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기는 '히로히토'(2002, 에드워드 베르)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당시 젊은 히로히토가 등장하는 책 표지와 그에 대한 관심에서 이 책을 집었던 것 같은데, 약 20년 전쯤이라 이제는 상세한 내용에 대한 기억은 가물하다.
다만, 히로히토가 등장하기 전후 일본의 상황, 즉 일본의 근대화 과정 및 전쟁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모습과 해양생물에 관심이 많았던 히로히토의 개인적 삶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다.
이런 기억 속에, 이 번에 '일본_과거 그리고 현재'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일본_과거 그리고 현재'는 2013년 말 조윤수라는 분에게서 선물을 받은 책이다. 조윤수 님은 이 책을 번역한 분인데, 2013년 한 해 동안 먼발치에서나마 어떤 인연이 맺어져 이렇게 감사하게도 책 선물을 받게 됐다. 돌이켜보면 책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그때 얼른 책을 읽어서 감상평이라도 전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특히, 번역자로서 이 책과 직접 관련되었기에 더욱.
선물로 받은 이후 한 번씩 눈길과 손길이 닿았던 책이었는데, 이 번에는 책장에 다시 두지 않고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책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고대 일본에서부터 현대 일본(*참고로 저자 에드윈 오 라이샤워가 1960년대 초중반 일본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최종적으로 개정한 책이다.)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민성 등을 개략적으로 서술한 글이다. 물론, 개설서 성격이라고 해서 핵심 내용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역사의 뼈대는 더 부각된 서술로 채워져 있는 덕분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야만성과 잔혹성, 원폭, 독도 야욕, 역사 왜곡, 사과와 반성의 부재 등 일본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 한국에 있어선 이렇듯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일본의 그런 행위들이 어디서 비롯됐고, 그런 일본인들의 심리 기저는 어떠한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잘 알필요도 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대상을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좀 더 알고서 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너무 깊지 않으면서도 너무 방대하지도 않은 내용들이 순차적으로 잘 구성된 이 책은 어렴풋하게 인식하고 있던 일본에 대한 나의 기억을 다시 바로잡고, 좀 더 생생한 내용으로 채우게 한 것 같다.
신의 나라, 천황, 신도, 야마토, 헤이안, 봉건영주, 가마쿠라 막부, 에도 막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페리 제독, 사카모토 료마, 사쓰마 번, 조슈 번, 대정봉환, 메이지 유신, 근대화, 부국강병, 군국주의, 국수주의, 침략, 전쟁, 원폭, 패전, 미군정, 주권회복, 정치 사회적 격변 등 연대기 순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일본의 역사를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것 같다
한편, 예전부터 궁금했던 점이, 19세기 후반 미국 페리 제독 함대가 일본을 강제 개방시킨 후 어째서 일본은 조선과는 다르게 일순간에 근대화가 촉진되고 성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그것은 근대화를 위한 자양분, 즉 상업과 제조업이 에도 막부 2세기 반의 기간 동안에 성장하고 발전하였다는 점이다. 반란과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엄격한 주민감시체제가 가동된 반동적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상공업은 세월이 흐르면서 전국적으로 발달하게 됐다는데, 그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개방을 통해 서양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한 결과, 그리고 정치세력의 변화와 맞물려 위로부터의 혁신과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60대 초중반 주일 미국대사로 근무하던 당시에 개정한 이후로 더 이상의 증보 없이 멈췄다. 때문에 서술은 일본의 1960년대에서 마무리되고, 일본의 낙관적 미래를 예견하면서 글은 종결된다.
그런데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엔高- 弱달러)' 이후, 소위 '잃어버린 10년또는 20년'이라는 장기불황과 침체에 시달린다. 여기서도 궁금했던 점이, 어째서 자신들의 어려움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합의를 해주었을까였다. 물론 장기침체의 요인에는 여러 변수가 있었겠지만, 플라자 합의는 그 시작점에 있어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미국과의 관계 말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런 대미관계와 미국에 대한 일본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점도 뜻깊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 책의 마지막 서술 시점인 1960년대와 달리 현재의 일본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인 '보통국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여전히 미진한 채... 이 때문에 주변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인데, 그럴수록 우리는 그저 비난만 하면서 철 지난 극일론에 달려들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인식을 견지하여 잘 아는 일본,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대일관계를 만들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