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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Dec 28. 2023

<<모든 것의 시작: 인류의 새로운 역사>>

우리는 지금과 다른 사회에 살길 원하나?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많은 걸 배웠다는 느낌보다 저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느낀 건 처음이다. 책 말미에 따로 정리한 주석(notes)까지 합치면 600페이지가 넘는 데이비드 그래버(David Graeber)와 데이비드 웬그로우(David Wengrow)의 <<모든 것의 시작: 인류의 새로운 역사(The Dawn of Everything: A New History of Humanity>>를 한 달 넘게 읽고 책을 덮으며 든 느낌이 그랬다. 왜 그럴까? 일단 저자들의 말투가 세다. 기존에 알던 역사적 사실이나 이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다른 분야의 저자, 핑커(Steve Pinker), 재리드 다이아몬드(Jared Dimamond),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등이 쓴 책에서 한 부분을 따와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론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정확하게 답변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왜 불평등한 제도에 갇혔는가?" 질문은 좋다. 답은 명확하지 않다. 대신 흥미로운 인류학과 고고학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딱히 우리가 불평등한 제도에 갇힌 이유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수천 년 전에 인류는 살고 있는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꿨고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조금은 거만한 태도로 애매모호한 썰을 잔뜩 풀어놓은 책이지만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적어도 나는 서양이 이끌어온 문명에 대한 이해를 다른 각도로 보지 못했는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온 자료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달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들 말처럼 사회 과학자들은 인간사를 매우 단순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 원석이나 조개껍질 장신구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흔적이 나오면 옛날부터 사람들은 거래를 했고 시장은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고고학에서 발견된 자료를 보면 사람들이 원석이나 진귀한 장신구를 얻게 된 계기가 꼭 무역이나 거래에 의한 게 아니었다. 16 17세기 이로퀴이족의 경우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나거나, 병을 고쳐주고 대가를 받거나, 게임에 이겨서 진귀한 물품을 받았다. 따라서 단순하게 구석기시대에는 수렵 채집을 하는 작은 집단에서 평등적 관계가 유지되다가 농경사회로 진화해서 음식을 저장하며 계급이 생기고 복잡한 산업사회로 발전하며 불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선형적인 인류 역사 인식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자유’에 관한 해석이다. 우리 생각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가치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이동의 자유, 명령 불복종의 자유, 어떤 사회를 이루고 살 것인지에 대한 자유가 특히 그랬다. 1754년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쓰고 난 후 유럽 사람들은 불평등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논쟁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특정한 신분으로 태어나면 평생 그렇게 사는 게 순리라고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불평등에 관해 논의했을까? 그래버와 웬그로우에 의하면 바로 아메리칸 인디언을 만났기 때문이다. 당시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원주민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던 선교사들과 무역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유와 평등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대화를 나눴던 가브리엘 사가르(Gabriel Sagard) 같은 선교사와 라혼탄(Lahontan) 같은 프랑스 군인이 쓴 이야기가 계몽주의를 창시한 루소와 같은 유럽 지식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자유와 평등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프랑스 지식인과 자주 철학적인 논쟁을 벌였는데 이들 “원주민 비판자 (the indigenous critique)’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칸디아롱크(Kandiaronk)다. 그는 프랑스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프랑스인은 권력을 갖기 위해 다투고 계급이 높은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으며 모든 권력을 가진 왕에게 충성하며 스스로 노예로 전락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무책임하다. 요컨대, 서양인은 우리에게 야만인이라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그들이 더 야만적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한 종교를 원했다면 모든 나라에 가서 기적을 행하고 하나의 법칙을 정해줬을 텐데 세상에 500~600개의 종교가 있으니 프랑스 종교가 가장 성스럽고 진실이라고 하는 건 문제다. 또한, 영원한 저주에 대한 종교적 교리와 마찬가지로 유럽식 징벌법이 인간 본성의 고유한 타락을 막기 위한 게 아니라 사회 조직의 한 형태로 필요한 것이며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장려한다고 했다. 


