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주 1회 채소를 다듬는 동안 떠오른 생각을 이모저모 공유합니다.
대파가 도착합니다. 대파를 받으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대파를 다듬는 시간은 저에게 일종의 힐링입니다.
기분 좋게 비닐을 풀고 대파 단을 하나 하나 분리합니다.
흐르는 물에 대파를 한 단씩 씻어냅니다. 흙을 씻어낼 때 흙 향이 물과 함께 확 올라옵니다.
이 향은 언제나 저를 시골 마당 앞 수돗가로 데려갑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는 한 번도 시골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요.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아내고, 대파를 용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송송송 썰어 냉동 보관용으로, 하나는 크게 썰어 냉장 보관용으로 준비합니다.
나무 도마를 꺼냅니다. 나무 도마 위에서 썰어야 써는 맛이 삽니다. 칼질 소리가 ‘톡톡’ 나무 도마에 부딪히는 그 감각이 좋습니다. 한 단을 쉬지 않고 다 썰어내면 묘하게 성취감이 듭니다. 어쩌면 그래서 워너비 주방 아이템 리스트에 늘 중식도가 올라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본격적인 칼질을 시작하기 전에 파뿌리 부분을 듬성듬성 잘라냅니다. 육수 낼 때 파뿌리를 하나씩 넣어주면 감칠맛이 더 산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큰 차이를 못 느끼긴 합니다만 파뿌리를 넣으면 더 정성이 들어간 것 같아 꼭 남겨 놓습니다.
칼질을 하다 보면 눈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고입니다. 예전에, 파나 양파를 썰 때 눈물이 나지 않으려면 파를 입에 물고 썰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진짜일까요? 아직도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매번 이 생각이 스칩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시큰함이 싫지는 않습니다. 와사비를 먹고 느끼는 그 ‘찡함’을 즐기는 것처럼, 어쩐지 그 순간을 견디는 재미가 있습니다.
냉장 보관용은 파란 잎과 하얀 대를 나눠서 실리콘 백에 넣어두고 냉동 보관용 대파는 보관통에 색깔별로 구역을 나눠 놓습니다. 하얀색, 연두색 그리고 초록색으로 그라데이션이 된 물결이 그려집니다. 이렇게 다듬어진 대파를 유심히 보면 대파가 이렇게 예뻤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정돈된 채소가 주는 만족감이란 참 묘합니다.
대파를 다듬고 나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파기름을 내도 좋고, 찌개에 넣어도 좋고, 양념장에도 넣을 수 있습니다. 대파 한 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습니다. 이 대파와 함께 뭘 해먹을까 생각만 해도 벌써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소설(小雪)의 풍경과 닮아 있습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이 시점은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 소소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입니다. 대파를 다듬으며 나만의 작은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이 대파가 들어간 따뜻한 요리가 제게 남아 있는 한 이 겨울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파를 입에 물진 않았지만 집에 있는 수경을 쓰고 다듬어 본 적은 있습니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