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명명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미국 이곳저곳에서 생활에 필수적인 상점만 제외하고 문을 닫는 락다운 (Lockdown)이 시행되던 시기. 꽤 높은 수준의 불확실함과 불안함이 생활 이곳저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뉴노멀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엔 어수선했던 시기. 그러니까 2020년 5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와 일상적인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온라인으로 일을 하던 서로의 일상에 대한 안부를 묻다가, 서로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팬데믹을 마주하고 누구나 공평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는지 연구나 해볼래.”
친구가 커뮤니케이션 연구자일 때 좋은 점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수다 타임은 그렇게 연구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우선 코로나19가 인류가 개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문제라는데에 집중했다. 우리가 궁금했던 것은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대응 방법의 차이였다. "사람들이 코로나19를 개인의 건강문제라고 생각하거나 공동체의 건강문제라고 생각하는 데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코로나19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정도나 예방 행동을 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까.” 이 두 질문은 곧 우리의 연구 문제가 되었다.
연구 공동체에 속해서 다행인 점 중 하나는, 내가 궁금한 지점들에 대해 누군가 미리 고민해 놓은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존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Cop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심리학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해온 개념인데,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적응, 극복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를 확장시킨 Communal coping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주로 연인이나 가족 관계 내에서 한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연구들이 진행되어왔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이것이 어떻게 개인의 질병을 넘어서 진료비 마련, 식이요법, 정서적 지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가족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대응하는 과정이 되는가에 대한 연구가 그 한 예시이다. 드물지만 지역사회로 Communal coping의 개념을 확장시켜서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공유하는지에 대한 연구들도 꾸준히 진행되어오고 있었다.
Communal coping
우리 연구에서는 먼저 팬데믹 상황에서 개개인이 가진 Communal coping의 경향을 측정하기로 했다. "나는 코로나19가 지역사회가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할 건강문제라고 생각한다” 혹은 “내가 속해있는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와 같은 문항들에 사람들이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파악한 후에,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다음 관건은 사람들이 “왜” 팬데믹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는 아주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다. 누군가는 개개인이 타고나 성향과 성격의 차이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개개인의 사회경제적 수준이나 정치 성향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우리가 궁금했던 부분은 개개인이 속한 지역사회, 혹은 공동체의 특성에 관한 부분이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그리고 그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서 팬데믹에 대한 인식에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팬데믹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코로나는 개인의 문제일까, 공동체의 문제일까.
과학의 발전은 끊임없는 예측과 그 예측에 대한 검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하게 세 가지 가설을 세웠다. (1) 같은 지역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일수록, (2) 지역사회 정체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리고 (3) 커뮤니케이션 인프라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들일수록, 코로나19를 공동체가 함께 극복해나가야 할 공동의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역 거주 기간
첫 번째 예측은 지역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일수록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민감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으로 기대됐다.
지역사회 정체성
두 번째 예측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기반으로 했다. 조직이 나에게 의미를 가질수록 당연히 더 강한 조직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지역사회 정체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코로나19를 지역사회 공동의 문제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커뮤니케이션 인프라
세 번째 가설에는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라는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인프라라고 하면 흔히 도로나 항만처럼 물리적인 인프라를 떠올린다.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는 각 지역사회의 환경이 구성원들 간의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개념이다. 2006년에 이에 관한 첫 논문이 발표되었을 정도로 꽤 최근에 등장한 개념인데, 어떤 개인이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더 자주 대화를 나눌수록, 지역사회 미디어를 자주 접할수록, 그리고 지역사회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수록 커뮤니케이션 인프라가 잘 구성되어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인프라가 사람들이 코로나19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공유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주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팬데믹에 대한 인식 차이는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이제 남은 연구 문제는 “코로나19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이나 예방 행동을 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스트레스 지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듯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면, 코로나 19로 가 공동체 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했다. 나 혼자서 겪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지수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코로나 예방 행동
한 편,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코로나19 예방 행동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예방 행동을 함에 있어서 나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이유에 더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동기가 추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마스크를 껴는 일이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마스크를 껴야 다른 사람의 감염 위험도 그만큼 더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마스크를 낄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결과
우리의 예측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2020년 6월 10일부터 26일까지, 뉴욕주 거주자 257명을 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미국의 주마다 자가격리나 마스크 시행령 등과 관련해서 서로 다른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기에 지역을 한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뉴욕주가 특히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연구 대상 지역으로 선정했다.
중요한건 지역 거주 기간이나 커뮤니케이션 기회/자원이 아니라, 얼마나 강한 지역사회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조사 결과, 지역사회 정체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코로나 19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 하지만 지역에 거주한 기간이나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는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를 해석해보면, 아무리 한 지역에 오래 살았어도, 그리고 아무리 커뮤니케이션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있어도, 지역사회 정체성이 강하지 않다면 코로나19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도 개인적 수준에서 모색할 확률이 크다고 이해해 볼 수 있다. 반면, 코로나 19를 공동체의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 같은 노력은 설문조사 가장 마지막에 사람들이 남긴 서술형 답변에 잘 나타났다. “지역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푸드뱅크에 음식을 기부하고 있다,” “손 소독제가 필요한 이웃들에게 이를 나눠주고 있다,” “고위험군인 이웃주민을 대신해 생필품을 구입해주고 있다”와 같은 답변들에서 처럼.
더 많이 스트레스 받고, 더 적극적으로 예방 행동을 하는건 팬데믹을 공동체의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
또 두 번째 연구 문제와 관련해서는, 코로나19를 공동체의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예방 행위에 더 적극적이지만, 이 같은 인식의 차이는 개인의 스트레스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체의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코로나19 예방 행동에 적극적이라는 결과는 사실 놀랍지 않았다. 그렇다면 코로나를 공동체의 문제로 생각하는 인식과 스트레스 정도는 왜 서로 연관이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우리는 나의 고통을 나누면 절반이 되지만, 타인의 고통을 내가 공유하는 순간 내가 짊어지는 고통이 다시 증가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해석을 해봤다. 실제로 기존 연구들에서 연인이나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힘든 상황에 깊게 개입할수록 스트레스가 높아진다는 결과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나눠서 스트레스가 줄어들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 결과로 스트레스가 높아진다면 통계 결과에서는 그 영향이 서로 상쇄되어서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날 확률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연구결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코로나 예방 행위를 권고하는 캠페인 메시지를 제작할 때, 마스크를 쓰거나 백신을 맞는 일이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나의 문제” “나의 책임”이라는 단어보다 “우리의 문제” “우리의 책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메시지를 제작할 때,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예방 행위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지역사회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 코로나19를 공동의 문제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더 적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예방 행위에는 더 적극적이 었다는 것이다.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개인들은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 지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확률도 높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공동체의 보건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논문은 Journal of Community Psychology라는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논문이 그렇듯 우리의 논문이 인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종식을 위한 개인들의 노력에 동참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제 정말 팬데믹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개개인의 노력들에 힘입어 우리 모두가 일상을 되찾을 날이 곧 찾아오길.
*Kim, Y., Tian, X., & Solomon, D. H. (2022). Coping with COVID‐19 at the community level: Testing the predictors and outcomes of communal coping. Journal of Community Psychology. https://doi.org/10.1002/jcop.22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