)
사이트 뒤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이 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보이는 캠핑장의 풍경이었다.
이곳은 유독 화분이 많다. 나름 식집사라 꽃을 보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데 이곳에서 처음 보는 꽃들이 많았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정갈하게 심어져 있는 화분을 보니 자연스레 기분마저 환해졌다. 잔디도 또 어찌나 꼼꼼히 관리하시는지 다른 곳에 비해 유독 푸르고 싱싱? 하다.
곳곳에 놓여 있는 물건들마저 동화 속 소품 같다. 저 빗자루의 주인은 캠핑 700 사모님인데, 처음 딱 사모님을 보자마자 바로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 또래지만 사모님은 꼭 소녀 같다. 매일 아침마다 빳빳하게 잘 다려진 하얀 앞치마를 입고, 느긋하게 스콘을 구우시는 모습이 그렇다. 가끔 우리에게 스콘을 내어주시기도 하는데 정성이 듬뿍 담겨 있어 그런 것일까. 그 어느 유명 베이커리 빵보다 맛있다.
매점 옆에는 주로 사모님이 쓰시는 작업실도 있는데, 살짝 열린 문 틈으로 힐끔 안을 들여다본 적도 있다. 이젤 위에 캔버스가 놓여 있던 적이 많았는데, 일하는 시간을 쪼개 틈틈이 작업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차박을 가게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밖에 없는데, 이곳만 오면 은바와 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우리도 나중에 이렇게 살면 참 좋겠다. 당신은 캠핑장 운영하고 나는 일 도우면서 작업하고."
"맞아. 저기 마당 같은 곳에 간이 무대 세워서 가끔 공연도 하고."
이렇게 신나게 얘기하다 보면, 지나가던 사장님이 커피를 들고 사이트로 오신다. 느긋하게 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어느새 캠핑장 운영에까지 닿았다.
"바바님들도 나중에 캠핑장 하실 거예요?"
"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죠."
"절대 하지 마세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허허, 느긋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하셨는지 다 알 것 같다. 이렇게 깨끗하고 예쁘게 캠핑장을 운영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애를 쓰셨을까. 두 분의 일상은 쉴 틈이 없다. 온종일 쓸고 닦고 정리하고 치우는 데 하루가 다 간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평창의 겨울이 다른 곳보다 빨리 오는 탓에 이런 바쁜 일상도 10월 말이면 끝난다는 사실. 두 분은 10월 31일까지만 딱 캠핑장을 운영하시고,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느긋한 일상을 보내신다고 한다. 미뤄두었던 여행도 다녀오시고, 서울에 사는 자식 집도 방문하고. 실컷 하고 싶었지만 짬이 나지 않아 못했던 작업도 쭉 하시고.
4년 동안 매년 여름마다 캠핑 700을 방문했는데, 올해 여름에는 이사 때문에 바빴던 탓에 방문하지 못했다. 얼마 전, 집 앞에 있는 베이커리를 지나가는데 고소한 스콘 냄새가 훅 끼쳤다. 그러자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마들렌처럼, 자연스레 캠핑 700의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더 추워지기 전에 평창으로 떠나야겠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오고 싶다. 사모님이 심어 놓은 예쁜 꽃들도 구경하고, 산 공기 맡으며 책도 읽고. 아,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사모님의 작업실 문도 두드려보고 싶다.
3. 허동혁 음악감독님
한 탈춤 공연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관객으로 갔던 공연이었지만 출연진 모두가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가볍게 술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분이 우리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불쑥 일어났다.
"구독자입니다. 초창기 영상부터 챙겨봤어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나는 옆에 있던 연주자에게 물었다.
"누구셔?"
"아, 우리 공연 음악감독님."
그렇게 허동혁 감독님과 안면을 트게 됐다. 그러니까 연희자와 음악감독이 아니라, 유튜버와 구독자의 사이로.
허동혁 감독님은 전자 음악을 전공하고 이후 황신혜밴드의 세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인데, 요즘은 전통 창작 공연에서도 작곡가로 활동 중인 모양이었다. 그런 분이 우리 채널의 초창기 구독자였다니. 은바와 나는 바로 용기를 냈다.
"감독님, 언제 한번 차박 같이 가시죠."
며칠 뒤. 감독님을 극장에서 픽업한 뒤 바로 캠핑장으로 떠났다.
"허허. 영상에서만 보던 건데 신기하군요."
"이 텐트는 생각보다 엄청 크네요?"
"이게 그 유명한 은바카세네요!"
감독님은 영상에서만 보던 세팅을 실제로 보게 된 것에 매우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은바의 전매특허 - 3종 오마카세 고기를 구워 대접한 뒤, 오랜 시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다. 하고 있는 공연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캠핑에 대한 이야기,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 평양냉면 (감독님은 손꼽히는 평냉 애호가이다) 이야기만 쭉 하다 왔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는 캠핑장이 아닌 극장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고령에서 펼쳐지는 대가야 신화극 '도둑맞은 새'에 함께 참여했기 때문이다. 은바는 배우이자 연희자였고, 감독님은 작곡가 겸 음악감독으로.
그리고 당연히 리허설을 마치자마자 고령에서 캠핑을 함께 했다.
허동혁 감독님은 극장 안에서의 모습과 캠핑장 안에서의 모습이 똑같은 사람이다.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롭다. 흡사 전쟁통과 비슷한 리허설 시간에도 늘 차분하게 할 일을 뚝딱 해낸다. 그런가 하면 늘 멀리서 주변을 관망하며 작은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캠핑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며 대꾸해 주다가도, 은바가 어느새 일을 시작하면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본인 일을 찾는다. 세팅을 할 때도, 정리를 할 때도, 작은 티 하나 내지 않고 조용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인연이다. 같은 업계 사람을 구독자와 유튜버로 만났다니.
그 외에도 우리는 캠핑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종종 구독자 분들을 만났다. 아라뱃길의 자전거 도로에서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라며 초코바를 건네주신 분도 있었고, 영종도 세계음식축제에서 줄을 서다 만난 분도 있었다.
캠핑장에서는 아무래도 공간이 공간이니만큼 꽤 많은 분들이 알아보시는 듯하다. 우리 역시 혹시나 구독자 분들을 만날까 싶어 늘 작은 선물을 하나씩 챙겨간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갑게 인사하고, 음식도 나누어 드린다. 그러다 대화라도 나누게 될 때면 그렇게 재밌고 반가울 수가 없다.
이렇게 차박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앞으로 생기게 될 작은 인연들 역시 기대가 된다. 그들 삶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다. 이럴 때마다 차박 유튜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