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아! 탄자니아!(하)

뒤죽박죽 출장의 결말은 "감사"다.

by 이글파파

사람들과의 사귐은 나눔에서 시작한다. 음식, 대화, 정(情)


음식

탄자니아 사람들은 옥수수 가루를 찐 밥을 먹는다. 그 밥의 이름은 '우갈리'라고 하는데, 가난한 오지마을 주민들은 우갈리 밥으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살고 있다. 배고프면 잠이 안 오는 것은 어디나 매한가지라 그 소중한 한 끼는 주로 저녁에 먹고 잔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사탕수수 설탕을 잔뜩 넣은 차 한잔 마시고 하루 일과를 한다. 우갈리 밥에는 간단한 볶은 채소 또는 콩 반찬, 아주 가끔 소고기 고깃국(고기는 없다)을 곁들이는 식이다. 오른손으로 우갈리와 반찬을 잘 섞어 먹는데 생각보다 따라 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먼 타지에서 온 사람이 그곳 주민들과 친해지기 가장 쉬운 방법은 뭐니 해도 같이 밥 먹는 것이다. 오죽하면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만큼 가장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겠는가?

쌀 밥, 삶은 콩 반찬에 고기 한덩이 더해진 음식

우갈리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밥인데 탄자니아 사람들은 그 밥을 참 사랑한다. 우리의 주식 쌀밥이 그렇게 고소한 밥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처음 몇 번 우갈리 밥을 먹었는데 어색하게 잘 못 먹는 것을 보고, 탄자니아 친구들이 가능하면 쌀로 밥을 지어줬다. 한 날은 여러 명이 같이 단체로 식사하는데 콩 반찬에 고기도 한 덩이 넣어주어 기쁘게 먹은 적이 있었다. 물론 필자에게는 숟가락이 한 개 추가되었지만, 그래도 같이 밥을 먹으니 더 가까워진다.


어른 공경 문화

외국사람이 한국어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발음이나 표정은 좀 어색해도 열심히 배운 한국말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볼 때 더 잘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본인도 나름 열심히 탄자니아어 인사말 정도는 외우고 갔는데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른 공경의 장유유서(長幼有序) 문화는 우리나라 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탄자니아도 어른 공경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화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아산떼"는 고맙다는 의미의 탄자니아어(스와힐리어)다. 그런데 존경어로 "아산떼 사나"가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말도 다르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시카무"라고 안부인사를 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마라하바"라며 아이에게 축복하는 말을 해준다. 그런데 어른들끼리 만나면 누가 먼저 "시카무" 하는지 애매할 때가 있다. 처음에 탄자니아 사람의 용모로 그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나라 평균 수명이 50세 전후라고 했다. 대개 그 마을에서 정말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두 분을 제외하고 본인이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기분이 더욱 묘했다.


물사정

탄자니아 곳곳의 물사정이 좋지 않다. 오지마을까지 상하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기도 하지만, 도심 집에서도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 심각성이 오죽했으면 호텔 음식마저도 익힌 것이 아닌 샐러드나 채소류는 가능하면 먹지 말라고 얘기할 정도다.

하루는 동네에 우물을 파 놓은 곳이 있다고 해서 가 봤지만 육안으로도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빨래한 뒤에 물 색깔 같은 뿌연 상태인데도 식수로 퍼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곳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빈 통을 들고 냇가로 간다. 그들은 하루에 20리터 들이 물통을 채워서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 일과다. 아이들이 떠가는 물은 비단 사람만 마시는 물이 아니리라. 그러나 수십 세대 위의 조상 때부터 그렇게 마셔왔기 때문에 저들도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배가 아플 수 있다고 위생 교육을 잘 시켜야 하는 이유다.

