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또는 망망대해가 보이는 해안가의 높은 절벽. 누군가를 향한 오랜 기다림과 지독한 그리움. 이뤄질 수 없는 갈망과 고독. 뭐 대략 이런 이미지 또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해서.
하지만 예상과 전혀 딴판이었다. 이 책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이 책을 구입한 특별한 계기는 딱히 없던 것 같다. 그저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게 이 책의 제목이 나의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었는데, 마침 서점 판매대에 이 책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집어 들었던 것 같다. 그러고선 지난 1월 제주살이 시절, 현지에서 책을 펼쳐 든 후 절반 정도 읽다가 중단한 것을 얼마 전 두 달여 만에 재개하여 한달음에 읽기를 마무리했다.
이 책에 대한 생각을 곧바로 말하자면, 독서 초반에도 그렇고 다시 책 읽기를 재개한 후에도 그렇고 이 소설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고독'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지, 그리고 왜 고독이라는 말을 뭔가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언급하는 것일까였다.
책 제목부터 고독이라는 표현이 언급되다 보니, 소설에 등장하는 고독의 의미가 남다르고 또 뭔가 심오한 고리가 되겠거니 했는데, 솔직히 개인적인 느낌은 그냥 그 표현을 갖다 붙였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소설 속에서 왜 각 인물들이 고독을 느끼고 또 그 고독으로 인하여 어떤 행위가 발생했는지 그런 인과관계나 연결고리는 별로 찾을 수 없었다.
굳이 얘기하자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 이래로 그 가문과 후손들의 운명적이고 태생적인 고독이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 인물들의 주된 활동이 고독에서 비롯하여 이뤄졌다거나 또는 그 활동들이 고독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책을 다 읽고서 내린 결론은 그저 노벨 문학상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범인의 독서였다는 것. 나는 그렇게 내 생각을 매조지했다.
다만, 소설의 스토리 자체는 지루하지 않았고, 때론 흥미롭기도 하면서 읽을만했다. 작품 해설에서도 나오는 중남미 문학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 즉, 환상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내용들이 간혹 등장할 때면 처음엔 좀 황당하긴 했지만, 점차 소설적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다.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의 발상지여서 그런 걸까? 중남미 문학적 정서에는 그런 요소들이 적잖은 의미를 차지하는 것 같다. 작가 소개글에 언급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명 작가인 보르헤스. 막상 취향이 맞지 않아 오래전에 사놓고선 거의 읽어보진 않았지만, 환상을 콘셉트로 하여 보르헤스가 선정한 세계문학전집 '바벨의 도서관'이 연상됐던 건 그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집안의 마지막 인물인 아우렐리아노에서부터 6대조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우르술라 부부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비슷하게 설정되는 바람에 각 인물들에 집중하지 않으면 순간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각 인물들의 삶과 에피소드들이 상세하면서도 흥미롭게 그려져 소설을 읽는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인물 간 관계에서도 혼란에 빠져들지 않게 된 것 같다.
사촌지간의 혼인(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우르술라)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아기가 나올 것에 대한 우려, 이로 인해 빚어진 살인과 마콘도로의 이주 및 개척, 외부 신문명을 향한 꿈, 집안 내부인 또는 외부인 간의 사랑과 갈등, 가문의 백 년 동안의 운명이 암호로 남겨진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투쟁, 바나나 회사로 대표되는 미국 자본과 이와 결탁한 권력 그리고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탄압,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하는 투쟁과 좌절의 연속, 쇠락해가는 마을 그리고 폐허와 공허......
중남미 마콘도 마을을 중심으로 대략 이런 흐름과 에피소드들로 진행된 이 소설은 결국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우르술라 가문 백 년의 흥망성쇠와 이 속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과서적으로 얘기하자면, 1950~60년대 전후의 불안한 중남미 현실을 비춰주는 글이기도 하고.
책을 읽던 초반에 고독이라는 표현이 두 번째로 나타난 순간부터 페이지를 접어가면서 내내 그 의미에 집중했던 '고독'. 나는 결국에는 그 고독의 메타포를 얻지는 못했으나,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일생이 상세하면서도 매력 있게 표현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또 다른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
여하튼, 음... 덧붙여 총평하자면, '고독'에 빠져 '고독'에 허우적거리다 '고독'하게 읽기를 끝낸 '백년 동안의 고독'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