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뒤죽박죽 완벽한 출장이 있을 수 있을까?
준비
코이카로부터 개발 지원금을 받은 회사는 출장 계획을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협의를 시작했다. 우리의 계획서를 한참 들여다본 담당과장이 한 마디 한다.
"아니 이사님, 아프리카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적 있으세요? 사업 시작하자마자 출장을 가셔야지, 현지사정도 모르고 어떻게 현지 보급하는 제품을 만드실 수 있으세요?"
순간 뜨끔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탄자니아 계신 간사님만 믿고 출장은 모두 후반부로 계획을 미루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법. 현장도 모르면서 개발을 먼저 하는 것은 자칫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계획서를 수정하고 비행기표부터 알아봤다. 탄자니아행 비행기는 직항이 없다. 가장 빠른 코스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경유해서 가는 에티오피아 항공과 카타르 도하를 경유해서 가는 카타르 항공 두 비행 편이 눈에 들어왔다. 출장은 8월 초 계획을 했는데, 앞 뒤로 일정을 변경해 봐도 1회 경유 비행 편이 없었다.
1회만 경유해도 기본 20시간 여정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여행이 만만치 않다.
온라인 비행기 티켓 구매 사이트에 대기를 걸어 넣고 잠깐 시간이 지체되면 가격이 계속 올랐다. 이유를 알아보니 8월에는 여름방학 특수와 함께 전 세계에서 아프리카로 선교와 자원봉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꼭 탄자니아가 아니더라도 아프리카로 향하려면 경유 공항인 아디스아바바나 도하공항을 거치다 보니 우선 거기까지 가는 비행 편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북경에 한 번 더 경유하는 2회 경유 비행 편을 찾아 겨우 결재했다.
비행기 예약이 끝이 아니다. 이번엔 아프리카 여행을 위한 사전 예방주사를 맞아야 했다. 황열병 예방주사와 파상풍 주사는 여행자가 사는 지역에서 지정된 큰 병원에서 맞아야 했고, 독한 말라리아약은 보건소에서 처방받아 7주간 복용해야 했다.
드디어 출국날이 다가왔다. 첫 출장인지라 가지고 가야 할 샘플도 많았고 기본 2주일을 계획하다 보니 옷가지도 많아 각자 여행용 가방 두 개씩 수하물에 싣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첫 경유지인 북경공항에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북경공항은 두 개의 터미널로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내린 곳은 제1 터미널이었고, 다시 다음 행선지인 아디스아바바로 가려면 제2 터미널로 옮겨가서 환승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우연히 알게 된 에티오피아까지 같이 여정을 함께 할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에티오피아에 가서 6.25 때 참전한 퇴역군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귀한 봉사활동차 가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북경공항에서 청년들이 사라졌다. 같은 에티오피아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게이트 앞에 기다려도 한참을 오지 않더니 출발시간 거의 다 되어 허겁지겁 뛰어왔다.
"그쪽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비행기 놓칠 뻔했네."
"아, 선생님! 혹시 몰라서 짐을 찾는 곳에 가 봤는데 저희 짐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수하물 짐으로 부치느라 늦었어요."
땀 까지 삘삘 흘리면서 한 청년이 대답했다.
순간 기분이 묘했다. 분명 한국에서 모든 짐에 탄자니아행 딱지를 붙이는 것을 보고 탔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가 없었는데 저 청년들 얘기를 들어보니 약간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탄자니아에 가기 위해선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경유해야 했다그렇게 비행기는 북경을 출발했고,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몇 시간 기다리다 환승해서 드디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공항에 도착했다.
'라이언 킹'의 나라 탄자니아 에서의 첫날
공항에 도착하고 짐을 찾는데 아니나 다를까... 북경공항에서 가졌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3명의 출장자가 각각 2개씩의 수하물 짐을 실었는데, 한 개씩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동물의 왕국 세렝기티 국립공원을 보유한 나라, 한국인에게 익숙한 킬리만자로 산을 보유한 나라, 그 탄자니아에 도착했건만 그런 설렘을 느끼기도 전에 짐을 잃어버린 황당함에 다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출구 쪽에 있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서 확인을 하기로 했다. 우리뿐 아니라 꽤 많은 여행객들이 잃어버린 짐의 행방을 알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느긋한 담당자는 우리가 몇 번을 설명하고서야 컴퓨터 화면에서 확인한 단서를 퉁명하게 알려준다.
"당신네 물건은 북경공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내일 다시 와봐라. 그런데 제대로 도착할지는 모른다."
데스크에서 각자의 정보를 다 적은 후 입국장 밖으로 나왔다. 동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도시인 다르에스살람은 탄자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경제수도로 불린다. 그런데 공항의 규모는 우리나라 지방공항보다 작았다. 어쩌면 처음 도착해서 설렘으로 흥분했어야 할 곳이 황당한 경험으로 인한 불쾌한 첫인상만 남게 되었다.
다르에스살람 공항 도착 게이트는 그냥 건물 밖으로 통한다.간사님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몸과 짐을 싣고 우선 호텔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탄자니아의 중부에 위치한 모로고로였다. 하룻밤을 호텔에서 묵고 아침에 현지 코이카 사무소에 가서 회의를 했다. 출장자 중에 한 분은 옷 가방이 오지 않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코이카 담당자는 회의를 일찍 끝내고 빨리 공항에 가 보라고 했다.
