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면 나무도 행복할까

공부보다 중요한 건 '그냥 살아있음'이었다

by 별하

[작가 노트]

사람은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을 수 있다. 다만 그 벼락이 나에게 떨어질지, 남에게 떨어질지는 모를 뿐이다.


그날 나는 딸을 키우는 어느 어머니가 벼락을 맞는 장면을 보았다.

딸아이를 품에 안고, 식어가는 몸을 데우려 애쓰던 그 손길, 그 절규가 내 귀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나는 ‘공부 좀 해라’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내 곁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그것이 전부가 되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생각지도 못한 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삶이 무너질 때 하는 말일 것이다. 어느 그날 하늘은 참으로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晴明)한 하늘

그런데 그 푸르른 하늘 아래에서 어느 한 아이는 생을 스스로 멈췄다.


“사망자 발생.”

무전이 울렸다. 경찰수첩을 챙기고, 과학수사요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조용한 아파트,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문을 밀자, 무거운 정적이 깨졌다.

“딸, 딸, 눈 떠봐… 네가 그렇게 갖고 싶다던 강아지 사러 가자… 그러니까 눈 떠야지, 엄마 말 잘 듣지… 어서…”


식어가는 딸의 몸을 품에 꼭 껴안은 어머니의 찢어지는 울음소리, 어찌 보면 어머니의 품은 그저 딸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했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찰관으로서 절차를 진행해야 하지만, 그날만큼 ‘비켜달라’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함께 가슴으로 울었다.


아이의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딸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개인교사처럼 딸의 곁을 지켰다. 아버지는 금융기관에서 근무했다. 누가 봐도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벼락은 행복이 가득할 것 같던 이 집에도 떨어졌다. 딸은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시험지 한 장이 생사(生死)를 바꿔놨다. 수학 문제 중 한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의 세상은 무너졌다.


유서도, 메모도 없었다. 그저, 중간고사 시험을 치른 후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엄마, 수학 문제 하나 못 풀었어…”라는 이 한마디가 엄마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정말 싫어했다. ‘왜 사람을 수학으로 평가하나’ 싶었다. 수학은 논리라니, 이성이라니, 그건 어른이 되고도 늘 낯설었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건 논리적 사고를 기르기 위함이다”라는 이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던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염병, 논리보다 중요한 건 감정 아닌가.”


나는 그 아이의 방 한편에 놓인 강아지 인형을 봤다. 그건 아마 ‘약속의 증거’였을 것이다.
“시험 끝나면 진짜 강아지 사줄게.”라는 엄마의 약속.

그걸 믿고 버텼던 아이. 그러나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엄마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고, 그래서 딸을 안고 끝없이 속삭였다.

“가자, 어서 일어나, 엄마랑 함께 강아지 사러 가자…”라고, 그러나 딸은 들은 척하지 않았다


“이 사회에서 정말 데려가야 할 놈들은 뉴스에서도 주변에서도 세고 셌는데, 왜 하필 이런 아이를 데려가십니까.” 그날 청명했던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원망했다. 이건 공정하지 않잖아요.


세상은 정말, 공정하지 않았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이렇게 말한다.

“공부 못해도 괜찮다. 같이 오래 살자. 원수가 될지, 효자가 될지는 나중에 보자.”


시간이 흘러 내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성적은 중하위권. 그런데 뜻밖에도 스님이 총장으로 있는 메이저 대학에 합격했다. 물론 수시로, 그러나 이건 얼마나 쇼킹한 일인가. 나름 딸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능력자였다.


아이보다 내가 더 놀랐다. 공부는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운명처럼 오는 흐름’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그저 곁에서 지켜봐 주는 부모의 인내가 아이를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것도,


하늘로 간 아이야. 그곳에서는 제발 공부하지 마라. 공부 말고, 마음껏 뛰어놀아라. 강아지랑 같이 웃고, 같이 자고, 같이 놀아라. 너의 짧은 생이, 이 세상에 남긴 건 공부의 정의가 아니라, 사랑의 온도였다. 내게는 그랬다.



[소 에필로그]

사람들은 말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살자.”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낌없이 주면 나무도 아프다.

아낌없이 주는 마음이 과분하면 때론 무서운 채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keyword
이전 05화자식은 부모를 선택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