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입한 지 8년이 되어서야 모두 다 읽었다. 이 책 역시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하다가 이후 중단과 읽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책장에 푹 고여있던 것인데, 마음속에는 늘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 이번에 드디어 책 읽기를 마무리했다.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세계적,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라 평전을 자주 접하는 편인데, 이 책을 접하기 6,7년 전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을 읽은 적이 있다. 사회당 출신으로서 프랑스의 첫 좌파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의 일대기를 다룬 책인데, 꽤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프랑스에 대한 평소의 관심 덕분에 퇴근하고서 시간 날 때마다 꾸역꾸역 읽었더랬다. 그때 미테랑 평전에서 드골이 몇 차례고 언급되는 바람에 나의 뇌리에는 그가 꽤 인식되어 있었는데, 마침 2013년에 이 책이 나오면서 나는 곧바로 구입했다.
사실 평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건 중심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각 시기마다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더 흥미로워 나는 평전을 통해 보는 역사를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각 사안들에 대해 그 시대를 고민하고 움직였던 인물들이 어떠한 생각과 인식으로 그것들을 다뤘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또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와 비교를 해가면서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도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의 책장에는 여전히 정좌 중인 평전들이 여럿 있다.
드골 평전, 아니 이 책은 자서전이다. 드골이 196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이다. 본문 외에 서문이나 후기 같은 건 없고 역자 후기 정도만 간단히 나와있는데, 그에 따르면 원래 세 권을 집필할 계획이었는데 첫 번째 책을 완료한 후 드골이 사망하는 바람에 이 책만 나오게 됐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1장 재기는 재집권하기까지의 전후 상황을, 제2장 해외영토는 아프리카 식민지 해방과 프랑스 공동체 결성과정을, 제3장 알제리는 프랑스에 있어서 좀 더 특별하고 각별한 식민지인 알제리 문제에 대한 처리와 국내외 설득 과정을, 제4장 경제는 역동성과 활력을 갖춰나가기 위한 경제개혁 그리고 일종의 자기 치적을, 제5장 유럽은 독일과의 우호관계 수립과 주변 6개국 경제공동체 결성과정을, 제6장 세계는 핵보유 추진과 미국-소련 강국과의 관계 정립 과정을, 마지막 제7장 국가원수는 국가원수로서의 업적과 전반적인 회고를 간략히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점은 먼저 드골의 재집권 과정이었다. 지중해 건너 130년 된 식민지 알제리에서 1958년에 대규모 소요가 발생했는데, 본국 정부와 정치권은 해결책도 없어 어영부영하는 사이 사람들의 신임을 잃어 결국 국민적 염원에 따라 은퇴해 고향에 있는 드골이 다시 권좌에 올랐다는 점이다. 2차 대전 때 '자유 프랑스'를 이끌고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하여 전쟁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사람이라지만,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 권좌에서 끌어내린 사람을 국민들이 다시 찾고 또 전폭적 지지로 정치권부터 국민들까지 권좌에 밀어 올렸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타임머신이 있다면 당시로 돌아가 그 시대 분위기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알제리. 일종의 영국에 있어 아일랜드 같은 나라라고 하면 되려나? 아무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130년의 시간만큼이나 많은 사람과 자본이 이식되어 사실상 지중해 넘어의 프랑스라고 여겨지는 알제리. 그래서 전후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하여 아프리카 식민지 해방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다른 지역과 달리 알제리 문제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굉장한 어려움과 마찰이 발생했던 것 같다. 드골에 대한 암살 시도가 두 차례나 벌어졌다는 게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하기야 알제리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프랑스의 알제리'로 남게 해 달라는 알제리 거주 프랑스 사람들의 요구와 소요로 인해 드골이 재집권할 수 있었던 건데, 드골은 오히려 식민지를 해방하고 동맹과 우호관계의 프랑스 공동체를 추진하려고 하니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힐 수밖에. 아무튼 드골의 신념과 뚝심으로 내부 반란도 진압하고 국민여론도 결집시켜 알제리 문제를 해결했는데, 읽으면서의 느낌은 과연 웬만한 지도자였다면 3,4년의 지난한 과정을 잘 관리하고 이겨낼 수 있었을는지.
마지막으로 독일. 프랑스와 독일을 생각하면 늘 우리 대한민국과 일본이 떠오른다. 어쩌면 프랑스는 전후 확실한 과거사 청산이 이뤄져서 독일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우호관계로 접어들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승전국으로서 독일과 베를린 점령 문제에 대한 처리 권한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아무튼 드골이 재집권하면서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와 관계를 맺어가고, 게르만 민족의 재무장 방지와 공동체의 틀 내에서 관리 가능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하여 관계 정상화를 이뤄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일본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의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지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일종의 힘을 통한 평화, 즉, 핵무기 보유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 NATO 탈퇴 등 프랑스의 자주권을 구축하고 실현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말의 성찬만으로 평화와 자주국방이 실현될 수 없음을 보여준 것 같은.
평전이 아닌 자서전인 관계로 사안에 대한 인식과 견해가 자기중심적인 점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간혹 본인 스스로를 '드골'이라 호칭하면서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할 때에는 좀 낯간지런 느낌도 있었으나, 이것 역시 자서전의 특성상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 좋았던 점은, 2차 대전 이후 국내외적으로 혼란한 프랑스 사회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또 이를 수습하고 발전의 과정으로 나라가 어떻게 전환되어 가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민주정치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정당정치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한 점은 또 다른 생각거리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드골이 전후 정부수반에 오른 이후 제정당들의 공격으로 실각한 경험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 아닐는지 싶다. 물론 이 또한 정당정치가 국가에 어떤 효능으로 다가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거리가 될 것이다.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한 정당히 난립하고 소멸하면서도, 총리 평균 재임기간이 1년에도 못 미치는 이탈리아에 비하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정치권. 어쩌면 그 기반이 드골 재집권기 10년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