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저
이 책을 언제 샀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만, 꼭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은 선명히 기억한다. 그러기를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단숨에 다 읽었다. 사실 이 책보다는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먼저였다.
스무 살 언저리, 일 포스티노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에서 시작하여 드문드문 영화 리뷰 방송에 나올 때마다 이 영화를 꼭 봐야지 했었는데, 오히려 책을 먼접 섭렵했다. 왜 이 책과 영화에 오랜 관심을 두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역사, 세계사, 주요 인물 등에 관심을 집중하는 특유의 성격상, 이 이야기가 맞아떨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작일 거라 생각했는데 책 분량이 적어서 놀란 것도 기억난다. 그런데 읽다 보니 글이 간결하고 집중력이 있어서 군더더기 없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네루다와 마리오가 점점 한 몸으로, 합치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관계가 시라는, 또 베아트리스라는 매개를 통해 이뤄지고 점점 깊어지는 것이 소설을 넘어서 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 역시 많은 관계보다는 소수지만 깊이 있는 관계를 소망하게 되는 면에서 더 그렇다.
그리고 중간중간 성적인 묘사들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소설적 장치로서 갖다 놓은 것 같지 않고 자연스러운 데다, 노골적 표현들도 오히려 따뜻하면서도 남미 특유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생'의 느낌을 발현시켰다고 해야 할까. 내 삶도 다시 그런 뜨거움과 정열이 타오르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이든 영화든, 역사든 인물평전이든, 그 무엇이든 역사적 사실로 재구성해서 따져보고 또 어떻게든 연결시켜보려는 습성 탓에 나 스스로도 문학적 서평이나 감상을 기대하지 않아 이 정도로 간단히 글을 쓴다. 읽는 내내 '살바도르 아옌데', '네루다', '피노체트', '1973', '1989' 등의 역사적 키워드가 머리에 맴돌았고, 그 시절과 상황들을 반추하곤 했다. 언제쯤이면 모든 것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습관을 떨칠 수 있을까?
2020. 11. 17
※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당연히도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봤다. 배경만 칠레가 아닌 이탈리아일 뿐 영화의 골격과 세부내용이 책과 거의 유사했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보는 게 어렵지 않았고 책처럼 흥미로웠다. 마침 이 영화의 연관 영화가 자동 추천되어 역시 연이어 봤는데, '네루다'라는 영화였다. 네루다를 쫓는 칠레 경찰의 시선으로 네루다를 때로는 비판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경이로운 모습으로 보여주는 영화였던 것 같다. 이렇게 책을 통해 영화의 영화로 계속 이어지는 경험 역시 색다른 느낌이었다.
2020. 12. 30. 연말을 앞두고 올려보는 앞선 독후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