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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플래쉬 2. 드럼에 대한 기억 2

by 뽈뽈러


알다시피 드럼은 양팔과 양다리, 즉, 사지를 모두 사용해야 하는 악기다.


나는 비록 드럼을 처음 시작한다고 하나, 두 발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손으로 스틱을 움직이는 것은 잘할 거라 생각했다. 얼토당토않은, 25년 전의 작은북 두드림의 감을 믿고서. 완전 오산이었다. 스네어, 탐, 하이햇 등을 스틱으로 내려칠 때의 힘 조절이 어찌나 어렵던지. 팔의 동선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냥 사지가 통제불능의, 다 따로 노는 모습이었다. 결국 기본기부터 하나하나 시작했다.


첫 드럼 레슨은 대략 1년 정도 했던 것 같다. 다만, 회사 상황과 나의 열정 부족 탓에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빼먹기 일쑤여서 실력이 그렇게 나아지진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악기를 제대로 익히려면 자신의 악기로 자체 연습을 해야 하는데, 원룸에 그 큰 드럼을 둘 수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서 늘지 않는 실력에 재미가 반감되는 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드럼이라는 악기를 처음 접해봤고 또 대략적인 기본기와 영화 '국가대표' OST 등 몇몇의 곡 연습을 통해 동경해왔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좋았다.




두 번째 레슨은 그로부터 9년이 흘러 재작년 12월이다. 교회에 다니는 아내가 어느 날 같은 교회 지인으로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 분이 드럼, 피아노, 기타 등 여러 악기를 잘 다루니 나도 드럼을 배우는 게 어떠냐고 아내가 제안을 한 것이다.


회사 상황 등으로 시간적 여건이 될지 며칠 고민하다가 오래간만에 한번 배워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선생님과 서로 일정을 조정해가면서 레슨을 시작했다. 비록 9년 전에 멈춘 드럼이지만, 이번에는 그 감각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사지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고, 레슨 흡수력도 괜찮았던 것 같다. 부족했던 기본기와 병행하면서 '너의 의미 ' 등 몇 개의 곡 연습을 통해 점점 재미를 붙여갔다.


다만, 두 번째 레슨 역시 별도의 연습이 없던 탓에 어느 순간 정체되는 느낌이 들었고,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전자드럼을 구입해서 제대로 익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역시 서너 달 때쯤 되면서 모든 게 심드렁해져 그만두게 됐다. 첫 번째 레슨과 달리 두 번째 레슨은 전자드럼으로 배웠는데, 실물에 비하면 두드림에서 오는 통쾌함이나 소리 자체의 웅장함은 덜 한편이지만 공간 활용 등 실용적인 면에서는 전자드럼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예전과 달리 대형 쇼핑몰에서 전자드럼을 보게 되면 많은 관심이 간다.




이렇게 10년에 걸친 드럼 레슨의 종결판이 지금 이곳 고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세 번째 드럼 레슨은 두 번째 레슨과의 간격이 반년 정도에 불과한 데다 실물로 배우기 때문에 여러모로 학습 진척이 괜찮은 느낌이다. 다행히 학원 원장님의 배려로 주말에는 별도의 개인 연습도 할 수 있어서 이를 통해 드럼의 맛을 더욱 알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나는, 나만의 '위플래쉬'를 진행해나가고 있다.


2021.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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