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엄마, 린다는 홀리데이인에 묵은 적이 없대요. 늘 하얏트나 힐튼 같은 곳에만 묵었대요. 항상 린다가 식사도 사고 그래서 이번에 USMLE Step 2를 보러 갈 때 시험 장소와 가까운 숙소를 내가 잡았는데, 린다가 옮기자고 해서 호텔로 옮겼어요. 예전에 엄마가 우리 데리고 대학교 투어 다닐 때 홀리데이인보다 더 저렴한 인에도 묶었지만 깨끗했잖아요. 그래서 저도 어차피 하루 자는 건데 깨끗하면 된다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홀리데이인을 잡았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하이웨이 바로 옆에 트럭이 많이 서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린다가 무섭다며 앱으로 근처 호텔을 찾아서 다행히 방을 잡아 옮겼었죠. 그래서 결국 또 린다가 호텔비를 냈어요.
그 말을 듣고 영숙은 고민스러웠다. 그러면 우리와 너무 차이 나는 것 아냐? 돈 있는 집안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 게 나쁠 건 없는데, 린다가 고급 식당에 갈 때마다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이, 그래도 어떻게 걔한테만 내라고 하니? 너도 가끔 내야지. “저도 내요. 그냥 피자나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때…” “아니, 너도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저도 돈을 모아야 결혼반지라도 해주죠.” 영숙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래 30이 넘은 성인인데 지네들이 알아서 해야지.
영숙은 린다가 좋았다. 앤드류 말과 달리 린다는 소박해 보였다. 메이커 있는 옷이라도 표시 나지 않게 차려입고 목소리도 차분하고 단정했다. 한국에서는 강남 지하상가에서 산 원피스도 입고 다니며 설렁탕도 좋아하고 영숙이 끓여준 미역국도 맛있게 잘 먹었다. 게다가 린다와 영어로 대화하는 게 좋았다. 린다는 말이 많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은 분명히 전달했다. 무엇보다 영숙이 린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린다가 앤드류를 좋아하는 게 보였다. 식탁에 수저는 놓는 작은 일이라도 앤드류가 해주면 고맙다고 말하며 어깨나 손을 쓰다듬어주고 영숙이 앤드류가 어릴 때 방을 어지럽히고 치우지 않았다고 흉보면 지금은 청소도 잘하고 설거지도 곧바로 한다고 칭찬했다.
"앤드류 제주도에서 운전 잘해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거기 갈 수 없었을 거야. 어머니, 앤드류는 정말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해요.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해 주고 단점은 모른 척해요. 어차피 누구나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지만 고치는 건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오히려 사이만 나빠진다고… 상대의 행동을 정 참을 수 없다면 그냥 안 만나면 되고 굳이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해서 기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했죠. 전 그런 앤드류의 편안한 성격이 좋아요."
린다는 작은 일이라도 항상 앤드류에게 물어보고 했다. 예를 들어, 만수와 영숙이 아이들이 사는 뉴욕 아파트에 놀러 갔을 때 린다는 맛집에서 시킨 음식을 접시에 옮겨 놓고 평소에 하던 것처럼 노트북을 식탁에 가져와 오락프로를 켤까 물었다. 앤드류가 부모님이 계시니 그러지 말자고 하자 그렇게 했다. 만수와 영숙 부부와 다르게 앤드류와 린다는 어디를 가든 나직한 목소리로 계속 대화를 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언젠가 앤드류는 영숙에게 장래의 배우자가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자라서 뉴욕의 명품 가게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쇼핑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린다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