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오늘도 져주는 마음으로
[작가노트]
부모는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세탁소의 다리미처럼, 구겨진 자식의 인생을 반듯하게 펴주려다
자신의 손마저 데어버리는 게 바로 부모다.
그날, 한 세탁소 사장님의 울부짖음 속에서 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또 얼마나 외로운지를 봤다.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서로 엉켜 있는 사람인가 봐…”
임재범의 노래〈너를 위해〉가 ‘나는 가수다’라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그저 슬픈 사랑 노래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건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근무했던 지구대 관내엔 작은 세탁소 하나가 있었다. 경찰 제복을 싸게 세탁을 해주시고 반질반질 다림질을 해주던, 늘 환하게 웃어주는 단골 세탁소 사장님
사장님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다리미의 ‘칙칙’ 리듬과 함께 옷의 구김을 4분의 4박자로 반질 반질 펴주셨다. 그 소리가 마치 사람의 굴곡진 인생을 마치 펴주시는 것처럼, 그래서 가끔 내 인생의 주름도 저 다리미로 펴주셨으면 했다.
어느 날이었다. 세탁소 아주머니의 급한 전화가 지구대로 걸려왔다.
“빨리 와주세요… 세탁소로 빨리 좀 와주세요…”
도착해 보니, 다리미며 옷걸이며 모든 게 세탁소 앞 노상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사장님은 울부짖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너를 위해 내가 얼마나 참고 살아왔는데!”
그의 절규는 세탁소 벽을 울렸다. 아주머니는 그저 가만히 서서 울고 있었다.
사장님에겐 외동딸이 있었다. 한국 무용을 배우며 쑥쑥 꿈을 위해 커가던 딸.
“아빠, 나 한국무용 배울래. 최고가 돼볼래.”
“그래, 우리 딸 아빠하고 열심히 한번 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딸의 한국 무용 인생의 시작을 아빠의 다리미와 함께 시작했다.
세탁소 사장님은 땀과 피로 다리미질을 하며 딸의 꿈을 응원했다. 어떠한 이유도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너를 위해’ 살았다. 그런데 대학 2학년이 되던 해, 딸이 돌연 통보했다.
“아빠, 나 무용 그만둘래. 공무원 준비할래.” 딸의 말 한마디에 사장님은 무너졌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하지 말지… 내가 이 나이에 왜 이 고생을 했을까…” 세탁소 안에는 다리미의 칙칙 소리 대신 아빠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며칠 동안 세탁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이 반쯤 열렸다.
나는 조심스레 문틈으로 다가가, 어설프고 미안한 감정이 듬뿍 담긴 채로,
“사장님, 근무복 찾아야 하는데요…”라고 아주 소심한 작은 목소리로 물으니, 어두운 문틈 사이로 비치는 광명(光明)처럼 “내일 일찍 열게요.”라고 하신다. 한마디의 짧은 대답 속엔 며칠간의 서글픔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분노가 사라진, 딸의 첫 번째 꿈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딸의 New Dream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듯했다.
〈한번 다녀왔습니다〉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한대요. 그래서 부모는 자신을 선택해 준 자식이 고마워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져주는 거래요.”
드라마 주인공들의 대사 속에서 세탁소 사장님이 떠올랐다. 그분은 딸에게 져주셨을 것이다.
아마도 딸이 하늘에서 선택해 준 게 고마웠을 테니, 나도 자식이 있다. 때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어쩌겠나. 이 아이들이 하늘에서 나를 선택해 내려왔을 텐데.
오늘도 그 선택이 고마워서 나는 져주며 살아간다.
아마 사장님도 그랬을 것이다.
[소 에필로그]
라디오에서 여전히 가수 임재범의 노래가가 들린다.
“너를 위해…”
내 귀에 다르게 들린다. 연인의 노래가 아니라, 부모 자식 간 사랑의 노래로, 자식을 위해, 울고, 웃고, 일방적으로 져주는 그저 부모라고 불리는 사람의 노래로,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하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러니 부모는, 그 선택이 고마워서 평생 져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