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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16.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by 뽈뽈러


꽤 오랜 시간, 핸드폰 속에 깊이 잠자고 있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드디어 다 읽었다. 다만, 잠자던 전자책이 아닌 실물 책으로. 전자책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아 결국 실물 책을 구입했던 것이다.


한때 '그리스인 조르바'가 꽤 많이 회자된 걸로 기억한다. 책 소개도 많이 되고, 또 각종 칼럼이나 방송에 많이 인용되는 등. 뭣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자유를 향한 갈망과 이를 위한 인간의 의지, 뭐 이런 게 많이 소개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도 한번 읽어봐야지 해서 구입했는데, 전자책 형태로 접하다 보니 핸드폰의 여러 알림과 문자, 전화 등이 올 때면 독서 리듬이 끊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결과 초반부만 읽고 중단하고 다시 읽는 행태가 반복됐는데, 결국 지난달에 서점에 들렀다가 판매대에 이 책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그냥 실물로 보자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사유나 사상, 철학 같은 내용이 많이 들어있을 것 같아서 잘 읽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술술 잘 읽혔고, 스토리도 재미가 있었고, '두목'이나 '조르바' 등이 사유하는 대목들에서도 꼭 곱씹어서 읽어야 한다거나 어떤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식의 글은 아니었다. 간혹 그런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독서가 지체되거나 중단되지는 않았다.


책과 이성과 절제와 이상으로 상징할 수 있는 '두목'과 삶과 현실과 현재 그리고 자유의지로 대변될 수 있는 '조르바'라는 확연히 대비되는 캐릭터가 은유적 기법이 아닌 직설적 화법으로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펼쳐가기 때문에, 시종일관 책의 메시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글에 흥미를 갖고 잘 스며들 수 있었다.


또한 소싯적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4대 강국 함대의 제독들을 한꺼번에 주물렀던 영화를 그리워하면서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퇴물 여가수 오르탕스 부인, 매혹적인 자태를 지녔지만 그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는 젊은 과부, 그 밖에 크레타 섬의 마을 사람들과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두목과 조르바와 관계를 맺으면서 드러나는 종교와 도덕과 윤리에 대한 모순, 이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그려져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혔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유럽을 생각해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 각종 민족국가의 탄생, 종교적-민족적 갈등,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사상과 철학의 등장, 소비에트 정권의 형성 등. 이처럼 갖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이면서도 물밀듯이 그리고 임팩트 있게 섞이고 엮여서, 이 시기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당시의 유럽을 그려본 이유는 이 책이 내게 전해주는 이야기와 메시지 때문이었다.


이 책을 한 번만 읽고서 그 의미와 메시지를 논하기는 그렇겠지만, 일단 읽어보면 명확하다.

"자유의지". 신도, 이상도, 이념도 아닌 오로지 인간 본연의 자유의지, 즉, 이것만이 스스로를 구원하고 세상을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기제라는 것. 그리고 "현재". 현재의 순간을 자유의지로 충실하게 살아가면 세상 그 어떤 두려움과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왜 이런 메시지와 이를 담은 스토리를 카잔차키스는 시종일관 드러냈을까? 앞서 당시의 유럽 상황을 생각해본 이유다. 위험하고 복잡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과연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지. 혹은 적자생존의 시대에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게 맞는 건지. 그렇다고 민족, 문화, 사회적 여건에 따라 천자 만별인 종교와 이념에 기대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많고... 오히려 그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 살육이 행해지는 상황인데...


결국 당면한 현재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것. 미래와 이상과 종교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의지로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것만이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 그런 생각에서 여행과 그 속에서 만난 인물, 특히, 조르바를 경험하면서 이런 소설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 읽고 나서, 오늘의 현실을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오로지 자유의지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산다고 했을 때 과연 어려움은 없을지.


흔히, 세상일이 자기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어디선가 태클이 들어오고 강력한 훅이 날아올 때도 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팽개친다면 인생은 더욱 그 뜻은 고사하고 자신의 손마저 떠나버리는 결과를 맞이할지 모른다.


빠른 변화와 그로 인한 혼란, 그 속에서 대응하고 살아가는 인간. 결국 변화와 혼란 속에서도 인류가 버텨내고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자유를 향한 열망과 그 의지가 있었기 때문인 바, 이를 잊지 말자는 게 '두목'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2021.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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