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2023
평온한 일상을 변함없이 지내고 있다. 오전 시간에 바쁘게 움직이며 집안일을 하고 요가도 다녀오고 스페인어 공부도 꾸준히 한다. 내가 꾸려온 일상의 루틴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하루하루다. 그런데 왜 자꾸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는 걸까. 나름 열심히 일해 모아둔 돈을 갖고 은퇴를 결심했고 금전적으로 큰 문제없이 지내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지우긴 어려운 것 같다. 더군다나 작년부터 시작된 자본시장의 불안정은 내 마음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준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필요한 지출들, 그리고 그 이후 대학 학비와 생활비에 대한 걱정. 거기에 더해 혹시 아이를 경제적으로 독립시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앞날은 누구도 모르고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은퇴를 결심할 때는 이런 생각이었다.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을 해왔고 이 정도까지 올라와 봤으면 됐다. 일이 아닌 사람, 정치싸움에 스트레스 그만 받고 그만하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은 어차피 소비와 관련이 있고 모아둔 돈에 맞춰 소박하게 살면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 독립하기 전 중요한 시기에 경제적인 것 외에 내가 필요한 것들을 해주자. “
25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며 알뜰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승진도 빨랐고 덕분에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급여와 보너스, 스톡옵션을 받았다. IT업계에서 급성장한 벤처 붐의 덕을 본 것은 아니어서, 아주 많은 돈을 모은 건 아니지만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정도라 생각했다. 여차하면 주거비가 더 싼 지역으로 이사해 노후를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란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요즘 내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해지는 건 다른 사람들의 말과 거기에 영향을 받는 나 때문이다.
삼사십억은 있어야 은퇴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말. 누구는 코인에 투자에 수십억 자산가가 되었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말. 한국에서 친구가 아이들과 방학 중 지내러 오는데 경비만 사오천만 원을 넘긴다는 말.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국인 커뮤니티에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아이 학교의 엄마들과 교류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은퇴 후 여유시간이 늘면서 엄마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듣게 되는 말들은 남들에 대한 이야기, 나를 불안하게 하는 말들이다. 이것도 내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한 내 탓이겠지만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지 말자고,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욕심엔 끝이 없고 지금 내 생활엔 아무 문제가 없지 않냐고, 미리 걱정만 하는 바보짓은 하지 말자고 자꾸 나에게 말해본다.
이런 마음도, 파도처럼 일렁이다가 어느 순간 다시 잠잠해질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다시 또 바람이 불면 일렁이겠지. 사람들 사이에 섞여사는 세상에서 바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냥 파도라고, 다시 잠잠해질 거라고 다독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