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밀어붙여도 내 뜻과 달리 포기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가 오고야 말았다.
창업한 1인 무역업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 사업은 5평 사무실과 지하 창고를갖추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5평 사무실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성(Castle) 같은 곳이고, 자유롭게 모든 생각을 하는 행복한 공간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여유로울 뿐 아니라 여러 새로운 비즈니스 계획을 세우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뭔가 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혼자 공부하고 해외 온라인몰에 가입하고 세팅해서 미국과 동남아에도 물건을 팔아봤다. 한참 매출이 증가할 때엔 그날그날 포장 배송 마감을 혼자 할 시간이 없어 아내가 도우러 왔고, 해외 출장 등으로 인해 사무실이 비게 되면 역시 아내가 사무실에 와 본인 대신 지켜주었다.
개인사업과 별개로 새롭게 합류한 비영리기업의 사업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동남아 네팔에 있는 가난한 오지마을을 방문해서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는 살균기 제품을 보급하는 ODA(공적 개발 원조) 일이었다. 마치 UN이나 국제적십자처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좋았다. 2018년 5월에 합류하고 3개월 뒤인 8월에 첫 탄자니아 출장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가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출장을 가기 전 반드시 맞아야 하는 황열병 주사, 파상풍 주사, 그리고 7주간 먹어야 하는 그 독한 말라리아약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8월 출장에 이어 다음 해 1월에도 두 번째 출장을 계획했다. 새롭게 합류한 회사에는 당시 6명이 근무했는데 그중 두 분은 만 60세가 넘는 시니어 이사님들이셨다. 그 두 분과 1월 출장을 계획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장거리 비행시간과 현지 출장 일정이 매우 타이트하기에 체력적인 부분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출장이 내년 1월인데 두 달 전인 11월 말에 본인의 오른쪽 어깨에 문제가 생겼다. 팔이 찢어질 듯 아파서 도저히 팔을 올릴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CT도 찍고 진단을 받아보니, 어깨 관절뼈가 웃자라는 문제로 인해 움직일 때마다 마찰이 생겨 인대가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라고 했다. 불과 한 달 뒤에 탄자니아 출장인데... 시간이 없었다. 부랴부랴 기형적으로 자란 뼈를 잘라내는 견봉 성형수술과 인대를 연결하는 접합 수술을 하고 재활을 시작했다. 1월 8일이 출국날짜인데, 1월 7일까지 재활을 하였다. 그리고 2주간 아내에게 사무실을 맡기고 출장을 떠났다.
평소 아내는 허리가 약했다. 1월 출장을 전후로 점점 아내의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설 명절을 지나면서 좀 더 심해졌다. 결국 3월 초 아내는 거의 울상을 하며 다리가 터질 것 같이 아프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바로 갔지만 그곳에서는 진통제만 투여해 줄 뿐 계속 대기실에서 기다리게만 했다. 외래를 예약하고 다시 집으로 왔는데, 아내는 더 이상 견디질 못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기다리다 지치고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결국 지인이 소개해 준 병원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MRI를 찍어 확인해 본 결과 허리 디스크가 파열된 것이다. 긴급히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 집도를 한 의사는 아내의 허리 디스크가 터져 나와 이미 조각조각 나 버렸다고 했다. 그만큼 고통이 컸을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지난 20년 결혼생활 동안 나 중심으로 살아왔던 것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앞서기 시작했다.
아내는 2019년에만 세번이나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수술 후 아내는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비싸다고 꺼려했던 개인 PT를 일부러 신청해서 허리 근육을 강화했다. 그렇게 컨디션 관리, 몸 관리를 잘하나 싶었는데...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몇 개월 뒤에 또다시 디스크가 파열되었다. 허리 근육을 강화하겠다고 무리하게 운동을 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그 해 더 이상 병원 신세는 안 질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3개월 뒤, 이번엔 동네 병원 건강검진 결과 이상소견을 듣게 되었다. 담당의사는 소견서를 건네주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서 재진단을 받으라고 했다. 결과는 대장암 1기.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바로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다. 2019년 한 해 동안 허리디스크 2번, 대장암 수술 한번... 무려 3번이나 입원과 수술을 하는 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2019년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프니 더 이상 무리해서 사업을 계속진행할 자신이 없었다. 동시에 2개의 일을 하다가는 또다시 아내를 아프게 할 것 같았다. 결국 1인 기업은 포기했다. 아내가 두 번째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고 난 후에 영업 종료를 결정하고 창고의 물건들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세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은 재고는 여기저기 기부하고 창고 보증금은 빼고 3개월 뒤에 결국 폐업신고를 하였다. 그리고 비영리 사회적 기업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인생의 도전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 과정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상황적으로 버틸 수 없게 될 때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보다 그냥 흐름에 맡겨야 한다. 멈추라는 신호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 믿고 가면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적으로는 불안하였지만 조금은 여유를 갖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아내는 조용한 사람이다. 자기의 힘든 것을 잘 내색하지 않는다. 조금 엄살도 피면서 아프다고 했으면 빨리 결정했을 것을 미리 눈치 채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재고를 처분하는 것도 매우 괴로운 일이다. 본인이 직접 구매한 상품들은 마치 자식과 같기 때문이다. 2019년 당시에는 그런 의미로 여러 가지가 아쉬웠었다.
그런데 인생은 해석이라고 했던가? 2019년 하반기부터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장사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만일 개인 사업을 조금 더 끌다가 가족 건강문제와 함께 사업 문제까지 이중의 스트레스가 더해졌다면 더 견디기 어려웠을 거 같다. 이 역시 창조주의 배려하심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