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는 사랑은 없지만, 엄마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
[작가 노트]
사람은 수없이 많은 만남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만나고, 누군가는 의리로 만나고, 또 누군가는 계산으로 만난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대부분 ‘이익의 끝’에서 사람을 만난다.
도움을 주면 고맙고, 안 되면 욕을 하는 만남들.
그런 만남 속에서도,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아둔 사람이 있다.
이유 없이 마음 한 구석이 아프게 했던, 마음이 전치 28주였던 여자였다.
만남에는 참 여러 종류가 있다. 순수하게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만남, 의리를 지키려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의 만남, 서로의 이익을 계산하며 마주 앉는 비즈니스의 만남 그리고 경찰관의 만남은 대부분 “도움을 받기 위한 만남”이다.
민원인의 입장에서 경찰은 ‘필요한 순간에만 불리는 존재’다. '해결해 주면 그건 기본 업무, 안 되면 무능한 공무원' 냉정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어느 날, 한 여자가 112에 신고를 했다.
“도로에서 폭행당했어요. 차에서 저를 던지고 갔어요.”
현장에 도착하니, 젊은 여자가 길가에 앉아 있었다. 얼굴엔 피멍이, 눈동자엔 깊은 허무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왜, 또, 무슨 일일까.
“괜찮아… 치료는 계속 받고 있지?”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녀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스물여덟 살의 아가씨였다. 예전엔 밝고 성실했지만,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뒤 삶이 무너졌다. 회사도 그만두고, 사람도 피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몰래 ‘조건만남’을 했다.
어머니에겐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거짓말하면서, 그렇다 세상은 냉정했다. 돈이 없으면 존재하기 힘들고, 마음이 망가져도 쉬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날도 모르는 남자와 만남을 가졌다. 자동차에 타자마자 낯선 공기가 감돌았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그녀는 갑자기 ‘누군가와 환청으로 대화’를 했다. 허공을 향해 말을 건넸다. 남자는 겁을 먹었고,
“미친년이 재수 없게…”라며
그녀를 도로 갓길에 내던지고 도망쳤다. 지구대에서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내 눈을 피했다.
나를 알아보는 듯하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내가 모른 척해줘서 고맙지, 그러나 왠지 서운했다. 잠시 후, 그녀의 어머니가 지구대로 들어왔다. 남편 없이 외동딸을 키운, 잔주름이 많은 얼굴, 딸을 품에 안으며 묻지도 않았다.
“괜찮아… 엄마가 왔어.” 이 말 한마디에는 세상 모든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날, 어머니에게 그녀의 ‘조건만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건 경찰의 의무보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응원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홀어머니의 눈빛 속엔 이미 모든 걸 아는 슬픔이 있는 듯했다.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른 척했을 것이다. 그게 무한한 사랑이니까.
그녀가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질 않길, 좋은 사람 만나 평범하게 웃길, 순찰 중에 그녀를 다시 만나더라도, 이젠 ‘평범한 사람’으로 마주치길,
어떤 만남은 짧지만 오래 남고, 어떤 인연은 슬프지만 깊게 새겨진다.
그녀와의 만남이 바로 그런 슬픈 만남이었다.
[소 에필로그]
세상엔 수많은 만남이 있다. 그중 가장 아픈 만남은 누군가를 도와주고도 끝내 지켜주지 못한 만남이다.
그녀가 이제는 웃으며 살아가길, 그리고 그 어머니의 손이 더 이상 떨리지 않길,
그게, 내가 바라던 ‘다음 만남’의 기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