"탄자니아에 올 때 경유지에서 짐을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못 찾으시더라고요. 그래도 모르니 공항에 가 보세요."
어제 도착한 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갔다. 도착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 고객센터에 갔더니 휴식 시간이었다. 그런데 휴식시간이 오후 한 시부터 네 시까지 였다.
"아니, 오후 1시부터 4시면 가장 바쁜 시간대 아닌가요? 정말 이상하네~"
출장자들은 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센터엔 아무도 없었고, 공항경찰은 내부로 못 들어가게 막아섰다. 경찰에게 아무리 사정해도 요지부동이다. 만약 4시 이후에 짐을 찾아도 모로고로까지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문제는 탄자니아 고속도로는 도심을 벗어나면서부터 가로등이 없기 때문에 밤 운전이 위험하고 빈번히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도착 게이트를 지키는 경찰에 다시 한번 읍소하며 사정사정했다. 불쌍해 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정성이 통해서였을까? 경찰이 무전기로 안쪽에 연락을 취하는가 싶더니 어제 만났던 그 느려 터진 데스크 담당자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손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할렐루야!"
일행은 큰 소리로 "아산테, 아산테" 탄자니아 말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안쪽으로 들어갔고, 제일 먼저 짐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와우! 눈에 익은 짐들이 얌전히 보관되어 있었다. 그곳엔 우리 짐 밖에 없었다. 담당자는 우리 보고 웃으며 행운이라며 짐을 넘겨주었다.
계속된 긴장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짐을 찾고 공항을 나와 바로 목적지로 출발했다. 다르에스살람에서 목적지 모로고로까지 직선거리로 180km 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 승용차로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시간은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이유는 고속도로에서 승용차는 최고 속도 80-100km/h 달릴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 왕복 2차선인 데다가,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트럭과 버스가 너무 많아 도저히 빨리 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앞에서 사고라도 나면 무작정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고속도로는 왕복 2차선. 게다가 항상 붐빈다.오후 두 시쯤 출발한 출장자 일행은 거의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 모로고로에 도착했다. 탄자니아는 저녁 일곱 시가 되면 해가 떨어지고 도심이 아닌 곳에서는 차량 불빛 외에는 빛이 없는 세상이 펼쳐졌다. 감사하게 모로고로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 NGO 봉사자 집에 초대받아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무려 만 이틀 만에 한식을 먹게 되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호텔로 들어가려고 다시 차를 타는데 갑자기 차에서 머플러가 툭 떨어졌다. 모두 당황했다. 이때 간사님이 한마디 하셨다.
"오! 이사님, 만약 우리가 오늘 오는 도중에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머플러가 떨어졌다면 이곳에 제 때 못 올 수도 있었어요. 신께서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
탄자니아가 우리를 환영해주는 것 같다.
사라진 교장선생님
이번 출장의 목적은 현지 물사정 조사와 함께, 향후 개발할 물 살균기 제품을 나눠 줄 오지마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 협약식을 하는 것이었다. 현지 조사는 일정의 변경이 가능했지만 협약식은 당사자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현장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를 찾아갔다.
아!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안 계셨다. 다른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갑자기 교육부 지시로 교장선생님들 워크숍이 생겨서 출장을 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분이 연락이 잘 안 될뿐더러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것이 더 큰 변수였다. 어쩌면 가장 큰 출장 목적을 달성 못하고 한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할 수 없이 현지의 수인성 질병의 원인이 되는 식수 상황과 그들이 사는 현장을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모로고로는 대도시지만 그곳에서 40분만 차 타고 나오면 가난한 오지마을이 나온다. 그 오지마을의 우물물은 땅 속에 있는 소금 성분으로 인해 짠 물이 나와 식수로 부적합하다고 한다. 대신 탄자니아는 적도와 가깝기 때문에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제일 깨끗한 물이 우기 때 내리는 빗물이고, 일부 잘 사는 집은 대형 물통이 있지만 대부분 가난한 집들은 수십 리터짜리 통 몇 개에 최대한 많이 저장해서 수개월 동안 식수로 사용했다.
이런 흙집이나 흙벽돌집이 대부분이다. 지붕은 슬레이트나 볏짚이 많다.마을 주민들 사는 집에 방문했는데 대부분 흙집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바닥도 그냥 흙바닥이었다. 창도 겨우 손날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작았고 창문은 당연히 없었다. 창이 작은 이유는 가장 흔하고 위험한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모기와 같은 벌레가 들어오는 구멍을 작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부엌이라고는 어두컴컴한 집안 한 구석에 그저 불을 피워 음식을 데우고 있었다. 문제는 불을 피우느라 나무가 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는 집안에 꽉 차게 되고 그 모든 연기를 요리하는 마마(엄마) 혼자 다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탄자니아 여성들의 폐 건강은 많이 안 좋은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집안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여성들의 폐가 안 좋다.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만들려는 전기 없이 동작하는 물 살균기 제품이 3단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만일 부품 하나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찾을 수 없게 된다. 이 부분은 심각하게 본사에 알려야 했다. 출장 전 코이카 담당 과장이 말했던 것처럼 현장에 와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회생활 20년 동안 나름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녀봤지만 이렇게 모든 일정에서 해프닝이 일어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없이 한 번 출장의 기록을 나눌 수밖에 없다. 지금껏 세 번의 탄자니아 출장을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말자. 그리고 그곳이 탄자니아라면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