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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11.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by 뽈뽈러


이 책은 작년 5월에 구입한 책이다. 회사의 바쁜 일들이 지나가고 잠시 여유가 생겨 서점의 카페에서 이 책, 저 책 살펴볼 시기에 손에 쥐게 된 책인데, 그 계기는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마쓰우라 야타로)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의 역자 후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마침 서점 카페에서 마쓰우라의 책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서점을 나서기 전 하루키의 책도 덧붙여 구매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때는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그리고 열정적으로 임한 지 꼬박 3년이 되던 때라서 달리기와 관련된 책이 더없이 흥미로웠던 시절이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달리기 에세이를 집어 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한두해 전,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비록 달리기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걷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생을 관조하는 글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그런 영향 때문인지 달리기 관련 책을 거리낌 없이 옆에 두게 됐다.




하루키는 서문과 후기를 통해서 이 책을 한달음이 아닌 짬짬이, 틈날 때 썼다고 밝힌다. 아무런 연관성은 없겠지만, 여하튼 그 때문일까? 나 역시 이 책을 꽤 띄엄띄엄 읽었다. 초반부를 조금 읽다가 중단하고, 또 생각이 나면 보고 싶은 부분을 먼저 들여다보다가 중단하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달음으로 이어지지가 않았다. 문해력이 저조해서 그런 건지...


어쩌면 하루키의 문장에 내가 녹아들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하루키의 책은 25년 전 스무 살 무렵에 '노르웨이의 숲', 지금은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소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했다. 그때는 책을 많이 읽지 않던 때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뭔가 글이 한 번에 인식되지 않는 느낌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 느낌이 떠올랐다. 중단의 중단을 거듭한 이유가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던 것을 이번에는 한달음에 읽었다. 책 제목 그대로 달리기에 대한 하루키의 하고 싶은 이야기가 깊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설을 쓰고 작가로 전업하기까지의 과정, 작가라는 업을 지탱하게 해 줄 달리기의 시작과 여러 분투, 트라이애슬론과 울트라마라톤을 통해 조금은 식어가던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끌어올리는 스토리 등 부분 부분만 읽던 때와는 다른 이야기가 많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마라톤대회를 준비하면서의 소회를 소설과 인생에 대비하여 그 의미를 추려내고, 또 작가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지향점과 방향성을 달리기를 통해서 확립해 나가는 모습에서, 달리기는 하루키 인생 최고의 무형의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나도 나의 달리기를 생각해봤다. 나에게 달리기는 내 인생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한때 산이 좋아서, 서울 신림동에 살 때에는 대략 4년여를 인근 관악산과 삼성산을 줄기차게 오르내렸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을 체감하고 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을 눈과 가슴으로 담고 싶어서. 그런데 북한산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는 집과 북한산이 조금 거리가 있기에 드문드문 다니게 됐는데, 결국 산행이 점점 시들해져 더 이상 가지 않게 됐다.


대신 이동시간도 줄이면서 짧은 시간에 땀 흘릴만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하다가 주변 공원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그래 이거다 하면서 바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정말 줄기차게 뛰어다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열정이 약간 식은 느낌이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기가 어려워지면서 달리기 할 여건이 예전 같지 않고, 또한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앞서 살던 곳에 비하면 중장거리 수준의 달리기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더 움츠러드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상황 때문에 하루키의 책을 다시 집어 든 건지도 모르겠다. 이 분은 달리기가 뭐 그리 좋아서 책까지 낸 건지 궁금해서. 재능, 집중력, 지속력, 이 세 가지를 소설가의 세 가지 중요 요소로 꼽았는데, 이 글을 다 읽고서는 이 중에서도 지속력을 제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바로 그가 묘사하는 달리기와 가장 결부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에.




한국의 땅덩어리가 작다고는 하나, 그래도 위도 차이에서 오는 날씨와 기후환경은 따뜻한 남쪽나라와 서울을 구분 짓게 하는 것 같다. 엊그제 화요일을 기점으로 이곳 공기의 질은 확연이 따뜻해졌다. 바야흐로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물이 생동하는 느낌을 주는 봄. 이 봄을 나도 생동감 있게 살아가려면 다시금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 책을 통해서 말이다. 지속적인 노력, 달리기가 주는 인생의 교훈이 아닐는지.



※ 나는 풀코스 마라톤을 한번 출전하여 완주했다. 비록 기록은 저조했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각종 대회가 재개되면 이제는 4시간 이내로 주파하기를 꿈꾼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고 싶어서다(*출전 대상을 sub4로 한정).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 마라톤에 대한 새로운 설렘을 얻게 됐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의 40여 km 달리기. 하루키가 이 거리를 달렸다고 기록했는데,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전율이 느껴졌다. 보스턴 출전이 어렵다면 먼저 이곳을 달려보는 것도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설렘. 꿈꾼다는 것은 사람에게 이렇게 좋은 것 같다.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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