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직장의 한 후배가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면서 내게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바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이란 책이다.
그간 '알쓸신잡' 등 여러 방송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를 많이 접한 터라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어나간 것 같다.
후배의 말처럼 책의 내용은 무척 흥미로웠다. 다른 것도 아닌 우리 사람들의 뇌를 소재로 하여 갖가지 실험과 연구결과를 토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과 통념들을 허물어버림에 따라 뭔가 새로운 통찰을 얻어가는 느낌이었다.
책의 구성도 1부 여섯 꼭지는 뇌와 인간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한 글이라면, 2부의 여섯 꼭지는 뇌연구에서 비롯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컴퓨터의 발달과 디지털 기술의 진보 등 거시적 측면의 글들이 배치되어 있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결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가 보통 혁명이라고 하면 정치, 경제, 사상, 철학, 역사 등 인문학적 혜안을 가진 선각자, 또는 이에 영향을 받은 활동가들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다분한데, 이 책을 읽고서는 보편적 인류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혁명이라는 것이 결국 과학의 영역에서 비롯됐구나라는 점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1차, 2차, 3차, 4차 산업혁명이 이전과 다른 획기적 기술의 발명과 확산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태도 및 인식 그리고 사회 전체가 완전히 탈바꿈한 결과인 것을 보면, 혁명이라는 것을 그저 어느 한순간의 정치 사회적 급변으로 인식하는 것은 적절치 않음을 깨닫게 됐다.
이는 어쩌면 혁명이란 단어를 한 사회의 체제 변화 또는 정치적 격변으로 한정하여 인식하는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무시로 접해왔음에도 별 생각이 없던 것을 이 덕분에 혁명이란 어휘를 새롭게 인식하고 또한 그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기술의 진보를 통해 보다 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사회를 꿈꾼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역시 앞서의 혁명에 대한 인식과 유사한 점인데, 통상 과학과 기술의 진보라고 하면 그저 기업을 더욱 키우고 더 많은 자본을 확충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곤 했는데, 그것보다는 인류의 진보를 꿈꾸는 철학이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점에 대해서는 간과했던 게 아닌가 싶어 스스로 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과 철학의 발전 및 진보라는 게 인문학적 성취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라 과학기술의 성과에도 기반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고, 어쩌면 그러한 과학기술의 진보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나가고 나아가 진일보한 사회로 이끌어가는 게 아닐지 싶었다.
책을 읽는 중에도 그리고 다 읽은 후에도, 나는 역시 거시적인 부분 또는 사회적인 내용에 좀 더 집중하고 기억을 잘하는 경향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하면 1부에 나온 연구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솔직히 그런 개별 사례들을 훑고 지나고 난 후엔 그렇게 기억이 남지 않았다. 한데, 2부의 내용으로 들어가면서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내용들도 뇌리에 더 크게 남는 느낌이었다.
음... 나의 뇌는 현재 어떤 구조로 기능하고 있는 걸까?
※ 책의 주제와는 별개로 저자가 잠시 소개한 자신의 생활습관은 다시금 나의 올빼미형 생활패턴을 되돌아보게 했다. 음주문화 등 단체회식 지양, 22시 취침 및 04시 기상과 같은 저자의 생활태도는 저명인사 또는 사회적 리더들의 핵심 키워드이자 소위 성공의 보증수표인 것일까? 이른 시간에 기상하여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자신과 자신의 일들에 집중하는 것. 작년에 읽었던 '새벽 4시 30분 기상'에 대한 에세이가 다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