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 요리하려는 남자

# 아내의 생일 & 미역국

by 뽈뽈러


결혼한 지 10년 7개월, 교제한지는 정확히 15년. 우리 부부가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면서 삶의 풍파를 헤쳐온 시간이다. 희로애락애오욕의 순간들을 온전히 담아낸, 실로 적지 않은 세월이다. 물론 다음 10년 또는 15년의 세월은 또 다른 차원의 감정들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싶은데, 다만 다음 시간들은 그간의 노고와 결실을 통해 좀 더 행복한 감정들이 우리를 에워싸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작년 연말, 아내의 생일을 맞이하여 나는 처음으로 아내를 위해 미역국을 끓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직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라면이나 밥은 제외하고.


아마 결혼하기 전부터였지 싶은데, 아내는 장인어른이 장모님 생신 때는 손수 미역국을 끓여주신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다. 당연히 나는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기억하면서 살아왔다. 한데 여태껏 아내를 위한 실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 번쯤 해보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 왜 그러지를 못했는지, 결혼생활을 돌이켜 볼 때마다 마음 한 편의 미안함이 늘......!

KakaoTalk_20210115_033551146_05.jpg 미역국은 누구의 생일날에 꼭 해주면 정말 최고라고 말하는 백종원. 나는 이제야 실천했다 -.-;;




6,7년 전쯤이다. 그때 처음으로 시도를 했었다. 아내의 생일 미역국을 만들어주기로. 나는 퇴근하고서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미역 등 필요한 식재료를 잔뜩 사서 들어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조리법 등에 대한 정보도 없이 들이대다 보니 엉성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보다 못한 엄마는 그냥 본인이 며느리 미역국과 생일상을 준비하겠다고 나섰는데, 그 바람에 나는 그저 보릿자루에 그칠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드디어 아내를 위한 미역국을 맛있게 만들어 생일상에 올려놓았다. 예전 실패의 기억을 되살려, 이번에는 '백종원의 요리 비책' 유튜브를 통해 조리법을 면밀히 따라 하면서 준비를 한 것이다. 대략 10분짜리 동영상을 1시간에 걸쳐 본 것 같다.

KakaoTalk_20210115_033551146_10.jpg 양질의 국거리용 소고기와 멸치액젓 포인트 등 시키는 대로 준비한 식재료.


나는 하라는 그대로 따라 했다. 멸치 액젓 포인트까지도. 그랬더니 그간 아내나 어머니가 해준 것과는 또 다른 맛의 미역국이 나왔다. 음... 정말 반응이 좋았고, 솔직히 좀 맛있었다^^;

KakaoTalk_20210115_034807023.jpg 빨간색이 옅어질 때까지 참기름에 볶은 소고기와 미역. 밑간까지 더한 후 물을 붓기 직전의 단계.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여 년 전 내가 군생활을 할 때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수요일은 전투체육을 하는 날이었다. 이 날은 각자 잘하든 못하든 축구면 축구, 농구면 농구 등 무조건 '무대뽀' 전투체육으로 하루 일과를 보내는 날이다. 육아휴직 이후 다들 뭔가를 하라고 내게 권유하는 상황에서 나는 마침 이 생각이 들어, 그러면 주 1회 정도는 음식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남자들의 생활 속 음식 만들기가 보편화되어가는 것 같기에 나도 시간 날 때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서너 달이 흐른 즈음에, 드디어 나는 그 첫 번째 미션을 해냈다. 다만, 미션 달성 이후 두 번째 음식 만들기는 아직 착수하지 못했지만, 첫 미션 달성에 따른 자신감은 여전히 충만하기에 곧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에게 선보이고자 한다.


'요섹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름의 열과 성을 담은 한 끼를 통해 +1의 행복이라도 가족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2021.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