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당시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며 집값이 하락해서 구매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힘들 때 어부지리로 이익을 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 13만에 첫 집을 장만한 만수와 영숙은 마음이 벅차서 이사 온 첫날밤 쉬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레이스의 학교는 1년 등록금을 냈다고 해서 지출이 더 이상 없는 게 아니었다. 비싼 학교에 보내면 방과 후 수업도 비쌌다. 그레이스는 바이올린을 해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미국에 있을 때 스즈키 바이올린을 4살 때 시작했지만 레슨비가 부담스럽고 바이올린도 자꾸 큰 것으로 랜트해야 해서 6살 때 그만뒀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하고 싶다고 하여 일단 가장 저렴한 문화센터에 보내 봤다. 문화센터 선생님이 아이가 소질이 있으니 개인 레슨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집 앞에 음학학원에 보냈더니 음대를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여선생은 그레이스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 해서 가르치는 게 재밌다고 다음 학생이 없으면 정해진 레슨 시간보다 더 길게 봐줬다. 그레이스는 집에 와서도 몇 시간씩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일 년 만에 스즈키 교본을 9권까지 마치고 학교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독주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숙은 교회에서 외국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엄마들을 만났을 때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 중 몇 명은 서울대 음대 선후배로 교회오케스트라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서울대 음대에서 비올라를 전공했다는 엄마가 선배인 첼로 전공자에게 불만인 듯 말했다.
베켓 선생님은 너무 미국식인 것 같아요. 그렇게 잘하지도 않는데 노력을 많이 했다고 잘하는 우리 아이 대신 그 초자를 학년 말 독주자 중 한 명으로 뽑았다고 했어요.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편곡한 곡이라던데, 너무 쉬운 거잖아요.
영숙을 잘 알고 있는 첼로 전공자는 비올라 전공자에게 “우리 아이도 안 됐어. 그레이스는 정말 단기간에 빨리 늘었다고 아이들도 다 놀라던 걸. 그리고 여기 이 분이 그레이스 엄마 셔…”
외국인 학교엔 진짜 머리가 노란 외국인은 한 명만 있고 모두 외국 국적의 한국인이었다. 그 유일한 외국인이 그레이스를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항상 모든 친구들의 생일에 초대됐다. 그러다 학년이 올라가며 주말에 운동 과외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한 달에 30만 원이라고 했다. 토요일에 2시간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노는 거라고 했다. 처음 외국인 학교에 아이를 보낼 때 걱정이 되어 스쿨버스에 함께 타고 갔었다. 그런데 스쿨버스를 타고 오는 학생보다 기사가 데려다주는 학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레이스가 친하게 지내는 몇몇 한국 친구들 집에 갔더니 모두 조부모가 부모보다 재산이 많은 집안들이었다. 그래서 외국인 학교 등록금도 모두 조부모가 내준다고 했다. 그러니 그들이 한 달에 30만 원 내고 노는 건 별일이 아니겠지만 영숙에게는 앤드류의 특별활동 2개를 빼는 것과 맞먹는 액수였다. 앤드류까지 외국인 학교를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아 앤드류는 시험 보고 들어가는 수준 있는 영어 학원 한 곳만 빼고 모두 동네 학원에 보냈다. 그런데 그 영어 학원 한 달 등록금과 그레이스의 토요일 놀이 활동비가 거의 맞먹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 다리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외국인학교는 7학년 때부터 연말에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파티를 열었다. 드레스를 사고 신발을 맞추고 미용실에서 고데를 해줬다.
그레이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수가 안식년을 받아 노스캘로라이나 대학교 의대에 가게 되어 일 년에 이천만 원씩 등록금을 안 내도 됐다. 앤드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어차피 그레이스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미국 학교로 진학하는 게 어렵지 않았고 앤드류도 학원을 다니며 계속 영어를 공부해서 미국 공립학교로 진학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다 온 그레이스 마저 ESL프로그램에 들어가게 해서 그레이스는 자존심이 상했다. 다행히 그레이스는 3개월 후 일반 영어 시험에서 A를 받아 ESL를 가지 않아도 됐고, 앤드류도 1년 후 일반 영어 성적이 반에서 두 번째로 좋게 나왔다. 만수가 1년의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 부부는 그레이스와 앤드류가 대학을 들어갈 때까지 3년간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영숙도 중간에 그만둔 박사학위를 마저 마치기로 했다. 만수가 레지던트와 펠로우를 마치고 암 전문 병원에서 골수이식 기술을 전수받을 때 영숙은 간호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만수가 한국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돌아오게 되어 공부를 마치지 못했었다. 간호학은 석사 학위만으로는 전문대학교 강사 자리도 얻기 힘들었지만 선배 도움으로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강사 자리를 구했다. 그 후 몇 편의 논문이 학회지에 실리고 강의 평가가 좋아 강의전담 교수까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게 될 때 1년 이상 체류하면 되돌아왔을 때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 교육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박사학위를 3년 안에 끝낼 수 있는지 알아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