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는가

부모의 마음은, 끝내 모든 손가락을 품는다

by 별하

[작가노트]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가장 아픈 손가락’을 하나씩 품고 산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또 누군가의 부모로 살다 보면 미움과 사랑은 늘 한 그릇에 담긴다.


경찰로 근무하며 만난 수많은 사건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재벌가의 유산 다툼도, 극적인 범죄 사건도 아닌, 한 할머니의 “둘 다 내 자식이라 괴롭다”는 한마디였다.


그 말이 내 가슴 한가운데에 오래 남았다.




순찰근무 하던 시절, 나는 담배를 참 많이 피웠다. 주간엔 한 갑, 야간엔 두세 갑. 그때는 ‘THIS’가 대중적이었다. 담배엔 묘한 위로가 있었다. 민원인과 말이 통하지 않을 때면,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이거 한 대 피우고, 화 삭이시죠.”


그럼 서로 연기를 한 모금 내뿜으며 한숨이 따라 나왔다. 참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서로의 감정이 잠시 식었다. 그게 ‘THIS’의 힘이었다.


그날도 순찰 중 잠시 들른 부천 심곡동의 한 식당, 감자옹심이가 맛있기로 유명했던 그 식당
자판기 커피 한 잔 뽑고, 담배 한 대 피우며 여유를 찾던 순간 그때 허리를 굽힌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남편은 성실한 분이셨다. 평생 검소하게 살며 건물 두 채를 남겼다.
자식은 아들 둘, 큰아들은 사업을 한다며 돈을 많이 필요로 했고,
작은아들은 식당을 운영했지만 장사가 잘 안 됐다.


남편은 생전에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큰아들에게는 조금 많은 몫을, 작은아들에게는 조금 덜한 몫을,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제일 큰 건물 한 채를 남겼다.


“그게 할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사랑일 거야. 자식들한테 밥 한 숟가락 얻어먹어도 내 이름으로 된 게 있어야 말을 들어준다고” 그렇게 할머니는 웃으셨다.


그 웃음엔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갈등의 씨앗이었다. 큰아들은 사업이 어렵다며 매번 할머니에게 돈을 요구했고, 할머니는 매번 지갑을 열었다.

어느 순간 작은아들이 운영하는 횟집, 장사가 안 되는 모습을 보시고 할머니는 큰아들 몰래 돈을 좀 보태줬는데, 어느새 큰아들이 알아챘다.


“죽여버릴 거야, 그 자식도, 모두 다!”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물으셨다.


“작은애가 식당을 하는데 장사가 잘 안돼서 너무 힘들어, 죽기 전에 작은애에게 재산을 줄 방법이 있을까요, 큰 아들이 알면, 또 죽인다고 할 것 같아서,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법원 근처 변호사 사무실에 가보세요. 유언장을 남기시든, 생전 증여를 하시든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 미묘한 안도감이 잠시나마 그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식당 앞 골목길을 걸어가는 그분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작은 몸, 굽은 허리, 하지만 걸음만큼은 희망으로 단단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담배를 피우다 말고 그 할머니를 떠올렸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는가. 깨물면 다 아프지.’ 그 말이,

할머니의 표정처럼 내 가슴 한쪽에 박혔다.



[소 에필로그]

그 후로도 많은 사건을 겪었지만 그 할머니만큼 강하게 기억에 남은 분은 없었다.

부모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다. 아니, 공평할 수가 없다.

더 약한 손가락이 있으면, 그 손가락부터 감싸는 게 부모다. 부모의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본능이다.

누가 더, 누가 덜이 아니라, “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속, 부모의 모든 인생은 그저 희생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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