그럼 아메리카 원주민이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무엇인가? 웬다트(Wendat) 원주민의 경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할 수 없었다. 평등은 자유의 확장으로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말하는 ‘법 앞에서 평등’하게 복종하는 것과 다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평등은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복종하거나 불복종할 자유가 동등하다는 점에서 평등했다. 아버지조차 아이를 통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만 복종했다. 누군가 살인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형벌은 없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 쪽 가족이 충분히 물질적인 보상을 했다. 웬다트 원주민도 부를 더 가진 자가 추장과 같은 지위를 갖지만 이들은 부를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마을 잔치나 보상을 해야 할 경우 비용을 대기 위해 사용했다. 


법과 규율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에서 생명과 재산이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가지만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은 법도 없고 법을 강요하는 지배자도 없었지만 별 탈없이 공동체 생활을 꾸려간 것으로 보아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특별한 철학이 있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아메리카 원주민은 공동체 안에서 굶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 보살폈다. 그렇다고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이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문화를 고집하고 완전히 관련 없는 여섯 개의 언어군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일관된 동맹도 있었기 때문에 현재 조지아의 곰, 늑대 또는 매 부족 출신의 여행자가 온타리오나 애리조나까지 여행하고 그들을 호의적으로 맞아줄 누군가를 찾는 것이 가능했다. 하나의 공동체는 늘 두 개의 대립되는 부족으로 이뤄졌다. 이들 공동체는 기원전 100년부터 서기 500년 호프웰 상호작용 영역(Hopewell Interaction Sphere)의 네트위크에 소속되어 의식과 외교 시스템을 공유했다는 증거가 있다. 분명한 건 일 년에 일 이 주만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무덤이 있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한 장소에 모였다가 흩어졌다는 점이다. 


호프웰 영역에 있던 원주민들은 나중에 유럽 정착민들이 “이집트”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비옥한 땅에 살고 있어서 고전적인 곡물 국가를 건립하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제한된 의식 목적으로 옥수수 재배를 할 뿐 작물 재배를 일부러 하지 않고 고지대에 고립된 농가에서 사는 걸 선호했다. 이러한 농가는 단일 가족 혹은 많아야 3~4 가족뿐이었다. 이 작은 그룹은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 사이를 오가며 사냥, 낚시, 채집, 혹은 작은 밭에서 지역 작물을 재배했다. 사람들은 이웃과 정기적으로 접촉을 했지만 전쟁이나 조직적인 폭력의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서로 잘 지내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지속적인 마을이나 마을 생활을 만들기 위해 함께 모인 흔적은 없다. 따라서 그래버와 웬그로우는 이곳의 상황을 설명하며 '무리'에서 '부족'과 '족장 사회'로의 발전에 기초한 전통적인 진화론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두 저자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보다 더 오래된 우크라이나의 메가 지역(Mega-site), 기원전 7400년경에 처음 정착을 시작하여 약 1,500년 동안 사람이 거주했던 터키 중부 코냐(Konya) 평원에 위치했던 카탈호육(Çatalhöyük), 12세기 아즈텍(Aztec)인들이 멕시코에 정착하기 전에 있었던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등 거대한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하며 인류가 오랜 기간 지배자 없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던 시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나온 유물을 보면 마야(Maya)와 자포텍(Zapotec)의 미술과 달리 통치자가 부하를 때리거나 구속하거나 지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고대 메소아메리카 왕국의 왕실 전시의 또 다른 핵심 요소인 의식용 무도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인류가 중앙 집권적인 지배자 없이도 오랜 기간 잘 살았는데 이는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다가 서기 300년 경에 혁명이 일어나서 일종의 집단 통치가 이뤄졌다고 추측했다. 그리고 피라미드를 짓는 대신에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지어졌다. 


