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는 효도가 정말 부모님도 좋아할까요?

효도라 썼으나, 불효로 읽힐 수도

by 별하

[작가 노트]


효도는 때로 오해의 언어가 된다

잘해주려는 마음이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듯, 부모님을 대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효도를 ‘마음의 온기’로 다시 배우게 되었다



효도가 무엇일까?

나는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고 있을까.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게 효도일까, 자주 연락하고 찾아뵙는 게 효도일까.
정답은 무엇일까?


나는 매일 아침 시골에 계시는 홀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오늘은 어디 가세요?” “밥은 드셨어요?”
그저 그런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대화를 통해 오전의 문을 연다

하루라도 전화하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먼저 전화를 주신다.
“무슨 일 있니?”

이럴 때면 문득 생각한다.

이런저런 매일 통화가 정말 효도일 수 있을까.


김포에서 근무하던 어느 그날,
이른 새벽, 초지대교 근처 양식장에서 112 신고가 들어왔다.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119 구급대원분들이 물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백발의 할머니


가지고 계신 건 서울시청에서 발급한 버스카드 한 장뿐
부근에서 지켜보던 양식장 관계자 분이 그저 무거운 말을 한다.


“어제저녁에, 양식장 근처를 어슬렁거리시던데 아마도 가실 자리 미리 보러 오셨나 보네”

정말 그랬을까.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버스카드 뒷면의 분실 신고센터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여보세요. 경찰서입니다. 아무개 할머니 가족분 되시나요?”
“네, 저희 어머니신데요.”
“… 돌아가셨습니다.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짧은 정적이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그 순간, 나는 그 아들의 ‘가슴 철렁 내려앉는 묵직한 슬픈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도 흔들렸다. 수 없이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 이 날따라 그 무게가 달랐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평생을 사셨다.
자식들을 키우며 세월의 무성함으로 어느새 백발이 되었고, 어느 날 남편을 먼저 보냈다
어차피 혼자 남은 이곳, 바로 서울은 제2의 고향이었다.

어느 날 아들은 홀로 되신 어머니가 걱정되어 ‘효도’를 하기 위해 할머니를 강화도로 모셨다.

이땐 효도의 시작이 행복이 아닌 죽음이라는 새드엔딩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서였고,
백발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익숙한 골목, 매일 마주하며 함께 밥을 먹던 백발의 친구들,
그 모든 걸 두고 떠난다는 건 할머니에게 작은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강화로, 그 짧고도 긴 거리만큼
할머니 마음속 삶의 온도는 서서히 식어갔다.


나는 생각했다.
아들은 효도를 했지만, 할머니는 외로움으로 대가를 치렀다.
효도의 이름 아래, 마음은 외로움으로 인해 점점 메말라갔다는 것을

신분증을 두고 버스카드만 챙겨 집을 나선 이유가 뭘까

“친구가 있는 서울 가는 길만은 잊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나에게도 홀 어머니가 계신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함께 살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아침 전화를 한다.

“오늘은 어디 가세요?”
“마스크 꼭 쓰시고요.”


이게 내 방식의 작은 효도다.

거창한 효도 말고, 하루의 안부로 어머니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드리는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은 효도를 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소 에필로그]

효도는 “주는 사람의 감동”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평안”이 되어야 한다.

진짜 효도는
부모님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날 양식장 할머니가 남긴 교훈은 아직도 내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에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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