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대평리 한달살이 4

# 현실은 늘 함께한다.

by 뽈뽈러


우리 세 식구가 한 달 내내 대평리에서 지냈던 건 아니다.


한달살이 중반부 즈음 장모님 생신이 있어 육지로 들어갔었는데, 간 김에 다시 본가에 들러 며칠간 부모님 안부도 살피고 또 집안 상황을 돌봤다. 그런 다음 나는 다시 제주도로 먼저 들어갔고, 곧이어 아내와 아이도 제주도로 돌아오면서 우리 셋은 다시 대평리 살이를 함께 이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달살이 종료 5일 전쯤 집안의 제사 일정이 있어서, 그리고 아내와 아이는 회사와 등교 사정상 우리는 다시 육지로 들어갔다. 제사를 지낸 후 나는 남은 3일을 정리하고 짐도 챙겨야 했기에 다시 제주도로 넘어왔고, 그렇게 3일을 마저 보낸 후 제주도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배편으로 최종 U-tern 했다.




그리고, 앞서 와 같이 물리적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외지에서의 삶은 늘 현실과 연결되는 것. 그랬다.


작년에 이사를 오기 전, 살던 집을 부동산중개소에 전세를 맡기고 왔었는데, 세입자가 들어오기로 한 날짜가 한달살이 중반부에 걸쳐있었다. 그리하여 입주 전후 상황 체크, 대출상환 및 등기말소 처리 등을 위한 은행업무 등을 현지에서 처리하다 보니 며칠 동안은 꽤 분주히 핸드폰을 부여잡고 통화하기 바빴고, 또한 서귀포에 있는 은행을 무수히 오가느라 정신없이 지냈던 게 인상 깊었다.


한편, 예정된 부모님과의 분가 역시 2월 초로 다가오면서 부모님 댁에 넣어드릴 냉장고, TV, 에어컨, 가구, 식기류 등 살림살이 일체를 새롭게 장만하는 일로 한달살이 막바지는 그야말로 불티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마음 근육의 손실도 일부 발생하게 됐는데, 그런 불씨를 안고 복귀를 하게 된 건 패착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여전히 어지러웠던 것이다.




한 달의 시간 중 절반 정도는 몸만 떠나 있을 뿐 기존의 일상과 다름없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삶과 연결된 고리가 순간순간 무수히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거기에 응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떠나 있다고 해서 삶이 정말 단절된 채 휴식과 여유로 충족되는 건 아닐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내 의지로 한 달 넘게 터전을 벗어나 있었던 건 26살 무렵의, 홀로 36일간의 유럽 배낭여행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이었고,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도 엮이지 않은 때라 완전한 단절과 완벽한 새로움이 함께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1+1의 외연이,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는 무한대의 변화무쌍함이 펼쳐지면서 삶은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어떻게든 부대끼며 살아가고, 때로는 우리네 방향성이 맞는 건지 혼란스러워하고, 또 싸우다가 웃고, 울다가도 행복해하고... 그런 삶, 그런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며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 외지 한달살이는 삶의 연장선이자 현실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많은 글을 살펴본 건 아니지만, 나의 외지 한달살이는 으레 그런 류의 글처럼 예쁘고 알록달록한 그림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다거나 좋지 않았다는 건 건 전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시간 흘러가는 대로 지내자는 게 계획이었다면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한달살이는 담담했고, 천천히 생활하는 속에서 진정 무위의 삶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외지 생활이라는 특별함 속에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지냈던 한달살이, 대평리의 따스하면서도 한적한 분위기에 맞게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그 속에 녹아들면서 살았던 것이다.


대평리에서의 한 달을 회고하며.

ADIEU, 대평.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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