그냥 부모님이 시키니까 매일 저렇게 물을 퍼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만남

일주일이나 연락이 되지 않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드디어 소식이 닿았다. 월요일 출국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 전날 일요일에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섭섭한 감정이 없지 않았지만 이내 모두 얼굴이 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숙제를 마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간사님 통해 다른 일정을 모두 바꾸더라도 그 날 만큼은 꼭 만날 수 있게 다시 한번 요청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출장자들은 교장선생님과 일요일 텅 빈 학교에서 만나 협약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탄자니아 교육 현실도 알게 되었다. 탄자니아 학생들은 초등학교까지 탄자니아 고유어인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중학교부터 영어가 공용어가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공무원이 될 자격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진학기회는 평생 한 번 뿐이고 시골마을에서는 그 진학률이 50-60%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나머지 40-50%의 아이들은 소작농으로 일하며 계속 부모의 가난을 이어 살거나 돈 벌러 대도시에 가더라도 자칫 나쁜 무리에 섞일 수도 있다.


탄자니아 학부모도 우리나라 여느 부모처럼 자식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높다. 그러나 대부분 가난한 아이들이라 교재 살 돈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칠판에 써준 교재 내용을 노트에 적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수업에 빠지게 되면 학력이 저하된다. 학교를 빠지는 날은 대체로 배가 아프거나 말라리아에 걸려서 못 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건강이다. 그들이 건강하게 되면 수업에 빠지지 않게 되고 학습 성취율이 올라가면서 진학률도 올라간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엿한 직장을 얻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그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니 물 살균기를 개발하고 보급해야 하는 회사의 업계획이 더욱 부담으로 다가왔다.



귀국

모든 일정이 끝나고 드디어 출국날이 다가왔다. 오후 세 시 비행 편이기 때문에 한 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최소 다섯 시간 걸리는 탄자니아 고속도로 사정을 알기 때문에 오전 여덟 시에 숙소에서 지체 없이 출발을 시작했다.


약 한 시간쯤 달려가니 갑자기 경찰이 차를 길가로 세우기 시작한다. 우리뿐 아니라 앞의 차 들도, 건너편에 지나가는 반대편 차선의 차들도 세우고 양 길 가로 유도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운다는 것은 무언가 큰일이 생긴 것이다.


"무슨 사고인가요?"

"아뇨, 사고는 아닌 것 같고.. 가운데를 비워놓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유력한 분이 지나가시나 봐요."


이건 무슨 소리? 카퍼레이드도 아니고 정치인이 지나간다고 고속도로에서 달리고 있는 차들을 양쪽으로 세운다고? 게다가 언제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 삼십 분 정도 지나니 진짜 사이드카 오토바이 몇 대와 함께 큰 세단 한 대가 쌩 하고 지나갔다. 아마 총리쯤 되나 보다. 황당했지만 아마도 왕복 2차선 고속도로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한 장면이라고 여기고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또 한 시간을 더 갔더니 이번엔 진짜 큰 트럭의 전복 사고로 인해 우리 앞차들이 멈춰서 있는 것이다. 간사님께 물어보니 탄자니아 고속도로에서 사고는 흔한 일인데 문제는 사고처리시간으로 그야말로 복불복이라고 한다. 또다시 삼십 분이 흘러갔고...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운전하는 드라이버에게 빨리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마침 큰 트럭과 버스가 과감하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얼른 뒤따라갔다. 이제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다. 국제선 출국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최소 두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 그러나 탄자니아 고속도로에서는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 남짓 남기고 공항에 도착했다. 올 때와 달리 수하물 짐은 한 개씩만 있어 가벼웠지만 주차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뛰어갔다. 이럴 때 꼭 가방검사는 철저히 하는 데 얼굴에는 비 오듯 땀이 흐르고 마음은 급하다. 티켓팅 데스크에 도착하니 출발 비행기가 30분 지연이란다. 그런 지연은 자주 있는 일인가 보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일행의 모습을 오히려 이상하게 바라보는 직원의 얼굴을 보니 밉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기분이 교차한다.


다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거쳐 한국행 비행기에 타니 모든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내려앉았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출장 과정을 하나씩 복기하는 데 출발 전부터 한국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순서와 일정이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것은 계획했던 일정을 차질 없이 다 이루어냈던 것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신이 도우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참 감사했다.


이 후로 탄자니아 두 번, 동남아 네팔 한 번을 더 출장 다녀왔다. 모든 출장에서 처음 겪어보는 에피소드가 넘쳐났다. 과거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재직 시절과 달리 출장이 모두 도전이었고, 완전히 다른 인생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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