결국 그래버와 웬그로우는 인류학이나 고고학에서 알게 된 증거로 인류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단순한 사회에서 복잡한 사회로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보다 과거 수렵채집 사회도 평등한 관계와 불평등한 관계로 이뤄진 사회가 있었고 농사를 선택한 부족과 수렵채집을 선택한 부족 등 다양한 집단이 존재했다는 거다. 처음에는 왕이 진짜 권력을 가진 게 아니라 왕 놀이를 하며 집단이 싸우지 않도록 의식과 외교를 담당했다. 전쟁 대신 부족 간에 스포츠를 하며 승부를 가려서 상금을 타갔다. 계절에 따라 남자가 리더를 맡기도 하고 여자가 리더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비교적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다가 잉여 곡식을 창고에 쌓아 놓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진 자가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의식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사를 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힘으로 제압하고, 지식을 통제하고, 카리스마 정치를 하며 지배구조가 확립됐다. 


그래서? 지금 사회도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공동체 규모로 일하는 관료제, 주민 의회가 통치하는 도시, 여성이 공식적인 직책의 우세를 차지하는 정부 시스템, 소유와 착취가 아닌 관리에 기반을 둔 토지 관리 형태 등”(p. 523)… 전에도 이런 형태의 사화가 오랫동안 존재했으니 오늘날에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여기서부터 저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사실 두 저자를 잠깐 소개하자면, 그래버는 미국인 인류학자고 웬그로우는 영국인 고고학자다. 두 데이비드 중 그래버는 사람들에게 더 알려져 있다. 그는 16세에 한 잡지 인터뷰에서 무정부주의자라고 선언했으며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며 계속 무정부주의 운동을 이어갔다. 2011년 "우리는 99%다(We are the 99%)"이란 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우며 월가 점령 시위가 있을 때 초기 선두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 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인류학에 상당한 업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예일 대학은 그래버에게 교수직 재계약을 거부했고 20여 개의 다른 미국 대학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2008년 영국으로 건너가 강사로 있다가 2013년 런던 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교수가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래버는 2020년 9월에 췌장염으로 사망하여 웬그로우와 함께 쓴 이 책의 출판을 보지 못했다. 그가 꿈꾸던 무정부주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핑커를 비판하며 아메리칸 원주민에 관해 한 이야기에 답이 있을 것 같다. 


핑커는 통계적 수치를 보여주며 건강, 보안, 교육, 편안함 등 "현대 생활은 거의 모든 면에서 이전 생활보다 우월하다"(p. 18)고 말하지만 "통계는 근거가 되는 전제만큼만 유효"해서 서양 문명이 정말 모든 사람의 삶을 더 나아지게 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핑커는 어릴 때 야노마미에게 납치된 헬레나 바레로(Helena Valero)를 인용하면서 야노마미 습격의 잔인함만을 말하지만, 20년 후 가족에게 돌아간 헬레나는 문명사회에서 낙담하고 외롭고 배고픈 적도 있어서 다시 야노마미에게 돌아갔다고 했다. 헬레나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원주민에게 붙잡혀서 그들과 생활했던 개척자와 아이들도 원주민 사회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반면, 백인과 결혼하거나 입양된 미국 인디언들은 매우 부유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원주민 사회로 돌아갔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어떤 사람은 성적 자유뿐만 아니라 토지와 부를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강조했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이 누구든 빈곤하거나 굶주린 상태에 놓인 것을 꺼려해서 공동체에 그런 사람이 없도록 해서 좋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균등한 기회가 주어져서 인디언 가족에게 받아들여지면 외부인도 공동체에 쉽게 수용되고 심지어 추장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에서 경험한 사회적 유대의 강도, 즉 상호 배려, 사랑, 행복의 특성과 관련이 있었는데, 이는 유럽 환경에서 경험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 "보안"이란 게 통계적으로 화살에 맞을 확률이 더 낮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지만 화살을 맞으면 보살펴줄 사람이 확실히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문명이 "보안"을 더 좋게 했다는 핑커의 통계적 수치가 과연 맞는지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다. 이걸 보면, 그래버가 꿈꾸던 무정부주의 사회는 사회적 안전망이 잘 구축된 사회가 아닐까 싶다. 


<참고자료>

Graeber, D., & Wengrow, D. (2023). The Dawn of Everything: A New History of Humanity. Picador (Original work published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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