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토스트를 즐겨먹는 내게 아내가 즉석 양송이 수프를 같이 주었다. 주로 커피를 마시던 머그 컵에 수프가 담겨 나오니 느낌이 달랐다.
'원래 이 컵의 용도는 커피 컵?'
사실 원래의 용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컵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 무엇이 되든 상관이 없다. 커피가 될 수도, 맹물이 될 수도, 수프도, 또는 밥을 담아도 그저 컵은 내용물을 흘리지 않고 담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용물의 정확한 맛과 정체성을 위해서는 그 컵은 비워 있어야 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전에 있던 모든 것을 담아두고 새로운 것을 채우면 내 컵의 용량은 넘칠 수밖에 없다. '아주 우연히' 맛있는 칵테일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맛이 섞이면 이상한 음료가 되듯이 본연의 맛은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비움이 있어야겠다. 비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새것 본연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삶 속에서 주변과 어울려 일을 할 때도 과거 지식에 매달려 있기보다 먼저 비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자.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 생각, 그리고 지식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채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적당히 채워졌으면 주저 없이 비우고 새로운 것을 나만의 컵에 채우는 삶. 멋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