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11시의 문자 메시지를 씹은 이유

013.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차이

by MANGWON

013. 오전11시의 문자 메시지를 씹은 이유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폭염의 한가운데,

오랜만의 촬영 현장이었으니 말입니다.

견적의 빠듯함으로 '감독'없이 진행하는 현장이라

혹시라도 놓치는 것이 없지 않나 하는 노파심에 PD를 추가했지만

디렉터와 PD1, PD2 그리고 카메라 감독까지

매컷을 찍고 체크하면서도 좀 더 나은 앵글은 없을까 고민했고

이렇게 디테일만 신경 쓰다 놓치고 지나는 건 없을까 다시 확인하느라

조금은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을 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오늘 아침가리 계곡트레킹 가는 거 어떤지'

친구로부터 온 문자메시지였습니다. 시간은 am 11:04-

날은 덥고 촬영은 더디게만 흘러가고 있어

현장에 집중하느라 '도. 대. 체. 이건 뭐지?' 하고는 덮었습니다.


촬영을 마친 후 사무실로 돌아와 한 땀 식어갈 때쯤

아까 받은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이 친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보낸 걸까? 하고 -

표면적(Text)으로는 '트레킹 같이 가자!'입니다만

맥락적(Context)으로 적절한 것인가 하고 따져보면 이렇습니다.


1. 사회적 조건 혹은 관계

이 친구와는 트레킹을 같이 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언제 밥 한번 먹자!'처럼 '언제 트레킹 한번 같이 가자!'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2. 물리적 조건

서울 - 아침가리골 입구까지의 거리는 139km-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려가도 1시간 45분이 걸립니다.

그 시간에 문자 연락받고 1초의 머뭇거림 없이 가기로 하고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만난다고 해도 12시 출발 -

그렇다면 트레킹의 시작은 제아무리 빨라도 오후 2시입니다.

(서울에서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가는 분들의 후기를 보면

오전 6시~7시 서울 출발, 9시~10시 트레킹 출발입니다.)


3. 주제, 개념 혹은 테마

계곡 도착부터의 가용시간은 일몰까지 대략 4시간-

계곡물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오거나

발에 계곡물 한번 묻히고 오는 게 '트레킹'이라면 몰라도

아침가리계곡을 '트레킹'하고 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특히나 트레킹을 '놀이'나 ‘여가'로 생각한다면

4시간을 열심히 내달리듯 하고 올 이유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 친구의 체력은 연령대 하위 20%에 속합니다.)

심심해서 한번 보낸 문자 메시지에 괜한 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런 문자나 대화를 조금씩 더 자주 접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저를 포함해 제 주위가 고령화 시대의

노령인구 비율 증가에 일조하는 탓일 수도 있는게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자동차를 고속으로 주행하면 운전자의 시야가 좁아진다고 합니다.

이와 정반대로 초보 운전자도 과도한 긴장감으로

앞뒤 좌우를 살필 여유가 없어 오직 앞만 보인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대화나 소통이 실패하는 것도

자기 마음만 바쁘거나 자기 생각이 좁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메시지가 적절하게 소통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3가지는 고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그 메시지가 오고 가는 양쪽의 관계(사회적/개인적)에 대한 고려

(길 걷다 처음 본 이에게 '결혼합시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10년 전 헤어진 연인에게 '우리 내일 볼까?"라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2. 그 메시지가 수신자와 발신자 - 양쪽에 적절한 주제나 내용인지에 대한 고려

(탁구 동호회에서 만난 이에게 '조금 있다가 축구하자'라고 할 순 없죠?)

그리고, 필요하다면 광고처럼 혹은 SNS 같은 곳에 공개되는 것이라면

3. 그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지에 대한 고려

(SNS를 통해 테러를 공개 예보하는 예외가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자신의 행위를 알리고자 하는 목적에는 적절합니다.)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어떤 회식자리에서는

10명이 모였는데 15개의 주제가 동시에 오고 간다고 합니다.

참석자들이 공히 자신이 무슨 말을! 왜! 누구에게! 지금! 하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경우일 듯합니다. 하다 못해

혼잣말도 자신과의 대화라는 소통에는 성공하는데 말입니다.


거액의 예산이 걸린 큰 프로젝트의 문서 자료에

단어, 서체, 폰트 크기, 굵기까지 신경 쓰는 것처럼

한발 물러나 메시지가 놓일 앞뒤 맥락, 환경 그리고,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흘러가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는데

이는 남은 시간이 없다는 초초함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친구도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평생 안 가본 트레킹을 가자는 왕보초, 저체력 트레커와 동행은 좀 어렵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한강 산책이나 가자고 연락해 봐야겠습니다.






* 매주 화/목요일에 업로드합니다.



PART 2. 석 달 후를 위하여: 크리에이티브의 문법 (아이디어의 작동원리 이해)

Chapter 4. 거리와 스케일

011. 크리에이티브, 멀수록 빛나는 : 아이디어의 규모와 스케일

012. 맥락 없는 소리하고 있네 : 아이디어는 CONTEXT로부터

Thinking Fable 3 . 착한 아들

013. am 11.의 문자메시지를 씹은 이유 : TEXT와 CONTEXT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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