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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달 Dec 30. 2020

89일 차

눈을 바라보며

 늦은 오후, 아이 손을 잡고 밖에 나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막 내리기 시작한 때였는지 아직 바닥에 쌓인 것은 없었고 눈송이가 작고 가벼워 땅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눈을 본 아이는 들떠서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고 깡총거리며 자꾸 손을 뻗어 눈을 느끼고 싶어 했다. 눈이 오면 여러 가지 걱정부터 드는 나와 달리 아이는 마냥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고 즐기고 있었다.


 이른 저녁까지도 쌓이지 않던 눈은 해가 지고 난 밤이 되니 어느새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고, 자고 일어나니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차도나 인도를 제외하고 아직 눈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사라지고 남겨진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꾸준함’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 당장 보기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꾸준히 끊임없이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쌓인다는 것. 그것이 비록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89일 차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불과 3~4달 전만 하더라도 내가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100일을 온전히 채우겠다는 목표에서는 살짝 부족한 상태가 되었지만(미리 글을 다 준비해놓고 업로드하는 것을 두 번이나 잊다니, 어흑) 예전의 나와 다르게 이번만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이 신기하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글을 매일 모아 나에게 뿌듯함을 선물하는 것이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 아니었을까. 지금은 어설픈 디지털 캘리 선긋기 연습도 글쓰기처럼 차차 쌓여 나에게 볼만한 작품으로 다가올 것을 믿는다. 지금의 노력은 언젠가는 어떠한 형태로든 쓰이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눈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명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악플이나 이유 없는 비난에 괴로움을 겪는다. 처음엔 그런 것들이 쌓이지 않는 눈송이처럼 담담하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향한 꾸준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과 머릿속에 남아 쌓이게 된다. 이성적인 사고나 심리 상담 등으로 대부분의 아픔들을 다 지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늘진 곳에 쌓였다가 녹지 못하고 얼음으로 변해 겨우내 남아있는 눈처럼 상처를 완전히 지우는 것은 어렵다. 사랑스러운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며 겨우 녹여낸 깊은 상처도 어느새 다가온 겨울에 다시 얼어붙게 될 수도 있다. 구석구석 남아 있는 얼음을 깨거나 뜨거운 물을 붓거나 흙을 덮거나 여러 방법으로 우리는 아픔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내리는 눈의 아름다움보다는 어느새 뒤처리가 먼저 생각나고 다가올 부담에 짓눌리는 나이가 된  내 모습이 재미있고 슬프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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