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돈이 많으면 죽어서도 편치 못하구나

유산보다 무거운 건, 남겨진 마음이었다

by 별하

[작가노트]


돈이 많다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가진 게 많을수록 마음은 더욱 복잡해지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더 미워한다.

그날 제사상 위에 올려진 음식들은 정성이 아니라 싸움의 무기였다
그걸 바라보는 노모의 눈빛은 그저 서글프다
돈이 생사(生死)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도 갈라놓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은 하루 세끼를 먹고 산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나고, 마음도 든든해진다.
가끔 꿈속에서도 맛있는 걸 먹고 있는 나를 보면 ‘살아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 싶다.


그날 저녁의 하늘은 몹시도 붉게 수줍어하고 있었다. 노을이 골목 위를 감싸던 그 시간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졌다는 112 신고가 들어왔다

순찰차를 골목 입구에 세우고 걸어가는데 길바닥에 뭔가 흩어져 있었다. 배, 사과, 산적, 잡채…

누군가 정성껏 차린 제사음식들이었다. 이 예쁜 음식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누가 이런 걸 버린 거야…”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그때 집 안에서 들려오는 고성, 그리고 그 사이로 들리는 할머니의 흐느낌

살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은 이미 엎어진 밥상과 깨진 접시로 엉망이다.


“형은 돈 많이 받았으면서 왜 또 가져가!”
“장남이니까 그러지, 인마!”


서로 주고받는 욕설 사이로 넘어진 병풍, 흩어진 밥, 공기 중에 흩뿌려진 생선 냄새들,

어느새 홍동백서(紅東白西), 어두육미(魚頭肉尾), 조율이시(棗栗梨柿)는 바닥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좁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할머니 한 분


바로 이날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 오늘 제사상 주인공인 아버지는 평생 땅을 일구던 농부셨다

그런데 땅값이 오르면서 토지 보상금으로 백억 대 부자가 되었다.

그분은 그 돈을 마음껏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남은 건 돈, 그리고 그 돈을 두고 싸우는 자식들뿐이었다

제삿날이 아니었다면, 아마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마도 하늘에서 기대하셨겠지, ‘내 자식들 다 모였겠구나’ 하면서,
그런데 정작 그 자리엔 맛있는 밥 대신 형제들의 뜨거운 분노와 음악보다는 욕설뿐

할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제사 음식을 하나하나 손으로 주워 담는다

“이게 뭐라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무거운 공기층 안에서 작게 메아리로 남는다
그 작고 떨리는 손이 내 가슴을 쿡 찔렀다

아버지는 돈이 생겨도 옷 한 벌 사 입지 않던 분이었단다. 그저 평범한 농부였고
늘 자식 걱정만 하던, 그런 분이었다.

그분이 남긴 건 돈이었지만, 그 돈은 자식들을 싸움판으로 몰아넣었다.

하늘에서 맛있는 제사상 음식을 기대하며 내려오셔서 이 광경을 보셨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한숨 쉬셨을 것이다.

“쯧쯧…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면…”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돈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다.
사람을 모이게도 하지만, 때론 서로 증오하는 마음으로 뭉칠 수도 있음을

현장을 정리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돈 많은 부모님이 안 계시니 싸울 일도 없네.”


사람이란 참 묘하다. 부부는 돌아서면 남이 되지만, 부모 형제는 죽을 때까지 묶여 있다.

서로 미워하면서도 결국엔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날은 아무도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형도, 동생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저 남편의 제삿날, 홀로 남은 할머니만이 바닥에 흩어진 음식을 다시 담으며

그리움만 훔쳤다.


“당신, 이거 좋아했는데, 다시 해드릴게 드시고 가요…”
그저 할머니 마음속의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소 에필로그]


순찰차로 돌아가는 길, 붉은 하늘 아래 흰 점들이 반짝였다.
마치 누군가의 눈물 같았다.

아버지가 저승에서 아직 눈을 감지 못한 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신 듯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알았다


“돈보다 큰 선물은, 애틋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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